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에 관한 調書

written at2007.03.27 10:18:08

나 자신에 관한 調書


박정대


1
일찍이 나는 떠도는 하나의 섬이었다, 눈물의 망망대해에서 보면

2
살아 있다는 느낌―고요함이 나를 찌른다, 나는 살아 있다

3
죽은 자들의 책 속에서는 이상한 향기가 난다

4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의 오랜 세월이 작은 혁명을 완성한다

5
나는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무력감 속에서 이 글을 쓴다

6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시간의 마차는 사라져간다

7
나는 자살한다, 남들에게 무익하니까, 나 자신에게 위험하니까

8
다시 생각해보아도 정열은 부질없는 것

9
영혼과 육체는 처음부터 일치할 수 없었던 것

10
밤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내 두통의 원인이었다

11
거미들은 새벽에도 왜 외롭다고 소리치지 않는 것일까

12
광기가 나를 완성하지 못한다면 내가 광기를 완성하리라

13
눈에 보이는 것들의 불가사의―그 속을 꿰뚫어본다

14
불가사의한 것들이 우리를 끌고 간다

15
나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겠다, 움직인다는 것은 외로운 것이다

16
산다는 것은 물론 표현한다는 것과는 어느 정도 반대되는 것이다

17
이 밤에 잠들지 못하고 펜을 움직이는 내 손이 저주스럽다

18
정신이 타락하면 육체는 몰락한다

19
그러나 몰락한 육체 속에서 정신이 꽃피는 경우도 있다

20
위대한 작가는 작품 속에서 스스로 침묵할 줄 아는 사람이다

21
겨울은 우리를 따스하게 한다, 그것은 정신의 힘이다

22
패배하지 않는 정신의 힘―나는 그것을 믿는다

23
의미 있는 침묵이란 정당성을 획득할 때 가능하다

24
나는 지금 치명적으로 젊다

25
행복이란 단순한 육체노동 속에서 온다

26
나는 지금 유배되어 있다, 어디에 유배되어 있는지 모르는 채

27
추억은 우리들의 등뒤에 서 있다, 푸른 비수처럼

28
담배를 피운다, 눈이 쓰리다, 눈물이 반드시 슬픔의 형식은 아니다

29
언어는 육체다

30
시인이란 인생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가를 시인한 사람들이다

31
외로움은 표현으로부터 온다, 욕망이 생으로부터 오듯이

32
階段이라는 말속에는 정말로 몇 개의 계단이 있는 것 같다

33
폭력이란 외로움의 극단적 자기표현이다

34
극심한 혼돈은 질서에의 열망과도 비례하는 것이다

35
산다는 것은 끝없이 굴복한다는 것을 배우는 것은 아니다

36
물방울들은 서로의 몸에 경계선을 두지 않는다

37
강물을 바라본다, 흘러가는 것들이 시간이 깊다

38
그대들 안녕하신가, 멀리 혹은 가까이에 있는 섬들이여

39
산다는 것이 때로는 고립 위로 떠오르다

40
블란서와 러시아에 이 밤의 사랑을

41
나는 벌레들을 함부로 죽였다, 그것이 나의 죄다

42
밤하늘의 별들을 모두 셀 수는 없을 것이다

43
또다시 밤을 꼬박 샜다, 오 미친 짓이다

44
열에 들뜬 몸으로 나는 지금 심연으로 가는 길을 안다

45
절망적인 생각들을 몰아내야 한다, 최후까지

46
나는 헛살았다, 라고 중얼거린다, 중얼거리기만 하는 내가 못내 분하고 억울하다

47
왜 이리도 죽음의 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가

48
답답하다, 끊임없이 답답하다

49
……

50
한때 내 영혼의 상류에서 육체의 하류까지 범람하던 사랑이여

51
르 끌레지오―두 개의 계단과 두 개의 시간 사이에 존재하는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고독에 관하여 그는 말했다

52
담배 냄새가 역겹다, 나는 문득 생을 토하고 싶다

53
산다는 것을 포기하고 밤새도록 소설 나부랭이들을 읽다

54
살아 있는 정신은 아름답다

55
거미좌의 별들은 참으로 깨끗하게 빛난다, 사글세의 하늘에서

56
술을 마시지 않고 견딘다는 게 거의 악몽처럼 느껴진다

57
보들레르에게 악수를 청해본다, 그의 퀭한 눈

58
아편복용자처럼 운다, 밤새도록 나의 펜은

59
나는 필사적으로 나의 외로움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본다

60
두통이 나를 물어뜯는다, 새벽부터 나의 고통은 시작된다

61
꿈을 꾸기가 두렵다, 두렵다 세상

62
갈 수 있을 것이다, 두통을 넘어서 어디로든

63
갈 수 없을 것이다, 두통이 너무 심하다

64
나의 고통과는 얼마나 무관하게 이 세계는 흘러가는 것인가

65
에잇, 엿먹어라 세상!

66
너는 날씨 속에 있다, 아주 천박한 날씨 속에

67
작은 새들이 지구를 몰고 또 내 방 창가로 날아온다

68
하늘을 본다, 새떼들이 지금 윤회의 한가운데를 날고 있다

69
나는 언제나 당당하게 행복의 한복판에서 살고 싶었다

70
가을은 10월을 데리고 방랑자처럼 돌아왔다

71
가을은 또 11월을 데리고 부랑자처럼 떠돌 것이다

72
무위여, 파도는 한없이 부서지며 또한 무수한 바다를 이루었던 것을

73
책,책,책, 울며 날아가는 눈먼 박쥐들의 시간

74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위하여, 나는 감히 글을 쓴다

75
나의 영혼은 지금 시와 소설로 분단되어 있다

76
글 속에 나타나는 위대함이란 절실함 속에서 온다

77
글을 쓸 때 가장 위험한 것은 자기검열에서 비롯된다

78
상상력이란 무용한 것이다, 무용함이 때때로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79
산다는 것은 하나의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집요하게 애쓰는 것

80
혹은 하나의 문체를 완성하기 위하여 집요하게 애쓰는 작가들의 삶

81
이 세계는 글로 쓰여진 한 장의 종이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82
모든 것들의 내부는 어둡다

83
동물들 속에서 가장 무서운 사랑을 나는 보았다

84
그저 잠정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던 이별―그것은 영원한 것이다

85
나를 이루지 못하고 떠나가는 무수한 외곽들의 시간들을 보다

86
자신의 音樂을 발견한 자는 하나의 영원을 획득한 것이다

87
이 세계의 질서는 말에 의해 구축되고 말에 의해 파괴되리라

88
먼저 쓰고 그리고 사고하라

89
생선들의 뼈, 낡은 부두, 시간, 붉게 밑줄 쳐진 희망, 고장난 시대의, 하역장, 가로수들의, 헌책방의, 세월, 부두의, 갯내음의, 부서진, 목포에서, 목포에서, 바닷가에서, 꽃처럼 피어오르는, 고기의, 비늘의, 어둠의, 별빛, 부서지는, 포말의, 비릿한 포말의, 가슴의, 가슴의, 한없이 부서지는 목포에서, 목포에서

90
빌더무우트라는 사나이, 그가 한순간 겪었던 진실에 대하여
그것도 육체의 진실에 대하여 목포는 아직도 말할 수 있다
말이 필요 없었던 반다
그리하여 살고 있엇던.
바람과의 일치, 비와의 일치를 말하는 반다의 육체
진실이 육체 속에 일치로 스며 있는 그러한 여인네와
그러한 남자들에 대해 목포는 여전히 말할 수 있다
반다가 살고 있엇던 카를로바츠 또는 목포
……
그러한 목포는 지금 무엇으로부터 멀리 있는가

91
나는 때때로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92
그곳으로의 망명, 이라고 나는 써본다 너 사랑하니, 라고 나는 써본다 새들은 페루를 지나 목포에 가서 죽다, 라고 나는 써본다 장밋빛 노을이 시들면 어둠은 잉크병을 들고 통째로 마시고 있었지 치사량이야, 라고 나는 써본다 너 나 사랑하니, 라고 나는 써본다 그곳으로의 망명, 이라고 나는 써본다 그곳, 아아 너는 혹시 아니 그곳…… 그곳으로의 亡命

93
담배연기, 푸른, 니코틴의 외투

94
푸른 천막, 담배연기, 푸른, 젖은, 깃발, 펄럭이는 영혼의 의혹

95
집착을 버려라, 지구에서 미끄러 떨어지면 우리는 또 다른 아름다운 혹성으로 갈지도 모르니까

96
우리는 블레이크의 시를 완성했다
우리는 이제 차디찬 사람들을 경멸할 수 있다

97
갱지 같은 하늘에는 검은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98
나는 나를 부정하는 적의조차 완성하고 싶었다

99
지금 이 순간에도 태양은 몸서리치며 정오의 꼭대기를 향하여 간다, 떨어진다

100
그대들, 살아 있으라

살아 있으므로 너희는 세계의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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