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적인...
written at2006.06.18 23:02:27분주했던 순간이 끝나고 다시 혼자가 된 빈 시간...
그 빈 곳에 들어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이다.
이 외로움에는 도리가 없다.
그것의 가장 밑바닥에 죽음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모든 인간들을 평등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자신의 죽음으로부터 소외시킨다.
하여, 이 외로움에는 도리가 없다.
사람들은 사는 동안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한다.
어쩌면 '살아있음'에 대한 감각은 사랑의 다른 이름.
그것이 다수를 상대로 한 카타르시스 체험이 되었든
단 한사람과의 교감이 되었든
그것은 사랑의 이름으로 불려다닌다.
이 '살아있음'에 대한 감각이 사랑의 이유라면
결국 사랑은 죽음에 대한 저항의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에 대한 구원의 행위로서의 사랑이 환원될 때,
사랑은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 감각은 자기체험적이기 때문이다.
이타적인 표면의 사랑의 신화가 이기적인 실체로 드러날 때
또한 우리는 그 앞에서 망설이며 서성거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시작은 언제나 어렵다.
외로움에도 도리가 없듯이,
사랑의 이기적임에도 도리가 없다.
그렇게 누군가의 이기심과 누군가의 이기심이 부디쳐
어떤이는 상처를 입은채, 세상은 그렇게 흘러왔다.
이 상처에도 도리가 없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위안삼으면서
그 사람의 상처가 쉬이 아물기를 바랄 수 밖에.
아, 도리가 없는 것 또한 너무 무력하다.
슬프구나.
그 빈 곳에 들어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이다.
이 외로움에는 도리가 없다.
그것의 가장 밑바닥에 죽음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모든 인간들을 평등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자신의 죽음으로부터 소외시킨다.
하여, 이 외로움에는 도리가 없다.
사람들은 사는 동안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한다.
어쩌면 '살아있음'에 대한 감각은 사랑의 다른 이름.
그것이 다수를 상대로 한 카타르시스 체험이 되었든
단 한사람과의 교감이 되었든
그것은 사랑의 이름으로 불려다닌다.
이 '살아있음'에 대한 감각이 사랑의 이유라면
결국 사랑은 죽음에 대한 저항의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에 대한 구원의 행위로서의 사랑이 환원될 때,
사랑은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 감각은 자기체험적이기 때문이다.
이타적인 표면의 사랑의 신화가 이기적인 실체로 드러날 때
또한 우리는 그 앞에서 망설이며 서성거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시작은 언제나 어렵다.
외로움에도 도리가 없듯이,
사랑의 이기적임에도 도리가 없다.
그렇게 누군가의 이기심과 누군가의 이기심이 부디쳐
어떤이는 상처를 입은채, 세상은 그렇게 흘러왔다.
이 상처에도 도리가 없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위안삼으면서
그 사람의 상처가 쉬이 아물기를 바랄 수 밖에.
아, 도리가 없는 것 또한 너무 무력하다.
슬프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