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만두

written at2010.07.24 23:54:58

여기는 구로디지털단지역.

군대 있을 때 이등병 작대기를 막 달고

대대로 향하던 2돈반 트럭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곳이다.

바리바리 싼 더블백을 맨 나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던가.

 

오랜만에 찾은 이곳은 별로 변하지 않은 듯하다.

서민들의 먹거리, 마실거리, 놀거리가 모여있는 곳.

네온사인은 붉은 빛에 번쩍거리고

후텁지근한 날씨 속에 피어오른

포장마치 분식집의 유증기의 냄새가

거리 이곳 저곳에 절어있었다.


2년을 넘는 세월동안 꼼짝없이 갇혀있어야 한다는 절망과

이제로 어디로 배속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래도 다들 견대내는 생활이라는 담담함이

이상하게 뒤섞여 나를 괴롭히고 안도시켰던 그때.

그때처럼

이곳도 변하지 않았고

이곳을 9년만에 다시 찾은 나도

그렇게 많이 변하지는 않은 듯하다.


이 부근에서 오늘도 보람찬 하루일을 끝낸 나는
늦은 저녁을 2천원짜리 멸치국수로 때웠다.

아직 서울에도 서민들의 먹거리를 파는 시장에는

2천원짜리 한끼가 존재한다는 것에 작은 안도감을 느꼈다.

몇 십분 전에 지갑에 구겨넣은 보람찬 하루일의 대가가 박하다 싶다가도

이런 한끼를 먹고 나면 금방 따뜻한 마음이 된다.


국수를 먹고 전철을 타러 들어가는 횡단보도 모퉁이에

포장 왕만두를 파는 곳이 있었다.

예전에 아버지가 일하시다가 늦게 들어오시면

왕만두를 사오시곤 했는데

가족들이 좋아하지도 않는 왕만두를 사서

퇴근하는 느낌을 이제 알 것도 같다.

집에 도착하면 다 식어버려

결국 하룻밤을 지나 전자렌지에 데워먹었던

왕만두의 진짜 맛을 서른이 넘어서야

조금 안 것일까? 


나도 이젠 퇴근길에 왕만두를 사가는 사나이가 되고 싶다.

그래도 가족들은 좋아하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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