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veryday is not the same / 每一天都不一样>, Gallery 175, 서울
written at2008.07.13 20:10:09Date : 2008. 4. 10 ~ 20
Location : Gallery 175, 서울 / Gallery 175, Seoul, Korea
Address :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 175-87 / 175-87 Anguk-dong ,Jongno-gu, Seoul, Korea (zip code 110-240)
Artists : 김나움, 강성은, 문성식, 이은우, 한선욱, 서보경, 구명선, 김미나, 김빛나라, 문중기, 박미경, 박연희, 박진영, 송호은, 옥정호, 이영, 이지현, 전지인, 조주현, 차영석, 최아미, 황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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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하이 그리고 상하이
박진영
샹하이를 '상하이'라고 말하는 순간, 상하이는 벌써 우리의 모국어 속으로 들어온다. 모국어는 '샹'을 차마 발음하지 못하고 '상'이라고 점잖게 발음한다. '샹'에 붙어있던 가파르던 액센트도 나즈막하게 변한다. 그래서 중국의 '샹하이'는 한국의 '상하이'가 된다. '상하이'는 '샹하이'를 지칭하는 '샹하이'의 다른 이름이지만 한국어를 구사하지 않는 인간 집단 속에서는 소통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샹하이'를 '상하이'라고 발음할 때, 그 행위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배타적이며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깔려있다. 이런 과정은 번역 중에 언어의 맵핑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보편적인 일이다. 그러나 보편적이라고 해서 타당한 것은 아니다. 타당성을 검토하는 일은 복잡한 논의가 필요하며 조심스럽다. 그런 논쟁을 밀어두고 우리가 상하이를 이야기 할 때 가져야 할 것은 상하이의 위치가 우리의 서쪽이라고 인지하는 출발점 설정에 관한 기억이다. 나는 당신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당신을 바라본다.
나는 2008년 3월 12일 부터 26일까지 상하이에 있었다. 내가 '상하이'라고 했을 때 '샹하이'가 내 모국어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나는 말 그대로 상하이 속으로 들어왔다. 상하이 속에 있는 나는 상하이와는 여러 가지로 다른 이질적인 존재였으나 나와 비슷한 얼굴을 가진 사람들을 바라보며 '닮아있음'에 대해 생각했다. 당신과 나는 다르지만 서로 '닮아있다'. 물건을 사러 가게에 들어가서 영어로 말할 때 상점 주인이 잠시 당혹스러워 하는 얼굴 표정을 보며, 혹은 여행자인 나에게 오히려 중국어로 길을 물어보는 현지인들을 바라보며 당신과 내가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것이 무엇인지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부분을 찾아내는 순간에 우리가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당신이 나와 거리두기를 시작하게 하는 '차이'는 '논리'에서 시작하지만 '공통점'을 찾아내는 일은 '기지'에서 출발한다는 WJT 미첼의 말을 나는 다시 생각한다.
상하이를 가기 전에 상하이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내가 알아낸 것은 상하이의 역사적 발전 배경, 인구, 면적, 위치적 정보, 관광지, 시민의식 따위에 관한 것이었다. 인간이 겪는 모든 경험은 체험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간접경험'으로 많은 대상을 인식한다. 그 인식은 '차이'에 기반 하는데 그런 차이에 대한 지식이 가장 극대화 된 것이 '학문'이며 서구가 만든 '백과전서'가 상징적으로 대표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결국 이 차이에 대한 정보를 찾고 그것을 상하이를 인식하는 데 사용했다. 상하이에 대한 상상을 주제로 한 첫번째 작업은 그런 지점들에 대한 나의 고민들을 담고 있다. 상하이에 대한 정보들은 현재를 반영하지 못하거나, 서구의 시각으로 부정적인 면만 들추거나, 공산권 국가에 대한 이미지의 클리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그런 정보들에 대해 의구심을 표시한다. 모니터 화면 속에 떠 있던 그 정보들은 R과 G와 B로 혹은 0과 1로 이루어진 총합처럼 느껴졌다. 상하이 푸동 국제 공항에 내리자마자 보이던 야오밍의 거대한 와이트칼라 광고판 앞에서, 결국 나는 내가 찾았던 그 정보들이 무력해짐을 느꼈다.
나는 상하이에 머무르면서 상하이인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분명 어떤 부분들은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환경들과 많이 달랐다. 그러나 이내 곧 당신과 내가 가진 수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과 내가 같은 인격과 감정을 지닌 인간이라는 점을 발견한다. 당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잠시 당신이 되어본 나는 영원히 당신이 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알지만 이젠 당신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혹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할 수 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아주 역한 냄새가 나는, 그래서 내 주변에 한국인들은 피했던, 당신이 즐기는 음식을 먹어보았다. 나는 그 음식을 여전히 즐겨먹을 수는 없지만 당신이 왜 그 음식을 즐겨먹는지 이해할 수 있다. 처음 상하이에서 불편했던 많은 상황들이 서서히 적응되면서 편하게 느껴졌다. 내가 상하이에서 체험하며 만들었던 두번째 작업은 이런 태도에서 출발했다. 나는 여전히 여행자이며 당신이 살던 자리에 2주 동안 머물렀을 뿐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나와 다른 점 보다는 같은 점이 더 많은 사람들임을 발견한다. 당신은 빌딩숲 매연 속에서 어딘가로 가고, 무언가를 팔고, 허기져서 밥을 먹는다. 그 광경들은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슬퍼보였다. 밥을 벌어 먹고 사는 모습들은 어디나 비슷한 것인가?
'상하이'와 '샹하이'는 한 획 차이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