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at2010.06.30 14:14:35

한국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을 때  이창동이 만드는 영상의 핍진성은 봉준호와 다른 것 같다.

봉준호의 화면은 완전함에 관객이 숨막히게하는데,

이창동이 만들어내는 풍경에는 어떤 숭고함이 섞여있다.

다시말해 봉준호의 핍진성에는 관객이 압도당하는 느낌이라면

이창동은 핍진성을 만들어 갈 때 화면과 화면사이에 여백이 드러나 관객이 숨을 쉴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과 이창동의 '시'가 인물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포트레이트로 끝난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두 작가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겹치는 느낌이다. 


'시'에서 (내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거나, 익숙해지지 못한 것들.


윤정희의 연기 방식이나 발성의 호흡에 익숙해지기 어려웠다.

내게는 그것이 좋은 말로는 고전적으로, 좋지 않은 표현으로는 현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연기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내가 어머니와 대화할 때 어머니가 쓰는 고전적인 표현들...

그러니까 우리 세대에는 별로 쓰지 않는 '촌스러운' 단어가 등장해서 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윤정희가 '내가 웃으면 남자들이 뿅 갔어요...'라는 대사를 하는데,

그 대사는 어머니 세대에서만 쓰이는 표현중 하나이다.


윤정희가 오랫동안 영화계를 떠나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녀의 연기 방식은 '만무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런 고전적인 연기법은 '시' 전체에 일관된 색깔을 부여하면서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고통과 속죄라는 영화의 큰 주제를 생각해보면

'밀양'의 전도연이 했던 강렬한 연기가 관객에게는

더 직접적으로 다가오기도 하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오랜만에 스크린에 등장한 김희라에 대한 단상.

그가 어떤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화려하고 잘나갔던 시절에 외도를 해서 결국은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가 자신에게 중풍으로 돌아온 개인사를 생각해 봤을 때,

영화를 통해 '속죄'하고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장 추할 수 있는 자신의 육체를 이끌고 스크린에 용감히 나온

그의 실존이 영화의 주제와 이상하게 연관이 되는 인상이다.



영화를 통해 알게된 의학적 지식으로부터 출발한 생각.

왜 치매에 걸리면 명사를 먼저 잊어버리고 그다음 동사를 잊어버리게 되는 걸까?

동사는 몸을 통해 그 의미를 기억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체험의 각인 효과는 인간이 동사를 더 오래 기억한다는 사실로 입증이 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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