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written at2009.05.20 02:13:57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정말 리얼한 것이 아닌...
각자에게 리얼하다고 느껴지는 것을
리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막장 드라마...가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황색저널리즘 같은 선정주의의 소산일까?

말도 안되는 스토리...
출생의 비밀, 재벌가의 이면, 백마 탄 왕자, 배신, 음모...  
이런 스토리의 구성은 단순히 막장 드라마의 형식적 요건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며 느끼는 각자의 진실을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대리 경험하게 해 주는 동시에
그런 가상의 경험이 우리가 평소에 느껴왔던 진실을 향해 다가갈 때
그 말도 안되는 스토리가 우리에게 의미있게 다가온다.
다만 이것은 그것을 드러내는데 성공한 막장 드라마에 한한 것이겠지만.   

다시 말하면, 리얼하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리얼하게 느껴지는 것은 존재한다.
어차피 리얼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
이 느껴지는 '리얼' 역시 허상일지 모르지만...
이 '리얼'이 가슴을 움직인다.

가상의 설정이 매력적인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박찬욱의 '박쥐'같은 뱀파이어 영화의 설정이 말이 안되는 이유.
한 뱀파이어가 한 달에 한 번 한 사람의 피를 필요로 하게 되고
그 뱀파이어에게 물린 사람도 뱀파이어가 된다면
지구상에는 3년 안에 뱀파이어로 가득차게 되어
더이상 뱀파이어의 먹이감이 없다는 페러독스가 있다.
그러니까... 세상에 뱀파이어는 없지만 뱀파이어 자체도 리얼한 설정은 아니다.
마치 막장 드라마의 여러 설정처럼 말도 안되는 장치에 불과하다. 
그러나 '뱀파이어'라는 설정 자체가 가지고 있는 풍부한 함의...
이를테면
인간의 어두운 면... 사람이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데서 파생되는 메타포...
초월하고자 하는 의지... 성적인 페티쉬... 등등
우리는 뱀파이어... 라는 설정을 통해 많은 삶의 이면에 있는 진실을 본다.

오늘 '내조의 여왕'이 끝났다.
막장 드라마... 까지는 아니었지만
스와핑에 거의 근접하는 억지 설정에도 불과하고
삶의 이면의 모습을 잘 드러낸 수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면  '연애시대'의 설정도 리얼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리얼하게 진실을 보여줬다는 생각이다.

어떤 예술 작품을 봐도 돌이켜 보면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장치 투성이다.
사진도 결국 삶의 여러 장면을 '억지스럽게' 잘라낸 것에 불과하지 않는가.
이런 억지스러운 장치에도 불과하고
그 안에서 어떤 위안을 얻거나 읽어낸다면
그 작품은 성공한 작품인 것 같다.


고작 드라마 한편의 후기를 쓰려다가 너무 거대한 것을 건든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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