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시대

written at2006.06.13 0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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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다 하는 드라마 이야기지만
아무래도 연애시대는 얘기하고 넘어가야겠다.

연애시대는 소심한 A형 여자와 더 소심한 A형 남자의
'헤어진 후 시작된 이상한 연애'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엔 손예진이 연기한 은호가 보였다.
중반 이후에도 은호만 보였다.
결국 후반에 가서야 감우성의 동진이 살짝 보인다.
처음엔 동진이 이해가 안갔는데
끝난 다음엔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조금 좋게 그를 이해하자면 그는 쓸데없이 사변적인 사람이고
조금 나쁘게 그를 이해하자면 솔직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주변 사람들 엄청 고생시키는 사람이다.

이 드라마가 비현실적이다...라는 이야기는 맞는 이야기이다.
이혼한 후에도 계속 그렇게 만나는 것...
진심을 감추고 속으로만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을 그중 한 사람이 결혼할 때까지 계속 감추고 있는 것...
그 모두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 둘은 왜 그렇게 자주 마주치는가?
누구든 어떤 누군가를 1년에 한 번 마주치기도 쉽지 않은데
왜 그 둘은 그렇게 자주 마주하게 되는가?

또한 은호와 동진이 다시 가정을 꾸리며 살게된다는 마지막회도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각자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더 현실적이지 않는가 하고
이 드라마의 결말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다.
나도 그 결말이 더 현실적이고 아무도 다치지 않는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리얼리즘 드라마는 아니라고도 생각한다.
오히려 이 드라마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는
어떤 질문을 끌어내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된다.

은호와 동진은 보이스오버 나레이션으로 삶의 매 순간마다 질문한다.

사랑은 언제 시작되는가?...
사랑은 언제 끝나는가?...
사랑의 달콤했던 순간은 언제일까?...
그날 내가 받았던 상처는 누구의 잘못일까?...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같을까?...
먼 훗날 나는 이때의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사람들이 소비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조금은 과장되거나 극단적인 것이 보통이다.
그것은 그런 상황에서
삶의 진실이 더 잘 드러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혼 후 시작된 연애같은...
어쩌면 극단적이라고 볼 수 있는 상황은
현실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상황에서 인간적인 갈등속에 나온 질문들은
평범하게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삶의 감각'이라고 부를수 있는 무언가를 되돌려 주는 것 같다.

나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은호와 동진이 다시 합칠 것을 바랬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드라마 바깥 '진짜' 세상의 어쩔 수 없는 진실을 드러내주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 이야기상 최대 피해자인 유경에게는 어떤 '예의'를 보여야할까?
유경은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지만 그녀는 동진에게 버림받는다.
그래서 동진은 평생을 두고 그녀에게 용서를 빌겠다하고
목사로 나오는 은호의 아버지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 드라마를 만든 한지승 감독의 마음이다.
그는 동진이 은호 없이는 못살겠다고 마음을 굳힌 시점 이후에
아무런 말없이 그녀가 요리하는 뒷모습을 롱테이크로 비춰준다.
라디오 방송으로 따지면 3~4분짜리의 가요를 트는 프로그램에서
15분짜리 교향곡을 트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드라마의 보수적인 이야기 전달 문법을 파격적으로 거스르며
감독은 자신이 창조한 유경이라는 캐릭터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같았다.

하여...
은호는 자신의 마지막 나래이션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가끔은 시간이 흐른다는 게 위안이 된다.
누군가의 상처가 쉬이 아물기를 바라면서.


그래서 그녀는 지금 자신이 가진 행복이 염치없다고 말하며
이것이 해피엔딩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고통으로 채워진 시간도 지나고
죄책감 없이는 돌아볼 수 없는 시간도 지나고
희귀한 행복의 시간도 지나고
기억되지 않은 수많은 시간을 지나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우리는 가끔 싸우기도 하고
가끔은 격렬한 미움을 느끼기도 하고
또 가끔은 지루해 하기도 하고
자주 상대를 불쌍히 여기며 살아간다.

시간이 또 지나 돌아보면
이때의 나는 나른한 졸음에 겨운 듯
염치 없이 행복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가 내 시간의 끝이 아니기에
지금의 우리를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호들갑스럽게 일개 드라마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인생은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다.
또한 드라마는 현실세계의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질문하는 실존적인 고민들이
아직도 머릿 속을 맴도는 것은 왜일까?

마지막 대사... '사랑이 뭘까?'라는 질문 뒤에
'답은 없다'식의 어쩔 수 없는 결론처럼
질문되어질 뿐, 답할 수는 없는 여러 명제들이 떠오른다.

그래... 질문하기를 멈추지 말자.
욕망하기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i s l e

2006.06.13 02:00:19

아, 깜빡했는데...
손예진 만세(萬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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