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written at2010.07.10 01:27:45

자정 12시 32분.

적절한 미래를 생각해내려다 실패한 R은

차를 몰아 편의점으로 향했다.

도시가 어둠을 먹고 마시는 쓸쓸한 밤.

그 어둠이 끝나는 지점에 편의점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 시간에는 편의점에 들어서는 한 명 한 명이 가진 개별성이 뚜렸하다.

그 개별성들은 각자가 가진 비밀을 숨기고 유령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 곳에서는 강한 자 앞에서 약한 척 할 필요도 없고

약한 자 앞에서 강한 듯 행동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사람들이 원하는 행복이 편의점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여진

감자칩, 맥주, 청량음료, 컵라면 속에 있어

돈을 내면 그 행복을 가질 수 있었다.

R은 쇼케이스 안에서 차가운 캔커피 하나를 골랐다.

문앞에 나와 담배를 피우던 야간 아르바이트 점원이

장초를 대충 비벼끄고 카운터로 뛰어왔다.

할인카드 있으세요? 아니요.

현금영수증 필요하세요? 아니요.

여기 잔돈 있습니다. 안녕히가세요.

그는 계산을 마치고 담배를 마저 피우러 다시 문 밖으로 나갔다.

이 형식적 대화에 R은 안도감을 느꼈다.

모든 것이 적절하다고 느껴진 것이다.


R이 편의점에서 산 행복은 다시 과거가 되었다.

잔인한 시간은 미래를 현재로, 현재를 과거로 만든다.

도시에 새벽이 찾아오면 직장인들은 허기를 달래러

삼각김밥과 샌드위치를 들고 편의점 카운터 앞에 설 것이다.

R이 편의점을 나올 때 탑차에서 내려져 막 진열되던

그 행복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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