겨울이 지나, 바로 접어든 여름.

거리엔 관능이 넘실대고 있었다.

그것은... 유난히 춥던 지난 겨울...

몸을 꽁꽁 싸매두었던 두꺼운 겨울옷을 벗어버린

행인들의 경쾌한 움직임 때문일 수도 있고,

그 행인들이 입고있는 얇고 짧은 옷 속에서 풍기는 듯한

사람들의 체취 때문일 수도 있고,

그 행인들 사이에서 부유하는 은사시나무의 눈꽃같은 솜털이

부유하는 내 마음속에 들어와서였을 수도 있다.


이상기후 때문에 갑자기 겨울에서 여름으로 도착한 나와 너는 

해마다 점점 커져가는 이상한 불길함과 의혹을 뒤로하고

이 세상의 모든 창조물이 내지르는 듯한 비명속에

말 그대로 갑자기 풍덩 빠져버렸다.

이 세상에 종말이 오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할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는 듯

여기저기 피어난 꽃들이 수십만년의 억겁의 세월을

자신들의 육체로 증명하고 있었다.


세상을 떠난 모든 사람들은 이 모든 것들을 그리워할까?

너는 나에게 물었다.

예의 심드렁한 목소리와 텅빈 눈빛으로.

자신은 답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813 2010-05-25
812 토끼 헤어밴드 2010-05-19
811 호감과 적대감 2010-05-11
» 은사시나무 2010-05-11
809 울지마 2010-04-15
808 동기의 결혼 2 file 2010-04-11
807 물질 2010-04-02
806 ... 2010-03-30
805 동기의 결혼 2010-03-27
804 말할 수 없는 것 2010-03-23
803 충성 file 2010-03-17
802 나이가 들면... file 2010-03-12
801 사진가 Jim Richardson file 2010-02-13
800 너에게 '내가' 갈게 file 2010-01-25
799 4Gb 2010-01-21
798 작고, 좁고, 가벼워지는 2010-01-20
797 첫... 2010-01-12
796 너마저 file [2] 2009-10-26
795 KYS file 2009-10-20
794 샌프란시스코에서 - To sir, with respect file 2009-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