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라는 말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조를 꿰뚫는 한 철학자의 통찰이겠지만...


그 말을 새삼 떠올리며 이상하게 연상되었던 것은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나눠

어떤 정치적인 선택을 하는 노회한 인물상이었다.

노회하다는 것은 나쁘게는 교활하다는 것이겠으나,

상황파악을 잘해서 처신한다는 의미도 될 수 있으니

나쁜 뜻으로만 해석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고보면 솔직하다... 라는 표현은 그 표현의 외면적 진실성만큼

그것이 비현실적인 단어로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솔직히 말할 수 있을까.

솔직한 대화가 서로를 가깝게 만들지 모르지만

정말 솔직한 대화는 각자의 현실을 분명히 인식하게 하는 동시에 서로를 멀어지게 하니 말이다.

마치 그것은 어떤 진실이 아름답기보다는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과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말'이라는 것은 그것이 이상적으로 조합되었을 때에 아름다움만큼

이제는 더이상 어떤 단어조차 말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허망하게 부서질 수도 있는 약한 구조를 가지는 것 같다.

나의 생각은 발화되는 동시에 나의 책임을 안고

누군가에 가 닿아 위로가 되거나

거대한 손톱이 되어 그를 할퀴기도 한다.


자신의 책을 스스로 절판 시키면서까지 세상의 말빚을 없애려는 법정스님의 유언은

언어로 건설된 이 세상을 언어를 완전히 거절하는 형식으로 대면하는 현자의 마지막 가르침처럼 느껴진다.


스승은 말할 수 있는 것에서조차 침묵을 지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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