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Statement

written at2006.11.26 23:19:36

던져져 있다 Geworfenheit


  봄은 언제나 경이롭다. 영화나 문학 같은 예술 분야들, 특정 인물이나 물건들, 그밖에 인간이 만들어낸 많은 것들은 미칠듯이 좋아하다가 금방 시들해지곤 했지만 새싹이 돋고, 꽃이 피고, 해가 떠오르고, 눈이 내리는 매번 반복되는 자연현상들은 그 일상적인 풍경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경이로웠다. 하여 결국 봄은 언제나 경이롭다.

  올해도 봄이 왔다. 나무에는 새순이 돋고 동네 화단에는 꽃이 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벚꽃구경을 가신다며 설레어 하셨다. 나는 어머니께 물었다. 매년 봄마다 보는 꽃인데 나이가 드셔도 꽃이 그렇게 좋으냐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나이가 들면 꽃이 더 좋아진단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존재’란 무언가가 경이로움으로 눈앞에 있는 것이라고 정의 내리면서 인간을 ‘죽음으로 향하는 시간속의 존재’라고 했다. 가톨릭 수도원에서는 ‘인간은 죽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뜻의 말이 주고받는 인사말이라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살아있는 존재라면 누구나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 어느 날 인가 할머니를 찾아뵌 적이 있다. 나는 마침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는데 할머니께서는 영산홍이 흐드러지게 핀 화분을 보여주시며 나에게 이것을 찍어 인화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영산홍이 시들기 전에 찍어두고 친구들이 놀러오면 두고두고 보여줬으면 한다고. 나는 영산홍을 찍었다. (그리고 몇 달 후에 할머니께서 암선고를 받으셨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결국 사진은 재현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사진의 모든 것을 의심해도 재현을 떠나서 생각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영산홍은 지지만 사진은 활짝 핀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할머니도 언젠가 내 곁을 떠나실 것이지만 사진은 웃는 표정으로, 그렇지만 조금 슬픈 정조로 ‘남는다’. 그 사실은 너무 기본적이고 단순하여 진부할 정도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확고한 신념은 단순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믿는다.

  이 작업은 마치 비빔밥처럼 여러 가지 요소가 뒤섞여있다. 어쩌면 정돈되지 않은 혼란스러운 면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습과 닮아있을지 모른다. 그 세상에 ‘던져진’ 존재인 우리들 모습처럼 나는 이미지들을 세상에 ‘던져놓는다’. 물론 내가 작업을 할 때 대상들과 교감했던 동일성의 경험들을 완전한 의미로 소통시킬 생각은 없다. 그것은 너무 교육적이고 계몽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지들이 사람들을 통과할 때 그들 속에서 분절되고 해체되어 다시 재조합되었으면 한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sort
689 퍼포먼스 file 2006-12-26
688 LJW file 2006-12-10
687 LMH file 2006-12-10
686 졸업심사 file 2006-12-10
685 KMK file 2006-12-10
684 file 2006-12-10
683 분홍신 file [1] 2006-12-10
682 Rinko Kawauchi file 2006-12-10
681 생일 file 2006-12-10
» Artist Statement 2006-11-26
679 고등학교 친구들 file 2006-11-22
678 반기문 file 2006-11-22
677 직관 file 2006-11-18
676 특강 file 2006-11-18
675 Anna2 file 2006-11-18
674 세미나실 file 2006-11-18
673 가을-겨울 file 2006-11-18
672 고양이 file 2006-11-18
671 나모양 file 2006-11-18
670 이선생님 file 2006-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