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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text">:::::: isle, 섬 ::::::</title>
      <updated>2012-02-08T05:47:24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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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진가 Richard Moss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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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9-03-23T01:03:58P</published>
      <updated>2009-03-23T01:34:02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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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isle</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font color=&quot;#444444&quot; size=&quot;3&quot;&gt;:::Homepage:::&lt;/font&gt;&lt;font color=&quot;#444444&quot;&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richardmosse.com/&quot;&gt;http://www.richardmosse.com/&lt;/a&gt;&lt;br&gt;&lt;br&gt;&lt;br&gt;&lt;/font&gt;




&lt;font color=&quot;#444444&quot; size=&quot;3&quot;&gt;:::Biography:::&lt;/font&gt;&lt;font color=&quot;#444444&quot;&gt;&lt;br&gt;&lt;br&gt;
Born 1980, County Kilkenny, Republic of Ireland&lt;br&gt;&lt;br&gt;
Education&lt;br&gt;
2006-2008 Yale School of Art, photography MFA&lt;br&gt;
2004-2005 Goldsmiths, postgraduate diploma in fine art, AHRB funding&lt;br&gt;
2002-2003 London Consortium, MRes in cultural studies&lt;br&gt;
1998-2001 Kings College London, BA in English literature, first class honours&lt;br&gt;&lt;br&gt;
Solo Exhibition&lt;br&gt;
2008 Kilkenny Arts Festival, curated by Hugh Mulholland, 8-17 Aug&lt;br&gt;
2007 Nothing to Declare, solo show at Derby University, Oct-Dec&lt;br&gt;
2006 La Caja Blanca, solo show, Palma de Mallorca&lt;br&gt;&lt;br&gt;
Group Exhibition&lt;br&gt;
2008 Tate Modern symposium on Friedrich Kittler, screening of Untitled (Ireland) 2007, 28 June&lt;br&gt;
2008 Yale MFA photography 2008 at Gallery 339, Philadelphia, 11 July-6 Sept&lt;br&gt;
2008 Yale MFA Photography 2008 at Danziger Projects, New York, 27-31 May&lt;br&gt;
2008 Yale Photo MFA thesis show, Green Gallery, Yale School of Art, 16-27 May&lt;br&gt;
2008 New Insight, selected work from America&apos;&apos;s 12 leading art schools, Art Chicago, 1-4 May&lt;br&gt;
2008 LOOP Barcelona, video art fair, 8-10 May&lt;br&gt;
2007 Phillips de Pury, of selected work from C International Photo Magazine 7-26 Sept&lt;br&gt;
2007 Jam Art 07 Mallorca, 19-23 Sept&lt;br&gt;
2007 Documenta XII Magazine Project, part of Multitudes Journal, France&lt;br&gt;
2006 screening of Ya&apos;&apos;ni Intifada at London&apos;&apos;s Palestine Film Festival&lt;br&gt;
2006 Stop Moving, Photodebut collective, duratrans in lightboxes on the back of a truck, touring London 18-21 Nov&lt;br&gt;
2005 Bloomberg New Contemporaries, 2005, touring Barbican Art Gallery London, Cornerhouse Manchester, Spike Island Bristol&lt;br&gt;
2005 Perspective, Ormeau Baths Gallery, Belfast. Winner of the Perspective prize selected by Terry Atkinson and Ariella Azoulay.&lt;br&gt;
2005 Goldsmiths Postgraduate Diploma thesis show&lt;br&gt;
2005 The Big M, Isis Arts, touring Newcastle Upon Tyne, Berwick etc&lt;br&gt;
2005 Never Finished, Always Ready, Shoreditch, London&lt;br&gt;
2005 International Artist Workshop, Palestinian Ministry of Culture, Ramallah&lt;br&gt;
2004 It Went Dark &amp;amp; I Saw, Photodebut group show, London College of Communications&lt;br&gt;
2004 Open #20, Cafe Gallery Projects, London&lt;br&gt;
2003 Camden People&apos;&apos;s Theatre, London&lt;br&gt;
2002 Observer Hodge Award, Guardian Newsroom, London&lt;br&gt;&lt;br&gt;&lt;br&gt;&lt;/font&gt;






&lt;font color=&quot;#444444&quot; size=&quot;3&quot;&gt;:::Interview:::&lt;/font&gt;&lt;font color=&quot;#444444&quot;&gt;&lt;br&gt;&lt;br&gt;
■
&lt;/font&gt;&lt;font color=&quot;#444444&quot;&gt;아일랜드와 영국, 미국 세 나라의 현대사진을 모두 경험했는데 어떤 차이가 있는가? &lt;br&gt;
&lt;br&gt;
아 일랜드에서는 아직 사진이 예술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아일랜드는 시각예술가보다는 문학가나 음악가를 많이 배출했다. 영국 런던의 골드스미스에 수학하면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점은 사진이 미학의 분류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정치적이고 천편일률적으로 절제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소통의 도구로서 예술은 무시되는 듯했고 아름다움 자체가 갖는 불가항력의 에너지는 잊혀져버린 듯했다. 또한 골드스미스에서의 예술은 그 자체를 인용하고 언급하는, 다분히 자기 귀환적인 성격이 강했다. 거세당한 예술, 자기만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버린 예술은 더 이상 세상을 내다볼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버린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을 준다. 당신 집의 모든 창문이 거울로 되어 있다고 상상해 보라. 이러한 문제는 미국의 사진예술에서는 드문 유럽예술만의 징후로 표출되는 것 같다. 물론 미국 사진예술의 성향 역시 완벽하지는 않다. 특히 그것이 정치적인 것과 연결되어 있을 때 미국 관람객들은 작품이 갖고 있는 상이성과 양면성(이면의 성질)을 인정하는데 매우 인색하거나 훈련되어 있지 않다. 이는 내가 미국에서 작품을 발표하는데 가장 꺼려지는 부분이며 미국 사진예술의 한 단면이다. 나처럼 사람들의 고통이나 비극을 주제로 작업하는 사진가들은 그 대상에 대한 슬픔을 조용히 흐느껴야 하며 머리를 떨군 채 장엄하고 심각하게 말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물론 그 대상을 존중은 해야 하지만 나는 그것이 승자와 패자, 비난과 동정과 같은 감정의 군더더기 없이 직접적이고 단순한 의미에서 가볍게 표현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복잡하며 그 변화와 진행에 어쩔 수 없는 폭력을 동반하게 된다. 나는 이것이 표현의 중요한 요소가 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lt;br&gt;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color=&quot;#444444&quot;&gt;‘Untitled’ 시리즈는 제목이 ‘무제’임에도 불구하고 캡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캡션이 필요했던 이유와 사진에 미친 영향은?&lt;br&gt;
&lt;br&gt;
‘Untitled’ 는 전쟁과 지진 그리고 그밖에 다양한 대참사에서 살아남은 건축물 등 재난의 특별한 형태를 기록한 시리즈다. 2005년에 처음 이 시리즈를 런던에서 전시했을 때는 아무런 제목을 달지 않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이미지들은 불안정하게 되고 단순한 폐허의 공간으로 전락해 버렸다. 사실 캡션(내용)은 이미지를 읽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의도적으로 ‘무제’ 시리즈로 엮은 것은 아마도 보도사진과 예술사진의 경계에서 고민하던 나의 간절한 속임수 정도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것은 이 작업의 핵심이다. ‘무제’ 시리즈의 실험을 통해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예술의 신비성이 저널리즘의 전지적인 시점에 일격을 가한 것이다.&amp;nbsp; &lt;br&gt;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color=&quot;#444444&quot;&gt;당신의 사진은 저널리즘의 테두리에 있으면서도 표현에서는 예술사진과 경계가 맞닿아 있다.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긴박한 상황을 찍는 포토저널리스트보다 멀찍이 서서 주관적으로 상황을 관조하는 아티스트에 가깝게 느껴진다. &lt;br&gt;
&lt;br&gt;
포 토저널리즘은 타인의 고통을 찾아 나선다. 내 작업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끼친 일레인 스커리(Elaine Scarry)는 “고통은 갑자기 우리 삶의 중심으로 찾아오는 것이며, 이는 우리가 부정할 수도 확인할 수도 없는 것이다”고 했다.(The Body in Pain, Elaine Scarry, Oxford University Press, 1985) 나는 당신의 아픔에 연민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결코 당신이 느끼는 고통을 똑같이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듯 나와 타인의 고통은 교감할 수 없는 것인데 어떻게 감히 우리가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기대하겠는가.&lt;br&gt;
숭고함과 아주 특별한 관계에 있는 현대미술은 앞서 제시한 일레인 스커리의 의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임마뉴엘 칸트는 이렇게 말했다. ‘숭고함’이란 우리의 상상력이 그 어떤 개념과 일치하는 대상을 표현하는데 실패함으로써 탄생한다. 쉬운 예를 들어 ‘전쟁공포’라는 개념과 얼굴 전체가 온통 화상으로 일그러진 이라크 참전용사의 결혼식 사진을 생각해보자. 이 화상으로 끔찍한 군인의 얼굴이 ‘전쟁공포’라는 추상적인 개념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가? 여기에서 발생하는 것이 숭고미이며, 그를 통해 우리는 개념을 이해하거나 혹은 비평하게 된다. 칸트이론에 따르면 숭고함은 실패에 관한 이야기이며 개념 이해의 실패는 우리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유하게 한다. 이러한 숭고함에 관한 철학적 접근은 오늘날 많은 예술작업에서 볼 수 있는 미니멀리즘의 근간이며 이런 의미에서 현대예술은 타인의 고통을 표현하는데 매우 이상적인 자리에 있다.&lt;br&gt;
&lt;br&gt;
&lt;br&gt;
■&lt;/fon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lt;font color=&quot;#444444&quot;&gt;당신은 전쟁, 재난, 화재 등에 대한 현대인의 불안과 공포심리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폐허 속의 분위기나 흔적 등을 통해 매우 건조하면서 서정적으로 표현한다.&lt;br&gt;&lt;br&gt;
나는 검은 천을 뒤집어쓰고 트라이포드에 의지해 작업하는 대형카메라를 선호한다. 그러나 내 작업은 특성상 빠른 속도를 요구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대상물들이 스스로를 표현하기를 바라고 기다린다. 렌즈가 갖는 불능의 한계는 내가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는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이미지 만들기의 토대가 된다. ‘나는 셔터가 열린 매우 수동적인, 생각하지 않는, 기록하는, 카메라이다. 창문 너머에서 면도를 하고 있는 남자와 기모노를 입은 채 머리를 감고 있는 여자를 기록하고 있다. 언젠가 이 모든 것은 현상되어야 하며 인화되고 정착되어야 한다.’(크리스토퍼 이셔우드(Christopher Isherwood)의 소설 ‘Goodbye to Berlin’(1939) 중에서) 나는 이러한 바보 같은 단순함이 역사를 열어보는 기막힌 도구가 되며,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시각적인 기억상실을 해결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마치 우리가 소설을 읽다가 읽기를 멈추면 스틸이미지를 볼 수 없게 되는 현상과도 같다. 우리는 본다. 그러나 우리는 즉각적으로 그것을 망각한다.&lt;br&gt;&lt;br&gt;&lt;br&gt;&lt;/font&gt;



&lt;font color=&quot;#444444&quot; size=&quot;3&quot;&gt;:::Work:::&lt;/font&gt;&lt;br&gt;
&lt;br&gt;
&lt;/font&gt;&lt;/font&gt;&lt;div align=&quot;center&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lt;img src=&quot;http://www.jinyoungpark.com/files/attach/images/4394/518/007/untitled-bam-2004.jpg&quot; alt=&quot;untitled-bam-2004.jpg&quot; title=&quot;untitled-bam-2004.jpg&quot; style=&quot;&quot; /&gt;&lt;/font&gt;&lt;/font&gt;&lt;br&gt;
&lt;/div&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
&lt;br&gt;
&lt;/font&gt;&lt;/font&gt;&lt;div align=&quot;center&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lt;img src=&quot;http://www.jinyoungpark.com/files/attach/images/4394/518/007/trial-03.jpg&quot; alt=&quot;trial-03.jpg&quot; title=&quot;trial-03.jpg&quot; style=&quot;&quot; /&gt;&lt;/font&gt;&lt;/font&gt;&lt;br&gt;
&lt;/div&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
&lt;br&gt;
&lt;/font&gt;&lt;/font&gt;&lt;div align=&quot;center&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lt;img src=&quot;http://www.jinyoungpark.com/files/attach/images/4394/518/007/trial-02-2005.jpg&quot; alt=&quot;trial-02-2005.jpg&quot; title=&quot;trial-02-2005.jpg&quot; style=&quot;&quot; /&gt;&lt;/font&gt;&lt;/font&gt;&lt;br&gt;
&lt;/div&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
&lt;br&gt;
&lt;/font&gt;&lt;/font&gt;&lt;div align=&quot;center&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lt;img src=&quot;http://www.jinyoungpark.com/files/attach/images/4394/518/007/trial-01-2005.jpg&quot; alt=&quot;trial-01-2005.jpg&quot; title=&quot;trial-01-2005.jpg&quot; style=&quot;&quot; /&gt;&lt;/font&gt;&lt;/font&gt;&lt;br&gt;
&lt;/div&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
&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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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
&lt;br&gt;
&lt;/font&gt;&lt;/font&gt;&lt;div align=&quot;center&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lt;img src=&quot;http://www.jinyoungpark.com/files/attach/images/4394/518/007/gulf-IV-2006.jpg&quot; alt=&quot;gulf-IV-2006.jpg&quot; title=&quot;gulf-IV-2006.jpg&quot; style=&quot;&quot; /&gt;&lt;/font&gt;&lt;/font&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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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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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
&lt;br&gt;
&lt;/font&gt;&lt;/font&gt;&lt;div align=&quot;center&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lt;img src=&quot;http://www.jinyoungpark.com/files/attach/images/4394/518/007/El-Cenizo-2007.jpg&quot; alt=&quot;El-Cenizo-2007.jpg&quot; title=&quot;El-Cenizo-2007.jpg&quot; style=&quot;&quot; /&gt;&lt;/font&gt;&lt;/font&gt;&lt;br&gt;
&lt;/div&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
&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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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
&lt;br&gt;
&lt;/font&gt;&lt;/font&gt;&lt;div align=&quot;center&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lt;img src=&quot;http://www.jinyoungpark.com/files/attach/images/4394/518/007/747-Heathrow-2007.jpg&quot; alt=&quot;747-Heathrow-2007.jpg&quot; title=&quot;747-Heathrow-2007.jpg&quot; style=&quot;&quot; /&gt;&lt;/font&gt;&lt;/font&gt;&lt;br&gt;
&lt;/div&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
&lt;br&gt;
&lt;/font&gt;&lt;/font&gt;&lt;div align=&quot;center&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lt;img src=&quot;http://www.jinyoungpark.com/files/attach/images/4394/518/007/737-Teesside-2008.jpg&quot; alt=&quot;737-Teesside-2008.jpg&quot; title=&quot;737-Teesside-2008.jpg&quot; style=&quot;&quot; /&gt;&lt;/font&gt;&lt;/font&gt;&lt;br&gt;
&lt;/div&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
&lt;br&gt;
&lt;/font&gt;&lt;/font&gt;&lt;div align=&quot;center&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lt;img src=&quot;http://www.jinyoungpark.com/files/attach/images/4394/518/007/737-San-Bernardino-2007.jpg&quot; alt=&quot;737-San-Bernardino-2007.jpg&quot; title=&quot;737-San-Bernardino-2007.jpg&quot; style=&quot;&quot; /&gt;&lt;/font&gt;&lt;/font&gt;&lt;br&gt;
&lt;/div&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
&lt;br&gt;
&lt;/font&gt;&lt;/font&gt;&lt;div align=&quot;center&quot;&gt;&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lt;img src=&quot;http://www.jinyoungpark.com/files/attach/images/4394/518/007/707-Damascus-2008.jpg&quot; alt=&quot;707-Damascus-2008.jpg&quot; title=&quot;707-Damascus-2008.jpg&quot; style=&quot;&quot; /&gt;&lt;/font&gt;&lt;/font&gt;&lt;br&gt;
&lt;font color=&quot;#0000ff&quot;&gt;&lt;font color=&quot;#000000&quot;&gt;
&lt;/font&gt;&lt;/font&gt;&lt;/div&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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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진가 Loretta Lux</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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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5-05-06T22:08:27P</published>
      <updated>2009-03-23T01:33:26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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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i s l e</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align=&quot;center&quot;&gt;&lt;img alt=&quot;&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512/007/self.jpg&quot; border=&quot;0&quot;&gt;&lt;/p&gt;&lt;br&gt;&lt;br&gt;&lt;a onclick=&quot;window.open(this.href);return false;&quot; href=&quot;http://www.yossimilo.com/&quot;&gt;http://www.yossimilo.com/&lt;/a&gt;&lt;br&gt;&lt;a onclick=&quot;window.open(this.href);return false;&quot; href=&quot;http://www.lorettalux.de/&quot;&gt;http://www.lorettalux.de/&lt;/a&gt;&lt;br&gt;&lt;br&gt;::: PROFILE :::&lt;br&gt;&lt;br&gt;1969&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Born&amp;nbsp;&amp;nbsp;in Dresden &lt;br&gt;1990-96&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Studied painting at Akademie der Bildenden Künste,&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Munich with Professor Gerd Winner &lt;br&gt;&lt;br&gt;&lt;br&gt;Solo Exhibitions&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br&gt;&lt;br&gt;2004&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oretta Lux”, Torch Gallery, Amsterdam&amp;nbsp;&lt;br&gt;2004&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oretta Lux”, Yossi Milo Gallery, New York City &lt;br&gt;2003&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oretta Lux&quot;, Galerie f 5,6 , Munich&lt;br&gt;2003&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oretta Lux - Erfindung des Seins&quot;, Stadt Museum Muenster &lt;br&gt;&lt;br&gt;&lt;br&gt;Selected Group Exhibitions&amp;nbsp;&amp;nbsp; &lt;br&gt;&lt;br&gt;2004&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bout Face”, Hayward Gallery, London &lt;br&gt;2004&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quot;Making Faces&quot;, Musée de l&apos;Elysée, Lausanne, Switzerland &lt;br&gt;2004&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The Picture of Innocence”, Frist Center for the Visual Arts, Nashville, TN&lt;br&gt;2004&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quot;La Collection Ordonez Falcon&quot;, Le Botanique, Brussels&lt;br&gt;2003&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By The Sea”, Yossi Milo Gallery, New York City&lt;br&gt;2003&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Ninos”, Centro de Arte de Salamanca, Salamanca &lt;br&gt;&lt;br&gt;&lt;br&gt;&lt;br&gt;::: WORKS :::&lt;br&gt;
&lt;p align=&quot;center&quot;&gt;&lt;br&gt;&lt;img alt=&quot;20_01.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512/007/20_01.jpg&quot; border=&quot;0&quot; width=&quot;315&quot; height=&quot;1601&quot;&gt;&lt;br&gt;&lt;img alt=&quot;20_02.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512/007/20_02.jpg&quot; border=&quot;0&quot; width=&quot;315&quot; height=&quot;1673&quot;&gt;&lt;br&gt;&lt;img alt=&quot;20_03.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512/007/20_03.jpg&quot; border=&quot;0&quot; width=&quot;315&quot; height=&quot;1138&quot;&gt;&lt;/p&gt;&lt;br&gt;&lt;br&gt;&lt;br&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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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title>사진과 영화</title>
      <id>http://www.jinyoungpark.com/7510</id>
      <published>2005-04-27T22:04:03P</published>
      <updated>2005-04-27T22:04:03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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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i s l e</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사진과 영화, 프로젝션의 차이&lt;br /&gt;
&lt;br /&gt;
사진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재현 프로젝션의 방법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영화가 사진보다 한번 더 재현하는 이중의 프로젝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 말고도 양자의 사이에는 차이점이 더 있다. 우선 일상에 대한 스크린(screen, 검색)을 살펴보자면 사진은 우리의 재현된(혹은 우리가 재현한) 일상을 직역적으로 재현하며, 이에 반해 영화는 의역적 재현을 한다. 사진이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복사하듯 재현한다면, 영화는 일상과 유사한 모습을 연출하여 재현한다. 따라서 재현의 강도는 사진보다 영화 쪽이 훨씬 더 강하고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사진에 나타난 일상은 그 자체가 자연스러워서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의 일상은 익숙함과 낯설음 사이에서 이상하게 보일 때가 많다. 그것이 연출과 편집적인 재현이기 때문에 그렇다. &lt;br /&gt;
&lt;br /&gt;
사 진&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영 화&lt;br /&gt;
fac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fiction&lt;br /&gt;
pose&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gesture&lt;br /&gt;
studium&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punctum&lt;br /&gt;
field&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mise en scene&lt;br /&gt;
seen&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scene&lt;br /&gt;
awareness&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knowledge&lt;br /&gt;
view&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viewpoint&lt;br /&gt;
apprehension&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comprehension&lt;br /&gt;
tex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context&lt;br /&gt;
sequence&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narrative&lt;br /&gt;
understanding&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interpretation&lt;br /&gt;
code&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decode&lt;br /&gt;
reproduction&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representation&lt;br /&gt;
&lt;br /&gt;
또 하나, 프로젝션 방법이 보편적인가, 분석적인가에 따라 사진과 영화의 일상적 재현에 차이가 있다. 사진은 분석 없이 일상 그 자체를 보여주기 때문에 재현에 의문이 없지만, 영화는 사람들이 재현했던 일상을 분석적으로 재현하기 때문에 일상에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재현의 차이점이 발생한다. &lt;br /&gt;
폴 프루이저(Paul W. Pruyser)가 말했던 “이미지는 의식 속에 있지 않고 의식의 작용 속에 있다”는 말은 사진과 영화의 재현적 차이를 설명하는데 더없이 적절하다. 사진 이미지는 곧 일반화된 이미지의 경험을 말하며 사진의 특징이다. 이에 반해 영화 이미지는 의식이 작동하는 분석적인 이미지, 곧 컨트롤된 이미지를 말하는 영화의 특징이다. 그래서 사진은 사람들의 일상적 동작에 대해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지만, 영화는 동작들을 눈여겨보고 연출 단계에서부터 의미를 부여한다. 사진과 영화의 차이는 재현의 코드의 익숙함과 낯설음의 차이이기도 하다. &lt;br /&gt;
&lt;br /&gt;
&lt;im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510/007/h_5.jpg&quot; align=&quot;&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250&quot; border=&quot;0&quot; alt=&quot;h_5.jpg&quot; /&gt;&lt;br /&gt;
▲ 조용준, &amp;lt;신광철&amp;gt;, 1999, color&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김진형, &amp;lt;무제&amp;gt;, 1999, color&lt;br /&gt;
&lt;br /&gt;
브레히트의 연극은 일상에 대한 우리의 익숙함과 낯설음의 관계를 비집는 것이다. 연극이든, 영화이든 일단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극이 종료될 때까지 모든 사람들은 현실과 동일시한다. 마치 플라톤의 동굴처럼 이미지를 실재화하고, 현실세계로 착각한다. 우리 삶의 모든 재현적(혹은 경험된) 이미지들이 어둠 속에서 환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극장의 우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브레히트는 그것을 익숙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브레히트는 그 익숙함의 환영, 극장의 우상을 깨는 것을 연출의 기본으로 삼았다. 사람들이 극장 속에서 환영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부단히 실재를 인식하도록 무대를 낯설게 하거나 연출을 통해 낯선 내러티브를 구성한다. 그래서 브레히트 연극의 주요한 요소는 제스처이다. 그는 제스처가 재현의 출발점, 동시대의 문화적 상징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lt;br /&gt;
&lt;br /&gt;
&lt;/div&gt;</content>
                  
   </entry>
   <entry>
      <title>포스트리얼리즘 사진</title>
      <id>http://www.jinyoungpark.com/7505</id>
      <published>2005-04-27T21:45:18P</published>
      <updated>2005-04-27T21:45:18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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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i s l e</name>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Ⅰ.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의 정체&lt;br /&gt;
근현대미술이 그랬듯이 사진도 누군가에 의해서 처음 어떠한 모습들이 선보이게 되면 뒤따라서 유행처럼 그러한 사진의 모습들이 속속 나타나게 되고, 그리고 난 다음에는 이에 따른 이론이 만들어져 이내 하나의 장르 혹은 경향으로서 예술적 틀을 제공하곤 한다. 그러한 사진사적 예라면 아마 19세기의 ‘픽토리얼(Pictorial) 포토’, 20세기 초반의 ‘스트레이트(Straight) 포토’를 들 수 있겠고, 현대사진에서는 6-70년대의 ‘컨셉추얼(Conceptual) 포토’와 80년대의 ‘컨스트럭티드(Constructed) 포토’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lt;br /&gt;
최근 현대사진에 ‘포스트리얼리즘 사진(Post-Realism Photo)’이라는 새로운 경향이 확산되고 있고, 이제 국제적으로 하나의 형식으로서 자리하려는 것 같다. 늘 이즘(ism)을 좋아하고, 새로운 이론에 들떠 있는 사람들이 있는 한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지는 것이 이즘이고 이론이지만, 그러나 포스트리얼리즘의 경우 모처럼 찾아온 사진적 이즘이자 과거에 없었던 사진의 리얼리즘 논의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8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진이나 구성사진이 이즘 또는 경향으로서 널리 유행했던 적은 있지만 그것들은 사진에서 파생된 것이 아닌, 현대미술 전반에 걸쳐서 나타난 시대사적인 이즘이자 이론이었다. 때문에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의 경우는 사진계 내부로부터 자생적으로 태동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lt;br /&gt;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은 ‘포스트’라는 접두어를 달고 나타났지만 그러나 아직 명료한 이론적 체계가 세워지지 않은 상태라 단정지어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현재 이러한 경향의 사진들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고, 또 우리 나라에서도 유사한 스타일의 사진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현대사진의 맥락에서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여겨진다.&lt;br /&gt;
&lt;br /&gt;
가.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의 요건&lt;br /&gt;
&lt;im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505/007/h_1.jpg&quot; align=&quot;&quot; width=&quot;551&quot; height=&quot;331&quot; border=&quot;0&quot; alt=&quot;h_1.jpg&quot; /&gt;&lt;br /&gt;
▲ 제프 월, &amp;lt;The quarrel&amp;gt;, 1988, color&lt;br /&gt;
&lt;br /&gt;
동서양 근현대사에서 ‘리얼리즘’ 만큼 그 성격규정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던 사조도 없을 것이다. 엥겔스로부터 고리끼, 루카치, 브레히트, 블로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는 임화로부터 김기진, 김남천, 백낙청, 염무웅에 이르기까지 사상과 문학에서 리얼리즘은 가장 뜨거운 근현대사의 논점이었다. 따라서 리얼리즘은 지금도 그 성격규정이 어렵고 제대로 정체를 밝힐 수 없는 난제로 남아 있는데, 리얼리즘이 이처럼 난맥상을 보였던 것은 일차적으로 사실주의와 리얼리즘에 대한 부정확한 인식과 이에 따른 작가의 창작태도와 표현방법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lt;br /&gt;
그러나 사진사 160년을 회고할 때 사진만은 이러한 시대사적인 리얼리즘 논쟁에서 멀찍이 물러서 있었던 것 같다. ‘리얼리티(Reality)’라는 말은 사진사&lt;br /&gt;
&lt;br /&gt;
&lt;im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505/007/h_2.jpg&quot; align=&quot;&quot; width=&quot;550&quot; height=&quot;217&quot; border=&quot;0&quot; alt=&quot;h_2.jpg&quot; /&gt;&lt;br /&gt;
▲ 샘 타일러-우드, &amp;lt;Five Revolutionary Seconds&amp;gt;, 1999, color&lt;br /&gt;
&lt;br /&gt;
문맥에서 빈번히 쓰이고 또 통용되었던 말이지만 리얼리즘이란 말은 사진의 역사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용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진의 속성상 가장 빈번하게 쓰여질 걸로 예상된 리얼리즘이 이처럼 전체 사진 텍스트에서 찾기 보기 어려웠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진이 스스로 그 속성을 리얼리즘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사진의 모습을 스스로 리얼리즘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문학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던 리얼리즘 문학이나 혹은 미술에서의 ‘극 사실주의’와 달리 사진은 하나의 사조 및 경향으로서 리얼리즘을 수용하지 않았던 것이다.(그 점에서 전후 일본과 한국에서 하나의 경향으로 나타났던 ‘사회주의 리얼리즘 사진’(일본)과 ‘생활주의 리얼리즘 사진’(한국)은 매우 특별한 경우로서 이에 대한 비평적 고찰이 요구된다) &lt;br /&gt;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의 사조 및 경향으로서 이제껏 논의되지 않았던 리얼리즘 사진이 90년대 후반에 들어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등장한 까닭은 또 무엇일까?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 가장 실질적이고도 적절한 답을 해줄 사람은 아마 사진가 제프 월(Jeff Wall)이나 필립-로르카 디코르시아(Phillip-Lorca diCorcia) 혹은 사진평론가 수잔 웰리(Susan Weiley)가 될 것이나, 나는 오히려 우리의 문학평론가 최유찬의 저서 &amp;#43092;리얼리즘 이론과 실제비평&amp;#43093;(도서출판 두리, 1992)에서 더 적절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lt;br /&gt;
최유찬은 &amp;#65378;오늘의 사실주의와 그 창작방법&amp;#65379;이라는 소제목에서 리얼리즘과 관계된 오늘의 창작방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첫째, 현실의 변화가 창작방법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그것은 객관적인 현실의 변화와 인간의 주관에 인식된 새로운 현실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둘째, 현실을 인식하는 방법과 표현수단의 변화는 인식의 변화는 물론이고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의미작용을 생산한다. 셋째, 재현대상의 현실을 인식하고 그것을 형상화하는 방법은 그 시대의 주요 창작방법에 따르며, 서로 다른 현실에서 설정되는 현실인식 방법은 동시대의 표현의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lt;br /&gt;
사실주의 창작방법이란 현실의 변화에 따라 부단히 변화할 수 있는 것으로 본 다는 최유찬의 관점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대한 역사적 조건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의 논리는 포스트리얼리즘이 이 시대에 다시 등장할 수 있는 세 가지 발생적 조건을 정당화시킨다. 맨 먼저, 시대에 따른 리얼리즘의 인식변화에 대한 당위성을 강화시켜 주고 있으며, 둘째는 리얼리즘이 현실에 따라, 조건에 따라, 환경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증거하고, 그리고 셋째는 서로 다른 사회적, 문화적 현실에 따라 그 표현방법이 달라진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리얼리즘이 사실주의로 해석되기보다는 현실주의로 해석되는 것이 보다 적절하며, 또한 리얼리즘이란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이야기 한 것도 그 동안 사진을 리얼리즘 자체로 믿었던 과거 재현 리얼리티에 대한 성찰의 기반이 되고 있다. &lt;br /&gt;
&lt;br /&gt;
90년대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의 조건은 사실적인 재현과 현실적인 재현의 경계에서 나왔다. 즉,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의 토대는 스트레이트 포토와 이른바 메이킹 포토의 경계점에서 나온 것으로서, 스트레이트적인 요소와 메이킹적인 요소를 적절히 절충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경계점이란 사실주의와 현실주의의 경계점이기도 한데, 만약 리얼리즘이 사실성과 현실성을 토대로 삼는다면, 스트레이트적인 요소는 사실성으로서, 그리고 메이킹적인 요소는 현실성으로서 이해할 수 있다.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에 포스트라는 접두어가 붙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의 연출성의 문제, 예컨대 인공성이 개입하는 문제는 최유찬의 글 &amp;#65378;오늘의 사실주의와 그 창작방법&amp;#65379;에서 예를 들었던 것처럼 현실의 변화 및 인식의 변화에 따른 인공성의 수용이다. 그래서 절대 사실성을 고수했던 과거의 리얼리즘과 달리 변화된 사회현실에서 싹튼 새로운 전형의 리얼리즘이기에 포스트리얼리즘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lt;br /&gt;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의 또 다른 발생적 조건은 그 동안 줄곧 리얼리즘을 옭아맸던 당파성 혹은 사상적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게 된 데서 나온 것이다. 리얼리즘의 여러 측면 중에서 특히 논란이 됐던 부분은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현실의 모순성과 변증법적 유물론에 따른 당파적, 계급적 이데올로기인데, 이것들이 무의미해졌다는 오늘의 현실인식이 포스트리얼리즘을 탄생시킨 것이다. 즉 오늘의 리얼리즘이 과거의 이념 중심적이고 계급 중심적인 리얼리즘과는 달리, 사회속에서 개인들이 조성하는 환경 중심적이고, 타자 중심적이고, 시추에이션 중심적인 문화적 리얼리즘으로 변모했다는 것이 현대 포스트리얼리즘의 발생조건이다.&lt;br /&gt;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의 세 가지 태동조건을 다시 정리하자면,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국 현실변화에 따른 리얼리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사실주의에서 현실주의로), 테크놀로지 시대에 따른 창작적 방법론의 변화가(자연성에서 인공성으로), 그리고 물질중심시대를 맞아 재현대상의 당파적, 사상적 이데올로기의 해체에서(계급성에서 계층성으로)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은 태동된 것이다.&lt;br /&gt;
&lt;br /&gt;
나.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의 창작방법&lt;br /&gt;
&lt;br /&gt;
예술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창작방법의 변화는 그 시대의 현실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리얼리즘에 대한 해석도 달라진 것이고, 사진에 대한 인식도 달라진 것이다. 재현 리얼리티에 대한 의문을 촉발했던 90년대는 ‘사진=진실’이라는 등식을 믿지 않으려 했으며, 사진이 현실의 거울이라는 오랜 관용어마저도 회의하게 되었다. 아무런 조작 없이 눈에 보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찍으면 진실이고, 현실이고, 사실이 된다는 말을 어느 나라, 어느 누구도 확신할 수 없게 된 사회가 90년대이다. 그렇다고 보면 90년대가 저물어 가는 시점에 리얼리즘이 새로운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났다는 것은 정말 우연치 않은 일이다. &lt;br /&gt;
오늘날 사회적 현실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세계 어느 나라나 대동소이해 가고 있음을 볼 때, 지구촌 곳곳에서 펼쳐지는 현대인의 삶이야말로 새로운 리얼리즘의 형상이 아닐 수 없다.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은 바로 그러한 확실히 획일화되어 가는 현대사회의 모습과 현대인의 일상적 삶을 주된 소재로 삼고 있다. 그렇기 위해서 현실감 넘치는 인위적인 연출을 감행한다. 인공성의 영역은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의 주된 창작방법이며, 거의 대다수 사진들이 의식적으로든, 전략적으로든 일상을 세트화 시키거나 대상을 철저히 연출시킨다. 그러나 비록 연출이되 허구가 아닌 철저한 진실의 형상이며, 일상 속에서 흔히 마주치고 겪게 되는 현실의 단면으로서 삶의 세부이다. &lt;br /&gt;
&lt;br /&gt;
&lt;im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505/007/h_3.jpg&quot; align=&quot;&quot; width=&quot;407&quot; height=&quot;282&quot; border=&quot;0&quot; alt=&quot;h_3.jpg&quot; /&gt;&lt;br /&gt;
▲ 티나 바니, &amp;lt;Friends and Relations&amp;gt;, 1990, color&lt;br /&gt;
&lt;br /&gt;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의 창작방법은 80년대 초반에 처음 나타난다. 필립-로르카 디코르시아의 작품이 맨 먼저 새로운 사회, 새로운 문화에 대한 현실주의 시각을 드러냈고, 이어 캐나다 벤쿠버의 제프 월이 80년대 중반부터 다소 개념적인 방법으로 동시대 사회현상을 사진으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미치 엡스타인이 도시풍경에서 현실풍경으로 방향전환을 하면서 유사한 경향성을 띠었고, 80년대 말에 들어서면서부터 티나 바니가 가정의 일상을 강력한 시각으로 표출하면서 점차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의 전형성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또한 다큐멘터리 사진에서도 어프로치는 다르지만 영국의 마틴 파처럼 현대문화의 단면들을 강력한 메시지, 인상적인 컬러를 통해서 과거와 다른 새로운 전형의 뉴 다큐멘터리 사진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80년대 포스트리얼리즘의 경향성은 아주 미미한 것이었다. &lt;br /&gt;
90년대에 들면서 필립-로르카 디코르시아와 제프 월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이들의 방법론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뒤따라 스테판 엑슬러, 사라 존스, 한나 스타키, 앤 자할카, 샘 타일러-우드, 에스코 만니코 등 주로 유럽권의 사진가들로부터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의 전형성이 확보되기 시작했다. 이들 사진들의 공통적인 요소들, 이를테면 스틸 라이프(Still Life) 식의 재현성, 디스플레이적인 장식성, 연극적인 제스처, 에니메이션적인 동작, 그리고 인테리어적인 실내풍경 등, 한 화면에 삶의 양식들을 모두 채워놓은 영화적 미장센(mise-en-scene) 수법이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의 전형으로 자리잡았다. &lt;br /&gt;
또한 이들이 지향했던 메시지도 주목을 받았는데 대체적으로 개인에게 작용하는 사회의 영향 내지는 사회 속에서의 개인의 역할을 탐구하는 것이거나, 소외를 유발시키는 환경적 요소들을 드러내거나, 사회구조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거의 무조건적으로 사회적 기능들을 수행, 답습해야 하는 동시대인들의 상황을 세밀히 따지는 것이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의 메시지이다. 그래서 사진은 인위적으로 연출된 영화의 세트처럼 보이기도 하고, 문학적 서사가 진행중인 연극의 단막극처럼 단절된 보습을 보이기도 한다.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이 연극, 영화, 애니메이션과 만나고 문학과도 만난다는 말은 이와 같이 현실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인위적인 창작방법에 의해 현실을 세팅하기 때문이다.&lt;br /&gt;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에 대한 이론 형성은 90년대 중반에 서서히 시작되었다. 물론 이전에 정치사회학적 관점에서 ‘Post-Realism’이란 용어는 소통되어 왔고, 이와 관련된 책들도 적지 않게 출간되었다. 그러나 예술분야에서 크게 공론화 된 적은 없었으며, 사진분야에서도 처음부터 학술포럼을 통해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필립-로르카 디코르시아와 제프 월 작품에 대한 작품집 서문을 통해서, 그리고 이들에 대한 저널들의 평문에서 그 단초가 마련되었고, 그러다가 1995년 봄 사진평론가 수잔 웰리가 &amp;#43092;아트포럼&amp;#43093;에 이들 사진의 경향성을 조심스럽게 개진한 이후로 필립-로르카 디코르시아 사진에 대한 프란체스코 보나미의 글(플래시 아트 95년 여름호), 사라 존스에 대한 존 실리스(John Slyce)의 글(플래시 아트 99년 5-6월호), 그리고 가장 최근 마이클 브렌슨(Michael Brenson)과 마델린 그린츠텐(Madeleine Grynsztejn)의 대담(아트포럼 99년 9월호)에 이르기까지 간단없이 이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lt;br /&gt;
&lt;br /&gt;
&lt;im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505/007/h_4.jpg&quot; align=&quot;&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251&quot; border=&quot;0&quot; alt=&quot;h_4.jpg&quot; /&gt;&lt;br /&gt;
▲ 정강, &amp;lt;잃다&amp;gt;, 1998, color&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김옥선, &amp;lt;영진빌라 201호&amp;gt;, 1999, color&lt;br /&gt;
&lt;br /&gt;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은 그 경향성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 사진으로 혹은 구성사진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러나 80년대 맹위를 떨쳤던 포스트모더니즘 사진과 구성사진(이른바 ‘만드는 사진’)과는 전혀 다른 어프로치이다. 언뜻 생각할 때 내용이 유사하다고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전혀 다른 맥락이며, 형식에서도 유사한 창작방법을 취하고 있지만 전적으로 다른 표현방법이다.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은 그것들과 달리 실제로 일어나는 현실적인 삶을 겨냥하며, 비록 연출이라는 인공성을 공통적으로 채택하지만 철저히 현대사회의 모순과 불합리함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그것들과는 맥락을 달리한다. &lt;br /&gt;
때문에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의 창작방법은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도와 컨셉이 바로 보인다. 모두 컬러사진이며, 계층적 삶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인공조명에 의한 삶의 도구들이 현실감 있게 드러난다. 세팅은 주방, 거실, 침실 등 일상의 가정을 주된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 다음으로는 변두리 외곽지역, 그 다음으로는 도시의 특정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세부적인 연출로 들어가면 대상들은 거의 절대적으로 침묵하고 있으며, 서로간의 시선이 부딪치는 일이 없다. 세트는 대단히 장식적이고 화려하며, 전체적으로 순간정지(혹은 일시정지)의 느낌이 강하다. 일상적 삶의 모습을 예리하게 자름으로써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모두 새로운 리얼리즘의 전형성인 것이다.&lt;br /&gt;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제프 월의 사진이 거의 교과서적으로 그 전형성을 보여주고 있고, 한국 현대사진에서도 그 같은 경향성을 볼 수가 있는데 이를테면 김상길의 사진, 박경일의 사진, 정강의 사진, 김선민의 사진, 김옥선의 사진에서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의 특징을 볼 수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사진이 포스트리얼리즘에 대해 자기주장을 한다거나, 그것들을 수용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들의 사진이 유사한 경향성을 띤다는 것은 그들도 현대의 변화된 삶과 변화된 사진의 경향성을 읽는다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나 유사한 구조의 아파트에서 살고, 비슷한 주방과 거실, 침실에서 시간을 보내며, 똑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고 차를 타며 살아간다. 전세계가 이미 삶의 구조를 공통적으로 향유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lt;br /&gt;
때문에 우리의 몇몇 작가들이 포스트리얼리즘을 인식했건 못했건 간에, 서구사진을 모방했건 답습했건 간에, 이미 그러한 사진들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현실의 변화가 창작방법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고, 현실을 인식하는 방법과 현실의 조건들이 재현대상의 형상을 바꿨다는 것은 우리의 현실이 이미 서구화되었고, 문화적 삶 역시 상당부분 세계화됐음을 말한다. 그렇기에 우리 작가들이 포스트리얼리즘의 &lt;br /&gt;
경향성을 알았건 몰랐건 간에, 그 문화적 컨텍스트만은 세계와 공유하고 있고 현대사회의 보편성과 전체성을 그들과 똑같이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lt;br /&gt;
그 뿐만 아니다. 우리의 몇몇 작가들의 창작방법이(혹은 표현형식이) 제프 월이나 필립-로르카 디코르시아와 같은 소위 국제적인 작가들의 표현방식과 유사하더라도, 창작방법의 변화는 그 시대 현실의 변화에 따른다고 하는 현대미술의 경향성을 미루어 볼 때 우리의 현대사진이 서구적인 삶에서 태동한 표현형식을 차용 내지는 수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리얼리즘에 대한 현실인식도 마찬가지이다. 경향성이야 다르겠지만 그들 사진이나 우리 사진이나 모델과 장소만 다를 뿐 현실을 인식하는 방법과 표현방법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 특히 포스트리얼리즘이 사실성보다는 현실성에 초점을 맞추고, 현대사회의 삶의 양상을 환기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다면, 우리 사진의 유사한 경향성도 결국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lt;br /&gt;
리얼리즘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났던 루카치가 “새로움은 전체적인 역사적 현상이며, 사회생활 전체를 포괄하고 전체에 침투하는 변화”라고 했듯이, 리얼리즘은 보편적, 객관적 사회현실이 인간의 구체적 삶의 형태들 속에 어떻게 관철되어 운동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 형상은 분명히 살아있는 인간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형상일 뿐 아니라, 분명 작가의 주&amp;#8228;객관적인 조건에 놓여있는 보편적 형상에 다름 아니다. 포스트리얼리즘 사진도 그러한 리얼리즘의 현대적인 모습일 뿐인 것이다.&lt;br /&gt;
그 점에서 현대사회의 멘털(mental) 국면과 피지컬(physical) 국면을 교묘하게 접합시켰던 필립-로르카 디코르시아의 사진은 이 시대 리얼리즘의 모습을 재인식시키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본다. 그의 작품을 평했던 프란체스코 보나미(Francesco Bonami)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시대는 이제 다시 리얼리즘을 호출하고 있다. 그것은 리얼리즘을 그 자체로 인식하여 리얼리즘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하지 않았던 사진을 호출한 것이고, 사진으로 하여금 새로운 임무부여를 한 것이기도 하다. 사진이 사실주의로부터 멀어지고, 대신 현실주의로 다가간 지금, 비로소 사진에게 리얼리즘을 말하게 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또 계급적인 것과 사상적인 것과 무관해진 오늘의 리얼리즘이 이미 스스로 그것들을 초월한 세상에 놓여있음을 의미한다. ‘스무 살의 감성 TTL’ 광고는 우리 삶의 멘털과 피지컬 국면, 예컨대 자연과 인공의 국면이 결국 우리 시대의 리얼리즘임을 보여준다. 사진도 마침내 그것들을 깨달았다는 말이다.&lt;br /&gt;
&lt;br /&gt;
출처 : 진동선지음, 현대사진의 쟁점, 푸른세상 77p~89p&lt;br /&gt;
&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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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진가 HIROMIX</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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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5-02-05T11:50:24P</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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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align=center&gt;&lt;IMG alt=&quot;&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94/007/hiromix2_copy.jpg&quot; border=0&gt;&lt;/P&gt;&lt;BR&gt;&lt;BR&gt;BIOGRAPHY&lt;BR&gt;Hiromix (Tokyo, 1976) Real name Toshikawa Hiromi. Father is a chef (French cuisine). Graduated from high school in Koenji, Tokyo in April 1995. Her first claim to fame was through a photo contest called the &quot;11th New Cosmos of Photography (Shashin Shin-seiki, sponsored by Canon) in March 1995. Her entry was a small 36-page photo book made of color copies of regular prints. The title was &quot;Seventeen Girl Days&quot; (also called &quot;School Days&quot;). It was a photo diary compiled into an album-like booklet which was not an unusual technique. However, her photos gave a light-hearted, fast-paced, and original look at this 17-year-old high school senior girl. &lt;BR&gt;It was a glimpse into the girl&apos;s scenes and icons of everyday life: a pet cat, a record, poster, flowers, friends, and self portraits. All the good, random moments of her current life. She used a Konica &quot;Big Mini&quot; compact camera. (One of the first shots she took with that camera was of herself with her hand holding the camera outstretched in front of her.) Araki Nobuyoshi, one of the judges, nominated her as the contest&apos;s 1st place winner. She worked on the photo book while seeking the advice of Homma Takashi, a photographer. &lt;BR&gt;In 1995, the year of her high school graduation, she already starts a full-blown photography career. She writes a diary for an Internet magazine, she photographs musicians for &quot;Rockin&apos; On Japan&quot; magazine, she is commissioned to be the photographer for the J-Wave FM radio station posters for train stations, and in Dec. she is named the overall &quot;Grand Prix&quot; winner for the 11th New Cosmos of Photography photo contest, earning 1 million yen in prize money. However, a week before the awards ceremony, the immense media frenzy and sudden fame had took its toll on her and she fell ill with stress-induced gastritis. Her mother accepted the award on her behalf. (This photo contest has served as a major photography career springboard for many of the contest winners.) With eye make-up on, Hiromix has quite an exotic-looking face. (She has a trademark &quot;mod&quot; look reminiscent of the 1960s.) Her self-portraits of her petite body are also quite sexy with mini-skirts, hot pants, underwear, topless, etc. She had all the elements (youth, sex appeal, a fresh face, and talent) for mass media appeal and was soon featured in many major magazines and on TV programs. &lt;BR&gt;Since junior high school, she liked the 1960s and &apos;70s look. Where she grew up, there were many used clothing and recycle shops and browsing through the old and cheap clothes was one of her favorite pastimes. She went to flea markets as well and made friends, four of whom with which she formed a &apos;60s-style R&amp;amp;B group called The Clovers. This group of five mod-looking girls emphasize their looks and style more than their lackluster singing. She loves all kinds of colors in her photos. She has also tried her hand at movie-making (of an R&amp;amp;B event) and enjoyed what the medium can offer. Hiromix continues to be busy with editorial, advertising, and photo art work. Rockin&apos; On Japan, a music magazine, is one publication where her photos appear regularly. -Philibert Ono-&lt;BR&gt;&lt;BR&gt;&lt;BR&gt;REPORT_1&lt;BR&gt;몇 년 전부터 디지털 카메라는 매니아층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한 두해 전부터 &apos;디카&apos; 라는 약칭으로 불리며 한국의 젊은이들을 사진에 열광시키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를 분신처럼 지니고 다니는 이들 &apos;디카족&apos;은, 언제 어디서나 그들의 일상을 &apos;사진&apos;으로 기록한다. 간편하고 빠르게, 그러나 조금의 모자람도 없이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담아내는 이 기록매체는 그들 취향과 편의에 딱 맞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적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가 문화적인 유행에 있어서 일본에 받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lt;BR&gt;디카문화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스티커 사진 열풍 역시 일본의 프린트 하우스에서 시작된 것. 95,6년을 기점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스티커 사진은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게 &apos;사진&apos; 이라는 다소 경직되고 생소한 문화를 일상적이고 간편한 주변의 문화로 인식 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했었다. 디지털 카메라 역시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때 영향을 받은 면이 없지 않다. 특히 디지털 카메라가 가진 특성 중 하나인 &apos;주변사의 기록성&apos; 은 특히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게 강하게 어필하였다. &lt;BR&gt;일본에는 이와 같은 특성을 살린 사진으로 일약 스타가 된 소녀 한명이 있다. 바로 히로믹스. 일상적이고도 솔직한 주변사를 소재로 사진을 찍어 사진 열풍을 불러 일으킨 당사자이다. 그당시 일본에서는 히로믹스가 10대와 20대의 문화 코드가 될 만큼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lt;BR&gt;그녀는 발랄한 성격을 가진 일본의 흔한 17살 여고생일 따름이었다. 실제 이름은 히로미 도시카와. 그녀는 코니카 빅 미니 35밀리 컴팩트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카메라로 사진부에서 활동하며 평소 재미 삼아 자신과 친구들의 일상 생활을 찍는 것을 즐기던 참이었다. 소녀와 친구들은 이 작업을 꽤나 즐겼었고, 덕분에 그녀는 친구들의 브래지어와 팬티 바람의 사진도 쉽게 찍을 수 있었다. (그리 일상적인 소재라고 할 수는 없을 정도로, 조금 센세이셔널 하기는 하다.) &lt;BR&gt;재미있는 것은, 그녀가 가볍게 찍은 이 사진을 혼자 간직하지 않고 95년, 캐논이 주최한 &apos;사진 신세기전&apos;에 출품하기로 했던 것이다. 조금은 어이 없는 발상에서 시작된 이 일은 결국 대박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그녀가 탄생시킨 36페이지짜리 칼라 복사물 [세븐틴 걸 데이즈]가 평단과 일반인 사이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lt;BR&gt;그녀는 결국「신세기」의 그랑프리를 손에 쥐었다.&lt;BR&gt;그녀의 사진에서 보이는 솔직함과 여고생의 발랄함 때문인지 사람들 역시 그녀의 사진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저명한 예술 잡지 [스튜디오 보이스]와 락 잡지 [락킹 온 재팬]이 그녀에게 새로운 사진을 부탁했고, [상상 속의 연인에게 보내는 사진 연애 편지] 같은 사춘기적인 사진집 역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lt;BR&gt;스튜디오 보이스는 &quot;그녀의 작품은 이론적인 가식에 얽매인 인위적인 사진이 아니다. 바로 사진의 순수성을 지향하고 있다.&quot;며 그녀 사진이 가진 작품적 가치를 평했다. 사진 논단에서도 그녀의 사진에 대해 긍정적이었다.&lt;BR&gt;컴팩트 카메라로 가부키초의 창녀들과 노는 자신의 모습을 찍는 등「사(私)사진」을 찍어오고 있는 아라키 노부요시의 영향도 지적되었다. &apos;나 자신에 대한 관심&apos;, &apos;가벼움&apos;, &apos;자유로움&apos;, &apos;사진기술로부터의 해방&apos; 이 단어들은 그녀 사진을 상징하는 말이다. &lt;BR&gt;그녀는 일본의 일약 스타가 되어버렸다. 일본의 젊은 사진가들은 &apos;좋아하는 사진가&apos;를 조사하는 앙케이트에 그녀의 이름을 적어넣었으며, 이후에도 그녀는 이런 저런 사진공모에서 수상을 거듭했다. 그야말로 인기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히로믹스는 네 명의 친구들과 함께 60년대풍 R&amp;amp;B 그룹 &apos;클로버&apos; 를 결성, 음반과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방송활동까지 시작했다. 물론 음악성 짙은 그룹은 아니었고 겉모습에나 신경을 쓰는 귀여운 반짝 스타 경향이 다분했지만 그런 모습 역시 일본 소녀들의 판타지를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lt;BR&gt;말 그대로 &apos;사진&apos;이 &apos;스타&apos;를 탄생시킨 것이다.&lt;BR&gt;그녀는 얼마전 24살이 되던 해 일본 사진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키무라 이헤이상을 받게 되었다. 인터뷰에서 그녀는 수동으로 찍으면 실패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자동 카메라로 찍었다고 당당히 이야기 한다. 기분이 좋으면 좋은 사진이 찍힌다고 사진의 비결을 말한다. 그 순수함과 로맨틱 함이 아마도 그녀를 그 자리로 이끌었을 것이다. &lt;BR&gt;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사진을 통해 스타가 되는 일은 종종 보여지고 있다. 얼마전 월드컵에서 찍힌 사진 한장으로 미스 월드컵으로 낙점. 가수데뷔를 목전에 둔 M양 . D일보에 고무장갑을 낀 사진으로 수배령까지 내려졌던 에피소드. 길거리에서 찍힌 사진이 잡지에 실려 스카웃 되었다는 몇몇 연예인 등, 사진이 점차 대중화 되면서 생기는 재미있는 일화가 아닐까? 언젠가 사진&apos;찍는 것&apos;이 더욱 대중화 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분명 제 2의 히로믹스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나이브하다 핀잔 들을지 모르겠지만, 남기고 싶은 젊은 날의 하루를 사진 한 장에 담아 두는 것. 꽤나 낭만적인 일이 아닌가? (웹진 줌인 주인선 기자)&lt;BR&gt;&lt;BR&gt;&lt;BR&gt;REPORT_2&lt;BR&gt;요즘 신촌이나 강남 등의 번화가에 가면, 분홍색 차양 앞에 줄지어 선 젊은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친구나 연인끼리 얼굴을 디밀고 버튼을 누르면 스티커에 찍힌 사진을 얻을 수 있는 즉석 스티커 사진기. 유치한 배경에 조악한 색상이지만 낄낄거리며 사진을 찍어대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즐겁기만 하다. 사진기 옆에는 손님들이 기념으로 하나씩 붙여 놓은 스티커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lt;BR&gt;어디에서 처음 만들어졌을까? 물어볼 것도 없이 &apos;일본&apos;이다. 세가에서 처음 만들어진 &apos;프린트 클럽 머신&apos;은 몇 년 전부터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어 왔는데, 하라주쿠나 신주쿠 같은 동경 중심가에서도 이 기계 앞에 늘어선 수십 미터의 긴 줄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줄의 대부분이 여학생들이라는 사실이다. 남자들끼리는 물론 연인과 함께 온 남자도 찾아보기 힘들다. &lt;BR&gt;지금 일본에서는 묘한 &apos;사진 찍기 붐&apos;이 일고 있는데, 그 붐의 중심에는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여자 아이 &apos;히로믹스&apos;가 있다. 히로믹스? 헤어 누드 사진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아이돌 스타쯤으로 여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일본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여성 사진가이다. &lt;BR&gt;히로미 도시카와는 그저 발랄한 성격에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17살 짜리 여학생이었다. 그녀는 코니카 빅 미니 35밀리 카메라를 하나 가지고 있어 재미 삼아 자신과 친구들의 일상 생활의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적극적이었고, 브래지어와 팬티 바람의 사진도 손쉽게 찍을 수 있었다. 보통 이 정도 되면 친구들끼리 돌려보며 키득거리든지 여학생들의 속옷 사진을 게재하는 주간지에 사진을 보내는 정도가 될텐데, 그녀는 이 사진들을 95년 3월 캐논이 주최한 &apos;사진 신세기전&apos;에 출품하기로 했다. 36페이지짜리 일반 프린트의 칼라 복사물, [세븐틴 걸 데이즈]. 이 엉성한 아마츄어의 작품은 뜻밖에도 평단과 일반인들 사이에 폭발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고, 연말에는 그랑프리를 수상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직접 수상하지는 못했다. 그랑프리 수상 1주일 전에 갑작스런 유명세를 견디지 못해 신경성 위염으로 쓰러져버렸기 때문)&lt;BR&gt;아파서 누워 있는 것도 잠시, 그녀는 다시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돌아와 일본 전역에 &apos;히로믹스 열풍&apos;을 불러일으켜야 했다. 이국적인 60년대 모드 룩의 여인처럼 보이는 그녀의 외모 때문인지, 작품들의 솔직 발랄함 때문인지 사람들은 잡지와 사진집에 실린 그녀의 사진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저명한 예술 잡지 [스튜디오 보이스]와 락 잡지 [락킹 온 재팬]이 그녀에게 새로운 사진을 부탁했고, [상상 속의 연인에게 보내는 사진 연애 편지] 같은 사춘기적인 사진집 역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lt;BR&gt;애완 고양이, 레코드, 포스터, 꽃, 여학생, 자화상... 어떻게 자동 카메라로 찍은 이런 아마츄어의 작품들이 일본 사진계를 감동시켰을까? [스튜디오 보이스]는 &quot;그녀의 작품은 이론적인 가식에 얽매인 인위적인 사진이 아니다. 바로 사진의 순수성을 지향하고 있다.&quot;며 작품의 가치를 말한다. 그 사진들 속에서 17세 여학생의 일상 생활의 상징들을 속속들이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lt;BR&gt;그러나, 몇 년 전 아라키라는 남성 사진작가가 가부키초의 창녀들과 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찍어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과 같이 히로믹스의 사진은 &apos;솔직함&apos;과 &apos;센세이셔널리즘&apos;의 양면을 가지고 있다. 발랄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여학생들이 자기 생활의 중요한 악세서리가 된 자동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꾸밈없는 스스로의 모습을 찍는다는 데에서는 사진 본연의 가치에 충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나가시마 유리 등 젊은 여성 사진가들의 상당수가 &apos;셀프 누드&apos;에 중심을 둔 작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데서 잘 드러나듯이, 히로믹스의 작품 역시 남성들에게 &apos;여학생 침실 엿보기&apos;의 쾌감을 주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lt;BR&gt;그러나, 남자들이 엿보든 말든 히로믹스를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로 그녀의 친구들이다. 히로믹스 또래의 여고생들은 히로믹스의 자유분방함을 사랑하고 스스로 히로믹스가 되고 싶어한다. 히로믹스도 그렇지만 그녀들에겐 고급 카메라가 필요없다. 자동 카메라는 물론 간편한 일회용 카메라도 좋다. 즉석 스티커 사진기도 좋다. 자신들의 젊은 때를 뭔가 그럴 듯하게 찍어낼 수만 있다면 &apos;대만족&apos;인 것이다. 후지 필름은 바로 이점에 착안, 찍기는 간편하지만 색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는 일회용 흑백 카메라의 시판에 나서 한 달에 20만 개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lt;BR&gt;일약 스타가 되어버린 히로믹스는 네 명의 친구들과 함께 60년대풍 R&amp;amp;B 그룹 &apos;클로버&apos;를 만들어 뮤직 비디오와 음반 취입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노래는 흐리멍텅하고 겉모습에나 신경을 쓰는 그룹이지만, 그런 모습 자체가 소녀들의 꿈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히로믹스는 자신의 새로운 생활을 기록한 일기를 웹진에 게재하고, 곧 영화에도 손댈 생각이라고 한다.&lt;BR&gt;80년대 후반부터 여성 사진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녀 만화가 많이 등장해왔다. 사진가가 되고 싶어하는 젊은 여성의 수가 급격히 늘어난 것도 그때부터라고 한다. 그렇게 여학생들이 꿈이나 만화 속에서나 상상해온 일들이 현실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세가의 한 관계자가 말하듯이 그녀들은 &quot;자신들이 많은 친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자신들의 젊은 시절을 남기고 싶어한다.&quot; 그것만으로도 즐겁고, 제2의 히로믹스가 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일본은 그런 사소한 꿈들을 문화로, 상품으로 만들 줄 아는 나라다. &lt;BR&gt;&lt;BR&gt;&lt;BR&gt;REPORT_3&lt;BR&gt;- 일본 현대사진의 경향 -&lt;BR&gt;
&lt;P align=right&gt;미시마 야스시(아사히 카메라)&lt;/P&gt;먼저 이 자리에 불러주신 주최측에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지금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젊은 사진가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여기 소개하는 사진가들은 공통의 개념이나 기준에 따라서 선택된 것도 아니고, 또 활동하는 장소나 표현방법도 서로 다릅니다. 그리고 물론 일본에는 이들 사진가 이외에도 많은 젊은 사진가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드리는 것은 지금 일본에서는 어떤 사진가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고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 그 하나의 단면을 전하는 것으로 이해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lt;BR&gt;&lt;BR&gt;금년 봄, 화제가 되었던 사진에 관한 뉴스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젊은 사진가에게 주는 일본에서 가장 큰 사진상의 하나인 키무라 이헤이木村伊兵衛상 수상자에 관한 아사히신문朝日新聞의 기사를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quot;드디어, 아니면 이제야 겨우, 나가시마 유리에長島有里枝(27)와 니나가와 미카川實花(28), 히로믹스HIROMIX(24)가 일본 사진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키무라 이헤이상을 받게 되었다. 세 사람은 1990년대의 일본의 사진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10대, 20대 여성들에 의한 사진」이라고 하는 붐을 만들어낸 중심적인 인물들이다. 세 사람이 공동으로 수상한 것도 그렇지만, HIROMIX는 최연소 수상자이다. 음악잡지나 패션잡지에서도 활약하고 있으며, 시대의 풍속현상으로서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그녀들의 수상은 사진계 뿐만 아니라 문화계 전반에 걸쳐 많은 화제를 뿌리고 있다.&lt;BR&gt;&lt;BR&gt;컴팩트 카메라로 친구들의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을 어깨에서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찍는다. 피사체와의 거리는 제로. 90년대, 젊은 여성들에 의한 그런 사진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 「사진 신세기」와「사진 3×3㎡」전 같은 공모전을 통해서 주목받기 시작한 사진가들이다.&amp;nbsp;&amp;nbsp; &lt;BR&gt;&lt;BR&gt;그 선두를 달린 것이 93년 공모전에서 수상한 나가시마 유리에였다. 자신을 포함한, 따뜻하면서 애잔한 느낌을 주는 가족들의 누드사진으로 충격을 주었다. 그 후에도 미국에서의 생활을 통해서 작풍의 폭을 넓혀나갔다. 이번 수상 대상인 사진집도 사람과 거리의 체취를 느끼게 해준다.&lt;BR&gt;&lt;BR&gt;HIROMIX가 그 뒤를 이었다. 1995년 고등학교 졸업 무렵, 자신의 방이나 친구들을 찍은 사진으로「신세기」의 년간 그랑프리를 받은 뒤로, 음악잡지「락킹 온 저팬」등으로 활동영역을 넓혀나갔다.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듯한 개방감이 특징이다. 수상 대상인 사진집은 그 총결산이라고 할 수 있다.&lt;BR&gt;&lt;BR&gt;니나가와도 공모전에서 몇 차례 수상을 거듭했는데, 자신과 자신의 여동생, 사적인 공간을 선명한 색채로 정착시키고 있다. 수상 대상은 두 권의 사진집으로, 한 권은 여성 뮤지션들을 찍은 사진, 또 한 권은 여행에서 만난 사람과 풍물을 찍은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다. 색유리를 통해서 들어오는 것과 같은 특이한 광선과 색채로 보는 사람에게 일종의 가벼운 현기증 같은 것을 일으키게 만드는 사진이다.&lt;BR&gt;90년대, 카메라는 젊은 여성들에게 있어서 휴대전화나 &apos;프리쿠라&apos;(스티커사진)와 마찬가지로 없어서는 안 될 커뮤니케이션 도구였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어쩌면 깊이가 없는 일상 가운데에서 「지금」,「이곳」에 있는 자기 자신을 몸으로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컴팩트 카메라로 「사(私)사진」을 찍어오고 있는 아라키 노부요시荒木經惟로부터의 영향도 지적되었다.&lt;BR&gt;&lt;BR&gt;잡지사 편집부에 들어온 4명의 심사위원의 강평 가운데에서, 사진가인 시노야마 키신篠山紀信은 &quot;질주하고 있어요, 밝아요, 힘이 넘쳐요, 바람구멍을 내고 있어요, 아마, 틀림없이…&quot; 라고 적고 있다. 한편, 후지와라 신야(藤原新也)는 수상자들은 &quot;말하자면 전후의 경제전쟁의(풍요로운) 전쟁고아 같은 존재다(생략), 아니면 그들은 처음부터 외부外部라고 하는 것을 생리적으로 단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quot; &quot;그렇기 때문에 무無의 세계로부터 일어서서 나가는 가능성을 거기서 본다.&quot; 라고 평하고 있다.&lt;BR&gt;&lt;BR&gt;이 기사는 90년대의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사진표현 붐에 관해서 짧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원동력이 된 3명의 여성사진가가 동시에 큰상을 받게되어 잡지나 TV 등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요즘 젊은 여성들의 사진표현의 경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가에 관해서는 강조할 필요도 없습니다.&lt;BR&gt;다만 이들에게 상이 주어진 시기가 다소 늦어진 탓으로, 이 상을 계기로 젊은 여성들에 의한 사진 붐이 다시 일어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녀들의 사진표현도 이미 하나의 스타일로서 자리잡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lt;BR&gt;&lt;BR&gt;그러면 지금부터 &apos;나 자신에 대한 관심&apos;, &apos;가벼움&apos;, &apos;자유로움&apos;, &apos;사진기술로부터의 해방&apos; 등을 특징으로 들 수 있는 그녀들의 작품에 관해서 짧게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lt;BR&gt;&lt;BR&gt;나가시마 유리에長島有里枝(Nagashima Yurie)&lt;BR&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300 alt=naga.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94/007/naga.jpg&quot; width=400 border=0&gt;&lt;BR&gt;「Pastime Paradise」, (2000)&lt;/P&gt;&lt;BR&gt;1973년 생. 미대 출신. &apos;여자아이들에게는, 예를 들면, 생리할 때처럼 자기가 자기자신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거나,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인지 모르게 되는 때가 있다&apos;, &apos;자신과 타자를 사진에 의해서 이어두고 싶다는 생각으로 찍었다. 가족과 자신의 누드가 화제가 되었지만, 지금까지 왜 그렇게 했는가 모를 사진이 있다.&apos;고 말합니다. 너무 젊은 나이에 유명해진 것이 부담스러워서, 일본을 떠나 캘리포니아의 사진학교에 들어가긴 했으나, 스케이트보드 타는 일에만 열중했다고 합니다. 스케이트보드를 찍은 비디오가 어안렌즈로 찍혀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신도 어안렌즈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주변의 광경을 재빨리 찍으면서 그곳에 집요하게 자신의 모습을 짜 넣고 있습니다.&lt;BR&gt;&lt;BR&gt;니나가와 미카 　川實花(Mika Ninagawa)&lt;BR&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296 alt=mika.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94/007/mika.jpg&quot; width=400 border=0&gt;&lt;BR&gt;「Baby Blue Sky」, (1999)&lt;/P&gt;&lt;BR&gt;1972년 생. 아버지는 유명한 연출가로, 연극 일가에서 자랐습니다. 중학생 시절부터 자기표현에 대한 욕구가 강했가고 합니다. 미술학교에서 배우는 데생 등이 고통스러워서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려고 사진을 시작했습니다. 서비스판 사진을 컬러카피하는 스피드감과 싸구려 느낌이 나는 색깔이 맘에 들어, 그 특수한 색채감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짬이 날 때 팔락팔락 넘겨보지만, 정작 작품이 팔릴 것을 확실하게 계산해서 프린트를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의 일본의 사진학과 여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사진가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lt;BR&gt;&lt;BR&gt;히로믹스(HIROMIX)&lt;BR&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297 alt=hiro.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94/007/hiro.jpg&quot; width=400 border=0&gt;&lt;BR&gt;「girls blue」, (1996)&lt;/P&gt;&lt;BR&gt;1976년 생. 고교를 졸업하면서 펴낸 사진집으로 신인을 발굴하는 사진 컨테스트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이래, CD를 내고 모델도 하고, 스스로 광고사진을 찍는 등, 활동무대도 세계로 넓혀가고 있습니다. 90년대에 가장 유명해진 여성사진가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오늘은 17세 때부터 찍은 3만여 매의 사진 가운데에서 골랐다고 하는 데뷔 사진집을 중심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수동으로 찍으면 실패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자동 카메라로 찍었다고 합니다. 기분이 좋으면 절대 좋은 사진이 찍힌다는 것을, 찍을 때 미리 예측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녀가 처음 등장했을 때 기술적으로 미숙한 초심자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실은 그녀는 중·고등학교 때 사진부에서 클럽활동을 한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젊은 여성의 일상을 아주 자연스럽게 스냅한 사진도 그렇지만, 그녀가 자주 쓰는 &apos;기분&apos;이나 &apos;마음&apos; 같은 말이, 무언가에 대해서 갈증을 느끼고 있는 같은 세대의 젊은이들에게 받아들여졌던 것은 아닐까요?&lt;BR&gt;&lt;BR&gt;지금까지 소개한 여성사진가들보다는 조금 나이가 많지만, 지금 젊은 사람들 사이에 인기가 있는 몇 사람의 사진가를 소개하겠습니다. &lt;BR&gt;&lt;BR&gt;혼마 다카시(Homma Takashi)&lt;BR&gt;「Tokyo Suburbia」, (1998)&lt;BR&gt;1962년 생. 대학 사진학과를 중퇴하고 광고제작회사에 입사했으나 곧 회사를 그만 두고 런던에 가서 잡지 일을 했습니다. 귀국 후에는 잡지·광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가장 인기를 모으고 있는 사진가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lt;BR&gt;　이 사진집으로 기무라 이헤이木村伊兵衛상을 수상, 일본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교외郊外」가 갖고 있는 쓸쓸한 상실감을 담담하게 찍어감으로써 퍼스펙티브가 있는 듯 없는 듯한 불가사의한 거리감과 현실감을 그려내고 있습니다.&lt;BR&gt;&lt;BR&gt;사나이 마사후미 佐內正史(Sanai Masafumi)&lt;BR&gt;「살아가다」, (1997)&lt;BR&gt;1968년 생. 회사에 다니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중형카메라를 사용했습니다. 일상적이고 아무렇지도 않은 이미지의 사진들이지만 최초의 단계에서부터 독특한 공간감각과 색채표현을 구사하고 있어서, 마치 사진의 천재가 나타난 것 같은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이 사진가의 개성을 잘 살린 미디어의 힘도 컸을 것입니다. 지금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lt;BR&gt;&lt;BR&gt;사이몬 후지오 齊門富士男(Fujio Saimon)&lt;BR&gt;「Star Kids」, (1998)&lt;BR&gt;1960년 생. 미국을 시작으로 동구·러시아·인도·중국 등지를 여행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포트레이트를 찍고 있습니다. 카메라와 사람과의 위치관계와 독특한 색채로 주목되는 그는 광고사진가로서도 활약하고 있습니다. 이 사진가가 찍은（또 이 사진가의 스타일을 흉내내서 찍은）중국 등 아시아 사람들의 이미지는 일본인이 갖고 있는 아시아에 대한 이미지 형성에 상당히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lt;BR&gt;&lt;BR&gt;와카기 신고 若木信吾(Shingo Wakagi)&lt;BR&gt;「Takuji」, (1999)&lt;BR&gt;미국에서 사진을 배우고 미국 잡지 등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일본의 잡지광고사진의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사진가로서 인기가 많은 것은 자신의 할아버지를 찍은「타쿠지」라는 시리즈입니다. 가끔씩 시골집에 내려가서 자신의 사진의 원점으로서의 할아버지를 찍고 있습니다.&lt;BR&gt;　한편, 미국에서 사진을 공부하는 동안 자기자신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을 찾아내지 않으면 뛰어난 사진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냉정하게 계산된 감각으로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합니다.&lt;BR&gt;&lt;BR&gt;다음에는 사진과 문장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사람, 사적인 다큐멘터리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을 소개하겠습니다.&lt;BR&gt;&lt;BR&gt;코바야시 키세이 小林紀晴(Kobayashi Kisei)&lt;BR&gt;「Asian Japanese」, (2000)&lt;BR&gt;1968년 생. 아시아를 돌아다니면서, 아시아에 깊이 빠져있는 젊은 일본인들을 르포한 「아시안 저패니즈」로 95년에 데뷔한 그는 사진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각을 솔직하게 나타낸 문장도 대중의 공감을 얻어 베스트 셀러가 되었습니다.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 책이 나온 90년대 후반은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 아시아나 남미를 여행해서 &apos;자신을 찾는다&apos;는 것이 유행했고, TV 등에서도 그런 주제의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되던 때입니다.&lt;BR&gt;　지금 그는 소설가로서 문예작품도 발표하고 있습니다.&lt;BR&gt;&lt;BR&gt;고바야시 키유 小林紀雄(Kobayashi Kiyu)&lt;BR&gt;「Tokyo Omnibus」, (1998)&lt;BR&gt;1968년 생. 지방에서의 신문사 근무를 거쳐, 98년부터 프리렌스 사진가가 되었습니다. 신문기자로서 부임지였던 일본의 한 시골에서 동경으로 올라온 젊은이를 찾아 다큐멘트하고 있습니다. 그 자신 거의 매주 상경해서 번잡한 거리나 자취방 안에서 생활하는 젊은이를 기록한 이 시리즈가 주목을 받게 된 것입니다. 촬영과 동시에 인터뷰를 하고, 그것을 단행본으로 정리한 것이 데뷔작이 되었고 젊은 세대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시골에서 동경으로 나와서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생각하는 것은 일본의 젊은이들의 오래 전부터의 꿈입니다. 지방에 사는 한국의 젊은이들도 서울로 올라가서 성공해 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lt;BR&gt;&lt;BR&gt;호시노 히로미 星野博美(Hoshino Hiromi)&lt;BR&gt;「Hong Kong Flower」, (2000)&lt;BR&gt;1966년 생. 96년 여름부터 반환되기까지 2년 동안, 홍콩에 체재하면서 찍은 사진을 글과 함께 책으로 펴낸 「굴러가는 홍콩에 이끼는 끼지 않는다」가 다큐멘터리 작가·사진가로 평가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바라본, 반환을 전후한 홍콩의 이모저모에 관해서 적은 약 6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입니다. &quot;단기 거주자로 체재했던 홍콩에 있을 때보다도, 원래 자신이 속해 있어야 할 일본에서 더 큰 소외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quot;　그는, 일본에는 무방비한 부분이 있고 그것이 일본의 좋은 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양성을 거부하는 일이기도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apos;홍콩 플라워&apos;란 조화造花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홍콩의 허구적인 부분, 인위적인 부분을 상징하는 타이틀입니다.&lt;BR&gt;&lt;BR&gt;후나오 오사무 船尾修(Funao Osamu)&lt;BR&gt;「UJAMAA」, (2000)&lt;BR&gt;1960년 생. 학생 때부터 등산을 했고, 생물학과를 나와서 포토 저널리스트가 되었습니다. 전통과 발전 사이에 끼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찍고 있습니다. &lt;BR&gt;60∼70년대에 태어난 사진가 층에서 가장 오소독스한 스타일로 작업하고 있는 사진가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최근에는 이런 사진가들이 사진을 발표할 수 있는 매체가 적어진 것이 현실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활동하는 사진가도 있습니다.&lt;BR&gt;&lt;BR&gt;그럼 르포, 포토 다큐멘트적인 의미를 가진 사진 쪽으로 조금 시야를 넓혀보겠습니다.&lt;BR&gt;&lt;BR&gt;도도 아라타 百百新(Dodo Arata)&lt;BR&gt;「상해上海식 방식Ways of Shanghai, (94∼99）」,（1999）&lt;BR&gt;1974년 생.　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컬러와 흑백사진으로 풍물을 찍어 발표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사진가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오소독스한 스냅 스타일과 가벼운 비판적인 시선, 유머러스한 순간을 포착하는 등, 사진의 기본적인 기능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작업을 보여줍니다. 이 사진집에는 그가 중국을 여행하면서 자신이 본 것들을 등신대의 시선으로 적어나간 문장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lt;BR&gt;&lt;BR&gt;노무라 케이코 野村惠子(Nomura Keiko)&lt;BR&gt;「Deep South」, (1997∼1999）&lt;BR&gt;1970년 생. 사진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워크샵 등에 참가해서 사진을 공부했습니다. 아시아적인 것을 테마로 해서 자신도 그 속에 섞여 들어가서 촬영합니다. 이 사진은 오키나와에 살면서 찍은 사진인데, 앞서 소개한 여성사진가들과는 조금 다른, 자기자신이라고 하는 존재를 약간 벗어난 지점에서 사진의 오소독스한 기능을 사용해서 보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느껴지는 사진입니다.&lt;BR&gt;&lt;BR&gt;모토다 케이조 元田敬三(Keizo Motoda)&lt;BR&gt;「파란 물(Blue Water)」, (2001)&lt;BR&gt;1971년 오오사카 생. 프리랜스 사진가로 대학에도 출강하고 있습니다. 소개하는 것은 최근에 나온 사진집으로, 1996년∼2000년 사이에 도오쿄와 오오사카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일본의 사진사에서 볼 때는 70년대에 유행했던 스트리트 스냅 스타일에 가까운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여대고 느닷없이 찍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거리와의 관계를 포함해서 찍고 있습니다. 도오쿄나 오오사카 같은 특정한 지명과는 관계없는 사진들이라는 점도 특징입니다.&lt;BR&gt;&lt;BR&gt;오시나가 마사유키 吉永マサユキ(Yoshinaga Masayuki)&lt;BR&gt;「일본, 비싸군요(Nippon Expensive)」, (1999)&lt;BR&gt;1964년 생.　다양한 직업을 거쳐 95년부터 프리랜스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lt;BR&gt;폭주족이나 노동자들을 정면에서 찍은 포트레이트 등, 사진가로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전략이 필요한 지금의 일본에서 상쾌한 느낌이 들 정도로 &amp;lt;정면을 향한 사진&amp;gt;을 찍고 있는 그는 잡지·패션·광고의 세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사진가입니다. 소개한 사진집에는 유희와 유머감각이 느껴지지만, 사진 그 자체에서는 일본에서 살고 있는 아시아인들 생활 속으로 깊숙하게 들어가서 찍었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습니다.&lt;BR&gt;&lt;BR&gt;노무라 사키코 野村佐紀子(Nomura Sakiko)&lt;BR&gt;「벌거벗은 시간(Naked Time)」, (1997)&lt;BR&gt;1967년 생. 오래 동안 아라키 노부요시荒木經惟의 조수를 했습니다. 남성 누드를 일상적인 공간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지금은 자립해서 자신의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남성들과의 사적인 관계가 아니라, 벌거벗고 있는 남성의 모습을 미묘한 관찰안觀察眼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lt;BR&gt;&lt;BR&gt;현대미술과 가까운 곳에서 표현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미술가라고 하기보다는 사진가라고 하는 시점에서 소개하겠습니다.&lt;BR&gt;&lt;BR&gt;노구치 리카 野口里佳(Noguchi Rika)&lt;BR&gt;「새를 보다(Seeing Birds), (2001)&lt;BR&gt;1971년 생. 미국과 유럽에서 사진을 공부했습니다.　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젊은 사진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대형카메라로 원경을 찍은 영상이 특징입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형식과 풍경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것을 사진으로 차분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lt;BR&gt;&lt;BR&gt;모모세 도시야 百百俊哉(Momose Toshiya)&lt;BR&gt;「East=West」, (1997)&lt;BR&gt;1968년 생. 미국 맨 끝 부분의 번쩍번쩍 빛나는 듯한 공간과 전원의 광경에 힘을 느낀 그는 대형카메라로 그 느낌을 찍고 있습니다.　요즘은 이처럼 대형카메라로 치밀하게 촬영하는 것은 이미 고전적인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런 작업을 철저하게 계속하고 있는 사진가라는 점에서 소개했습니다.&lt;BR&gt;&lt;BR&gt;오노 히로시 小野博(Ono Hiroshi)&lt;BR&gt;「지구의 선(Line on the Earth)」, (2000)&lt;BR&gt;1971년 생. 미대 조각과를 다니면서부터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지구를 한 개의 선으로 표현하려고 합니다. 지구에 있는 다양한 부負의 역사가 일어난 장소가 한 개의 선으로 이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같은 타이틀의 사진전에서는 사진을 전시장 벽에 빙 둘러서, 하나로 이어진 곳처럼 전시하고 있습니다.　국경이 보이지 않는, 연속된 영상에 의해서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애매하게 만들고, 위기감을 보다 더 현재화顯在化시켜서 지구의 현실을 고도로 인식시키고 있습니다.&lt;BR&gt;&lt;BR&gt;일본의 젊은 사진가를 생각할 때 잊어서는 안 될 사람은 이밖에도 많이 있지만, 시간의 제약이 있기 때문에 두 사람만 더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이로 보면 중견에 속하지만, 일본의 사진계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는 사진가들입니다.&lt;BR&gt;&lt;BR&gt;스즈키 리사쿠 鈴木理策(Risaku Suzuki)&lt;BR&gt;「Poles of Time」, (1999)&lt;BR&gt;1963년 생. 대형카메라로 찍은 컬러의 조용한 풍경·인물사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lt;BR&gt;요즘에는 일본의 토착신앙과 종교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장소로 눈을 돌려 그곳을 향한 여행, 자신의 움직임과 시선의 움직임 등, 시작도 끝도 없는 듯한 사진을 모음으로써 그 장소가 갖고 있는 힘을 보는 사람의 의식 속에 피어오르게 만듭니다. 큰 상인 기무라 이헤이木村伊兵衛상을 받았습니다.&lt;BR&gt;&lt;BR&gt;카네무라 오사무 金村修(Osamu Kanemura)&lt;BR&gt;「I can tell」, (2001)&lt;BR&gt;64년 동경 생. 원래는 펑크락의 뮤지션이었는데 사진이라면 자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사진학교에 들어간 것이 시작이었습니다.&lt;BR&gt;처음부터 어두운 톤의 흑백사진에 의한 도쿄 주변의 복잡하고 어지러운 장소의 영상을 집요하게 찍는 사진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일찍부터 세계 사진계에서도 주목받게 되어 각국 그룹전에 초대되었고, 뉴욕 근대미술관의 그룹전에도 출품했습니다. 작년 일본의 대표적인 사진상의 하나인 도몽 켄土門拳 상을 수상했습니다. 경력이 색달라서 주목받는 부분도 있지만, 사진에 대해서 지극히 온건한 생각을 하고 있는 청년∼중견 사진가의 한 사람입니다. 현재는 모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lt;BR&gt;&lt;BR&gt;&lt;BR&gt;PHOTOGRAPHY&lt;BR&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569 alt=&quot;4947599995 copy.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94/007/4947599995 copy.jpg&quot; width=400 border=0&gt;&lt;BR&gt;&lt;BR&gt;&lt;IMG height=544 alt=&quot;hiromix2-karasuzu copy.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94/007/hiromix2-karasuzu copy.jpg&quot; width=400 border=0&gt;&lt;BR&gt;&lt;BR&gt;&lt;IMG height=270 alt=&quot;3426_21904_1 copy.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94/007/3426_21904_1 copy.jpg&quot; width=400 border=0&gt;&lt;BR&gt;&lt;BR&gt;&lt;IMG height=559 alt=&quot;Hiromix copy.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94/007/Hiromix copy.jpg&quot; width=400 border=0&gt;&lt;BR&gt;&lt;BR&gt;&lt;IMG height=284 alt=&quot;hiromix4 copy.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94/007/hiromix4 copy.jpg&quot; width=400 border=0&gt;&lt;BR&gt;&lt;BR&gt;&lt;IMG height=544 alt=&quot;hiromix1-karasuzu copy.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94/007/hiromix1-karasuzu copy.jpg&quot; width=400 border=0&gt;&lt;BR&gt;&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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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소설가  Murakami Haruki</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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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5-01-30T14:30:49P</published>
      <updated>2008-08-14T00:05:47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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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align=center&gt;&lt;IMG alt=&quot;&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90/007/1400033969.01.LZZZZZZZ_copy.jpg&quot; border=0&gt;&lt;/P&gt;&lt;BR&gt;&lt;BR&gt;&lt;A onclick=&quot;window.open(this.href);return false;&quot; href=&quot;http://jsbar.wo.to/&quot;&gt;http://jsbar.wo.to/&lt;/A&gt;&lt;A onclick=&quot;window.open(this.href);return false;&quot; href=&quot;http://www.2murakami.net/&quot;&gt;http://www.2murakami.net/&lt;/A&gt;&lt;BR&gt;&lt;BR&gt;::: PROFILE :::&lt;BR&gt;1949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1월 12일 일본 효고현 출생 (혈액형 A 형)&lt;BR&gt;1968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와세다대 문학부 연극과 입학&lt;BR&gt;1971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대학생 시절에 스물둘의 나이로 조기결혼&lt;BR&gt;1974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째즈 다방 &apos;피터캣&apos;을 고쿠분지에 연다&lt;BR&gt;1975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lt;미국영화에 있어서의 여행의 사상&amp;gt;이란 제목의 논문으로 &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드디어 와세다대 문학부 연극과&amp;nbsp;&amp;nbsp;졸업&lt;BR&gt;1979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처녀작 &amp;lt;바람의 노래를 들어라&amp;gt;로 &amp;lt;군조&amp;gt;신인상 수상&lt;BR&gt;1980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lt;1973년의 핀볼&amp;gt;발표&lt;BR&gt;1981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lt;사슴과 신과 성세실리아&amp;gt; &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lt;꿈속에서 만나요&amp;gt;(에세이)&lt;BR&gt;1982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lt;양을 쫓는 모험&amp;gt;발표 - 노마문예신인상&apos;을 수상&lt;BR&gt;1983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단편집 &amp;lt;중국행 슬로보트&amp;gt; &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단편집 &amp;lt;캥거루 구경하기 좋은 날씨&amp;gt;,&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lt;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amp;gt;(에세이)&lt;BR&gt;1984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단편집 &amp;lt;반딧불, 헛간을 태우다. &amp;gt; 발표&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lt;파도의 그림, 파도의 이야기&amp;gt;(에세이) &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lt;무라카미 아사이도&amp;gt;(에세이)&lt;BR&gt;1985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lt;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amp;gt;발표 &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 &apos;다나자키 준이치로상&apos;을 수상 &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단편집 &amp;lt;회전목마의 데드히트&amp;gt;&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lt;양사나이의 크리스마스&amp;gt; &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lt;영화를 둘러싼 모험&amp;gt;&lt;BR&gt;1986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단편집 &amp;lt;빵가게 재습격&amp;gt;&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lt;무라카미 아사이도의 역습&amp;gt;(에세이)&lt;BR&gt;1987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lt;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amp;gt;발표 &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6백만부의 판매고를 올리며 하루끼 신드롬 출현 &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lt;해뜨는 공장&amp;gt;(에세이) &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THE 1980년대 Scrap-그리운&gt;(에세이)&lt;BR&gt;1988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lt;댄스 댄스 댄스&amp;gt;발표 &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lt;스코트 피츠제럴드 북&amp;gt;(장편)&lt;BR&gt;1989년&amp;nbsp;&amp;nbsp; &amp;lt;무라카미 아사이도 하이호!&amp;gt;(에세이)&lt;BR&gt;1990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TV 피플&gt;발표 &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lt;먼북소리&amp;gt; 여행 체험 에세이) &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lt;우천염천&amp;gt;(터키와 그리스의 아토스 반도 여행)&lt;BR&gt;1992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연구원으로 미국 체류 &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장편 &amp;lt;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amp;gt;발표&lt;BR&gt;1994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lt;슬픈 외국어&amp;gt;(에세이) &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장편 &amp;lt;태엽감는 새 연대기&amp;gt;발표&lt;BR&gt;1995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인쇄매체 광고를 위해 광고문으로 쓴 &amp;lt;밤의 원숭이&amp;gt;발표&lt;BR&gt;1996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에세이 &amp;lt;소용돌이 고양이의 발견법&amp;gt;발표&lt;BR&gt;1997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lt;렉싱턴의 유령&amp;gt;발표&lt;BR&gt;1999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lt;스푸트니크의 연인&amp;gt; 발표&lt;BR&gt;2000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lt;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amp;gt;출간&lt;BR&gt;&lt;BR&gt;&lt;BR&gt;::: ESSAY_1 :::&lt;BR&gt;옛날 옛적에, 어느 곳에 소년과 소녀가 있었다. 소년은 열여덟 살이었고, 소녀는 열여섯 살이었다.그다지 잘생긴 소년도 아니었고, 그다지 예쁜 소녀도 아니었다. 어디에나 있는 외롭고 평범한 소년과 소녀였다.&lt;BR&gt;하지만 그들은 틀림없이 이 세상 어딘가에 100% 자신과 똑같은 소녀와 소년이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게, 그들은 &apos;기적&apos;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기적은 확실히 일어났다. 어느 날 두 사람은 거리 모퉁이에서 딱 마주치게 된다. &lt;BR&gt;&lt;BR&gt;&quot;놀라워, 난 줄곧 너를 찾아다녔단 말야. 네가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넌 내게 있어서의 100%의 여자아이란 말이야.&quot; 하고 소년이 소녀에게 말한다. &lt;BR&gt;&lt;BR&gt;&quot;너야말로 내게 있어서 100%의 남자아이야. 모든 것이 모두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야. 꼭 꿈만 같아.&quot;&lt;BR&gt;&lt;BR&gt;두 사람은 공원 벤치에 앉아서,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언제까지나 실컷 얘기를 나눈다. 두 사람은 이미 고독하지 않다. 그들은 각기 100%의 상대자를 원하며,자신은 그 상대자의 100%가 되고 있다. 100%의 상대자를 원하며, 상대자의 100%가 된다는 것은 그 얼마나 멋진일인가. 그것은 이미 우주적인 기적인 것이다.&amp;nbsp;여자아이가 남아아이한테 묻는다. &lt;BR&gt;&lt;BR&gt;&quot;너는 나를 얼마나 좋아해?&quot; &lt;BR&gt;&lt;BR&gt;소년은 한참 생각하고 나서 조용한 목소리로 &quot;한밤의 기적소리만큼&quot;이라고 대답한다. 소녀는 잠자코 이야기가 계속되기를 기다린다. 거기에는 틀림없이 무엇인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lt;BR&gt;&lt;BR&gt;&quot;어느날, 밤중에 문득 잠이 깨지.&quot; 그는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lt;BR&gt;&lt;BR&gt;&quot;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어. 아마 두 시나 세 시, 그쯤이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몇 시인가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어쨌든 그것은 한밤중이고, 나는 완전히 외톨이고,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어. 알겠니? 상상해봐. 주위는 캄캄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소리라고는 아무것도 안 들려. 시계바늘이 시간을 새기는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아 - 시계가 멈춰버렸는지도 모르지. 그리고 나는 갑자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한테서,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장소로부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고, 그리고 격리되어 있다고 느껴. 내가, 이 넓은 세상에서 아무한테도 사랑받지 못하고,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고,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돼. 내가 그대로 사라져버려도 아무도 모를 거야. 그건 마치 두꺼운 철상자에 갇혀서,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것 같은 느낌이야. 기압 때문에 심장이 아파서, 그대로 찍하고 두 조각으로 갈라져버릴 것 같은... 그런 느낌 알 수 있어?&quot; &lt;BR&gt;&lt;BR&gt;소녀는 끄덕인다. 아마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lt;BR&gt;소년은 말을 계속한다. &lt;BR&gt;&lt;BR&gt;&quot;그것은 아마도 사람이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가장 괴로운 일 중의 하나일 거야. 정말이지 그대로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슬프고 괴로운 그런 느낌이야. 아니야. 그렇지 않아. 죽고 싶다는 그런 것이 아니고, 그대로 내버려두면 상자 안의 공기가 희박해져서 정말로 죽어버릴거야. 이건 비유 같은게 아니야. 진짜 일이라고. 그것이 한밤중에 외톨이로 잠이 깬다는 것의 의미라고. 그것도 알 수 있겠어?&quot; &lt;BR&gt;&lt;BR&gt;소녀는 다시 잠자코 고개를 끄덕인다. &lt;BR&gt;소년은 잠시 사이를 둔다. &lt;BR&gt;&lt;BR&gt;&quot;그렇지만 그때 저 멀리에서 기적 소리가 들려.&amp;nbsp;&amp;nbsp;그것은 정말로 정말로 먼 기적 소리야. 도대체 어디에 철도 선로같은 것이 있는지, 나도 몰라. 그만큼 멀리 들리거든. 들릴 듯 말 듯하다고나 할 소리야. 그렇지만 그것이 기차의 기적 소리라는 것을 나는 알아. 틀림없어. 나는 어둠 속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여. 그리고 다시 한번, 그 기적소리를 듣지. 그리고 나서 내 심장은 아파하기를 멈춰. 시계바늘은 움직이기 시작해. 철상자는 해면을 향해서 천천히 떠올라. 그것은 모두 그 작은 기적 소리 덕분이야. 들릴 듯 말 듯한 그렇게 작은 기적 소리 덕분이라고.&quot;&lt;BR&gt;&lt;BR&gt;&quot;나는 그 기적소리만큼 너를 사랑해.&quot;&amp;nbsp;&amp;nbsp;&lt;BR&gt;&lt;BR&gt;거기에서 소년의 짧은 이야기가 끝난다.&lt;BR&gt;&lt;BR&gt;&lt;BR&gt;::: ESSAY_2 :::&lt;BR&gt;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하라주쿠의 뒤안길에서 나는 100퍼센트의 여자아이와 엇갈린다. 솔직히 말해 그다지 예쁜 여자아이는 아니다. 눈에 띄는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멋진 옷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니다. 머리카락 뒤쪽에는 나쁜 잠버릇이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고, 나이도 적지 않다. 벌써 서른살에 가까울 테니까. 엄밀히 말하면 여자아이라고도 할 수도 없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50미터 떨어진 곳에서부터 그녀를 알아볼 정도다. 그녀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이기 때문이다.&lt;BR&gt;&lt;BR&gt;그녀의 모습을 목격하는 순간부터 내 가슴은 땅울림처럼 떨리고, 입안은 사막처럼 바싹 말라 버린다. 어쩌면 당신에게도 좋아하는 여자아이 타입이라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령, 발목이 가느다란 여자아이가 좋다든지, 역시 눈이 큰 여자아이라든지, 손가락이 절대적으로 예쁜 여자아이라든지, 잘은 모르겠지만 천천히 식사하는 여자아이에게 끌린다든지와 같은 식의. 나에게도 물론 그런 기호는 있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다가,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아이의 코 모양에 반해 넋을 잃기도 한다. &lt;BR&gt;&lt;BR&gt;그러나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유형화하는 일은 아무도 할 수가 없다. 그녀의 코가 어떻게 생겼었나 하는 따위는 전혀 떠올릴 수가 없다. 아니, 코가 있었는지 어땠는지조차 제대로 기억할 수 없다. 내가 지금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그다지 미인이 아니였다는 사실뿐이다. 왠지 조금 이상하기도 하다. &lt;BR&gt;&lt;BR&gt;「어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와 길에서 엇갈렸단 말이야」하고 나는 누군가에게 말한다. &lt;BR&gt;&lt;BR&gt;「흠, 미인이었어?」라고 그가 묻는다. &lt;BR&gt;「아니야, 그렇진 않아.」 &lt;BR&gt;「그럼, 좋아하는 타입이었겠군.」 &lt;BR&gt;「글쎄, 생각나지 않아.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가슴이 큰지 작은지, 전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겠다구.」 &lt;BR&gt;「이상한 일이군.」 &lt;BR&gt;「이상한 일이야.」 &lt;BR&gt;「그래서, 무슨 짓을 했나? 말은 건다든가, 뒤를 밟는다든가 말야.」 &lt;BR&gt;「하긴 뭘 해, 그저 엇갈렸을 뿐이야.」 &lt;BR&gt;&lt;BR&gt;그녀는 동에서 서로, 나는 서에서 동으로 걷고 있었다. 제법 기분이 좋은 4월의 아침이다. 비록 30분이라도 좋으니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녀의 신상 이야기를 듣고도 싶고, 나의 신상 이야기를 털어놓고도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981년 4월 어느 해맑은 아침에, 우리가 하라주쿠의 뒤안길에서 엇갈리기에 이른 운명의 경위 같은 것을 밝혀 보고 싶다. 거기에는 틀림없이 평화로운 시대의 낡은 기계처럼, 따스한 비밀이 가득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난 후 어딘가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우디 알렌의 영화라도 보며, 호텔 바에 들러 칵테일이나 뭔가를 마신다. 잘만 하면, 그 뒤에 그녀와 자게 될지도 모른다. &lt;BR&gt;&lt;BR&gt;가능성이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나와 그녀 사의 거리는 벌써 15미터 가량으로 좁혀졌다. 자, 도대체 어떤 식으로 그녀에게 말은 걸면 좋을까? &lt;BR&gt;「안녕하세요. 단 30분만, 저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습니까?」 &lt;BR&gt;이건 너무나 바보스럽다. 마치 보험 권유 같지 않은가. &lt;BR&gt;「미안합니다. 이 근처에 혹시 24시간 영업 세탁소가 없는지요.」 &lt;BR&gt;이 역시 같은 정도로 바보스럽다. 무엇보다도 내 손에 세탁물 주머니조차 없지 않은가. 누가 그런 대사를 신용하겠는가? &lt;BR&gt;어쩌면 솔직하게 말을 꺼내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lt;BR&gt;「안녕하세요. 당신은 나에게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입니다.」 &lt;BR&gt;아니, 틀렸어. 그녀는 아마도 나와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lt;BR&gt;「당신에게 있어서 내가 100퍼센트의 여자라 하더라도, 나에게 있어 당신은 100퍼센트의 남자는 아닌걸요, 죄송하지만」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만약 사태가 그렇게 되면 나는 틀림없이 혼란에 빠질 것이다. 나는 그 쇼크에서 두 번 다시 회복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 나이 벌써 서른두살, 결국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런 것이 아닐까. &lt;BR&gt;&lt;BR&gt;꽃가게 앞에서, 나는 그녀와 엇갈리게 된다. 따스하고 조그마한 공기 덩어리가 피부에 와닿는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 위에는 물이 뿌려져 있고, 언저리에서는 장미꽃 향기가 풍기고 있다.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 수도 없다. 흰 스웨터를 입은 그녀는 아직 우표를 붙이지 않은 흰 사각 봉투를 오른손에 들고 있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 것이다. 그녀의 눈이 졸린 듯한 것으로 봐서, 어쩌면 하룻밤 동안 그것을 썼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각 봉투 속에는 그녀에 관한 비밀이 전부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몇 걸음인가 걷고 나서 뒤돌아보았을 때, 그녀의 모습은 이미 혼잡한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고 없었다.&amp;nbsp;&amp;nbsp;&lt;BR&gt;&lt;BR&gt;물론 지금은, 그때 그녀를 향해 어떻게 말을 걸었어야 했는가를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떻든 간에 너무나도 긴 대사이므로 틀림없이 제대로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실용적이지 못하다. 아무튼 그 대사는「옛날 옛적에」로 시작되어,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지 않습니까」로 끝난다. &lt;BR&gt;&lt;BR&gt;옛날 옛적에, 어느 곳에 소년과 소녀가 있었다. 소년은 열 여덟 살이었고, 소녀는 열여섯 살이었다. 그다지 잘생긴 소년도 아니었고, 그다지 예쁜 소녀도 아니었다. 어디에나 있는 외롭고 평범한 소년과 소녀였다. 하지만 그들은 틀림없이 이 세상 어딘가에 100퍼센트 자신과 똑같은 소녀와 소년이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게, 그들은 &apos;기적&apos;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적은 확실히 일어났다. 어느 날 두 사람은 거리 모퉁이에서 딱 마주치게 된다.&lt;BR&gt;&lt;BR&gt;「놀라워, 난 줄곧 너를 찾아다녔단 말야. 네가 믿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넌 네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이야」하고 소년이 소녀에게 말한다. &lt;BR&gt;「너야말로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남자아이야. 모든 것이 모두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야. 꼭 꿈만 같아.」&lt;BR&gt;&lt;BR&gt;두 사람은 공원 벤치에 않아서, 서로의 손을 잡고 언제까지나 실컷 얘기를 나눈다. 두 사람은 이미 고독하지 않다. 그들은 각기 100퍼센트의 상대자를 원하며, 자신은 그 상대자의 100퍼센트가 되고 있다. 100퍼센트의 상대자를 원하며, 상대자의 100퍼센트가 된다는 것은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것은 이미 우주적인 기적인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마음속을 얼마 안되는, 극히 얼마 안되는 의구심이 파고든다. 이처럼 간단하게 꿈이 실현되어 버려도 괜찮은 것일까 하는……. &lt;BR&gt;대화가 문득 끊어졌을 때, 소년이 말한다.&lt;BR&gt;&lt;BR&gt;「이봐, 다시 한 번만 시도해 보자. 가령 우리 두 사람이 진정한 100퍼센트의 연인이라고 하면, 반드시 언제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그리고 이 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도 역시 서로가 서로의 100퍼센트라면, 그때 바로 결혼하자구. 알겠니?」 &lt;BR&gt;「응, 알았어.」&lt;BR&gt;&lt;BR&gt;그리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서쪽과 동쪽으로,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시도해 볼 필요는 조금도 없었다. 그런 것은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정 100퍼센트 완벽한 연인이었으니까. 그것은 기적적인 사건이었으니까. 하지만 두 사람은 너무나 어려서, 그런 것은 이해할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정석처럼 비정한 운명의 파도가 두 사람을 마구 농락하기에 이른다. &lt;BR&gt;&lt;BR&gt;어느해 겨울, 두 사람은 그해에 유행한 악성 인플루엔자에 걸려, 몇 주일간이나 사경을 해멘 끝에, 옛날 기억들은 몽땅 잃고 말았던 것이다. 어찌된 일일까. 그들이 깨어났을 때 그들의 머리 속은 마치 D. H. 로렌스의 소년 시절 저금통처럼 완전히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참을성 있는 소년과 소녀였기 때문에,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다시금 새로운 지식과 감정을 터득하여, 훌륭히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다. &lt;BR&gt;&lt;BR&gt;아아 하느님, 그들은 진정 확고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정확하게 지하철을 갈아타거나 우체국에서 속달을 부치거나 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완벽하지는 못해도 75퍼센트의 연애랑, 85퍼센트의 연애를 경험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소년은 모닝 커피를 마시기 위해 하라주쿠의 뒤안길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고, 소녀는 속달용 우표를 사기 위해 똑같은 길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한다. 두 사람은 길 한복판에서 엇갈린다. 잃어버린 기억의 희미한 빛이 두 사람의 마음을 한순간 비춘다. 그들의 가슴은 떨린다. 그리고 그들은 안다. 그녀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이다. &lt;BR&gt;&lt;BR&gt;그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남자아이야. 그러나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의 빛은 너무 연약하고, 그들의 언어는 이제 14년 전만큼 맑지 않다. 두 사람은 그냥 말없이 엇갈려, 혼잡한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고 만다. 영원히.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지 않습니까. &lt;BR&gt;&lt;BR&gt;그렇다. 나는 그녀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꺼내 보았어야 했던 것이다.&lt;BR&gt;&lt;BR&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304 alt=&quot;928229 copy.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90/007/928229 copy.jpg&quot; width=400 border=1&gt;&lt;/P&gt;&lt;BR&gt;&lt;BR&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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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F감독 박명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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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5-01-30T13:33:34P</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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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align=center&gt;&lt;IMG alt=&quot;&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75/007/park_copy.jpg&quot; border=0&gt;&lt;/P&gt;&lt;BR&gt;&lt;BR&gt;&lt;A onclick=&quot;window.open(this.href);return false;&quot; href=&quot;http://www.cyworld.co.kr/massmessage&quot;&gt;http://www.cyworld.co.kr/massmessage&lt;/A&gt;&lt;BR&gt;&lt;BR&gt;::: BIOGRAPHY :::&lt;BR&gt;1994년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영상인 프로덕션에 조감독으로 입사했다. 1997년 매스메스에이지 프로덕션을 설립해 지금가지 대표이자 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주요 프로젝트로는 1993년 부터 1998년까지 연출한 NIX CF &quot;달리는 캐빈&quot;,&quot;새장속의 캐빈&quot; 편이 있으며, 1997년의 일렘 섹시걸 마스카라 CF &quot;인형의 눈썹&quot;편, 1998년에 연출한 002 데이콤 &quot;달리는 전원주&quot;편, &quot;지붕위의 전원주&quot;편, 한미은행 연작, 한불 바센 메이크업 스타트, &quot;고소영 화장발&quot;편, OB라거 &quot;YMCA&quot;편, NIX 등의 CF와 이문세의 &quot;솔로예찬&quot;, 엄정화의 &quot;포이즌&quot; 뮤직비디오가 있다. 또 1991년의 피어리스 드방세 하우투 &quot;박지윤&quot;편, TTL연작, 굿모닝증권 연작, 도도 투웨이 케잌 &quot;캣츠&quot;푠, 스니커즈 CF와 2000년의 마이크로 아이 Na연작, 코리아 닷컴, 박지윤 &quot;성인식&quot;뮤직비디오 등이 있다.&lt;BR&gt;&lt;BR&gt;&lt;BR&gt;::: INTERVIEW_1 :::&lt;BR&gt;매주 목요일 조선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인터뷰 시리즈 &apos;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터뷰&apos;의 첫번째 주자는 CF 감독 박명천이었다. 박명천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은 많아도, 전원주씨가 텀블링을 하는 002 광고나 임은경을 캐스팅해 아주 인상적인 영상들을 만들어내며 화제를 뿌린 011 광고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내 자신 너무나 다양하고 독특한 그의 제작 광고들을 보면서 박명천이라는 사람이 궁금했던터라, 시리즈 첫 회 인터뷰 대상으로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쳐왔을까, 라는 게 내 궁금증의 핵심이었다. &lt;BR&gt;&lt;BR&gt;아직 잔설이 거리 곳곳에 남아 있는 2월 첫째주 일요일 오후, 압구정동에 있는 그의 회사 매스매스미디어에 갔다. 일반 가옥을 개조해 사무실로 만든 곳이었는데 철문을 들어서자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lt;BR&gt;&lt;BR&gt;박명천 감독의 첫 인상은, 많은 유명인들이 그렇듯, 무엇보다 피곤해보였다. 전날도 잠을 못 잔듯 얼굴이 푸석푸석했고, 눈이 빨갰다. 창의성이 있는 사람들이 격무에 시달려 제 능력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하는 모습은 언제나 안타까움을 준다. 그는 인터뷰 내내 질문을 던지는 내 눈에 자신의 눈을 맞추지 않고 시선을 피한 채 웅얼거리듯 작은 소리로 말을 했는데, 자신의 작업 내용 자체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놀랍게도 뿔테 안경 너머로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lt;BR&gt;&lt;BR&gt;인터뷰가 끝난 뒤 그의 촬영 콘티와 광고들을 모은 비디오, 광고 사진들을 최대한 자료로 챙겼다. 어차피 &apos;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터뷰&apos; 시리즈는 스타일에서 최대한 개성있게 이어가야한다고 마음먹은 이상, 요리할 재료는 많을수록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인터뷰 시리즈의 경우 매번 달라지는 형식은 인터뷰 하기 전부터 미리 생각한 경우와 끝난 뒤에 정리하는 과정에서 생각해내는 경우가 있는데, 박명천 감독의 경우는 후자의 경우였다. 물론 실제 인터뷰에서는 여느 인터뷰처럼 내가 차례로 묻고 그가 대답했지만, 인터뷰 기사는 그가 창조해낸 광고 속의 여성 캐릭터들이 그에게 질문을 돌아가며 던지는 식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심리학자 칼 융의 용어인 &apos;아니마&apos;가 그 인터뷰 형식의 핵심이었다. &apos;남성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여성의 이미지&apos;를 뜻하는 아니마를 파고들다보면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얼핏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lt;BR&gt;&lt;BR&gt;그날 그에게서 들었던 가장 인상적인 말은 &quot;만들면서 배운다&quot;는 말이었다. 그에 따르면, 그의 다양한 영상들은 항상 전작들을 만들면서 배운 것들을 응용한 결과라는 것이었다. 그 말은 그의 삶이 (적어도 현재까지는) 늘 발전하고 있는 것이란 뜻인데, 부럽고 감탄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이 자신이 살아온 발자취이며 세상을 배워왔던 궤적이라니. &quot;대박은 항상 최악의 상황에서 터졌다&quot;는 그의 말도 인상적이었다. 대중적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과시한 그의 광고들은 언제나 구석에 몰렸을 때 터져나왔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삶이 그의 두가지 원리에 의해 추동되는 것이라면,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리라.&amp;nbsp;&amp;nbsp;&lt;BR&gt;&lt;BR&gt;이 인터뷰 시리즈는 이번에 인터뷰 대상이 된 사람이 다음 대상을 추천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박명천 감독이 추천한 사람은 소설가 김영하씨, 만화가 이우일씨, 만화가 양영순씨, 배우 명계남씨, 그래픽 디자이너 백종렬씨였다. 이우일씨에 대해서는 &quot;친한 친구인데 나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사고를 지닌 사람&quot;이라며 &quot;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창의력이라는 측면에서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quot;이라고 추천했다. 양영순씨에게는 &quot;누들누드를 재미있게 보았는데 내가 그런 거 그리면 화끈거려 자기검열을 할텐데 그는 그런 게 없는 것 같더라&quot;라는 추천사를 붙였다. 명계남씨에 대해서는 &quot;박하사탕을 그가 작업할 때 우연히 그가 자동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정도의 명성에 차가 참 별 볼 일 없는 것이 인상적이었다&quot;며 &quot;저 나이에 저렇게 열정적으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quot;고 추천했다. 백종렬씨에 대해서는 &quot;작업을 하다가 그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는다&quot;고 말했다. 이중 1순위로 그가 추천한 김영하씨와 다음 인터뷰를 했다. 박감독은 김영하씨와 면식이 없었지만, 그의 소설을 읽고 나서 그와 영화 작업을 함께 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김영하씨의 신작 &apos;아랑은 왜&apos;가 박감독이 만들려는 첫 영화와 우연히도 소재가 같아서 더욱 그런 것 같았다. &lt;BR&gt;&lt;BR&gt;박명천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다 쓰고나니 원고지로 19.5매가 나왔다. 난 기사를 어렵사리 쓰고 나서 그것을 줄이는데 또 한참 시간을 쓰는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좋지 않은 기사 쓰기 습관을 가졌다. 이 기사 역시 신문 지면에 실을 수 있는 양의 두배 가까이 넘치는 분량이었다. 지면의 70퍼센트 가까이를 차지하는 큰 기획이었지만, 그래봐야 기껏해야 11장 안팎만 들어갈 수 있었다. 처음엔 매 문장마다 조금씩 줄였지만 한계가 있어서 결국 통째로 문답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임은경에서 전원주까지 각 항목을 두가지의 질문과 대답으로 구성하려 했는데, 어쩔 수 없이 한 문항씩만 집어넣을 수 밖에 없었다. &lt;BR&gt;&lt;BR&gt;아래 기사를 보면 기자가 기사가 넘칠 때 어떤 부분부터 줄여나가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기울임체로 쓴 부분들이 애초에 썼다가 최종 신문에서는 삭제됐던 부분들이다. &lt;BR&gt;&lt;BR&gt;기사 전문&lt;BR&gt;숱한 화제를 낳았던 016 광고 시리즈에서 &quot;아부지, 나는 누구예요&quot;를 묻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quot;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어&quot;하고 일갈했다. 재미있는 것만 하고 살 순 없으니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그러나 그 시리즈를 만든 박명천(32) CF 감독은 &quot;재미있는 것만 하면서 살아온&quot; 행복한 남자다. &lt;BR&gt;&lt;BR&gt;고3때도 하루 종일 만화만 보며 지냈다는 그는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재학 당시 만화 동아리 활동을 했고, 96년 스물일곱 나이로 닉스 청바지 광고를 찍으며 CF계에 혜성처럼 데뷔했다. 이후 이미지만으로 승부한 이동전화 TTL 광고와 사실감이 넘치는 한미은행 광고부터, 전원주씨가 재주를 넘으며 캥거루와 함께 질주하는 &apos;국제 전화 002&apos; 같은 코믹 광고까지 수많은 히트작을 내며 광고계 &apos;마이더스의 손&apos;으로 군림해왔다. 이어 작년 말에는 가수 박지윤의 뮤직 비디오로 찬사와 논란을 함께 불러일으키더니 이젠 어느새 &apos;장화홍련전&apos;을 각색해 영화 감독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lt;BR&gt;&lt;BR&gt;그의 히트작들은 여자 캐릭터의 독특한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수줍게 머뭇거리며 운을 떼다가도 영상에 담긴 자신의 의도를 설명할 때는 말이 빨라지며 눈빛을 빛내는 이 남자가 그려낸 일련의 작품 속 여성 창조물들이 입을 열어 질문한다면 그는 어떻게 대답할까. 스물에서 쉰까지, 그의 아니마(남성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여성의 이미지) 혹은 삶에 대한 몇가지 고백들. 그리고 광고 속 피조물들이 가상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창조자(박감독)의 &apos;실제 대답&apos;으로 추적한 한 남자의 삶의 궤적... &lt;BR&gt;&lt;BR&gt;1.스물 직전-이동전화 TTL 광고 속 모델 임은경 &lt;BR&gt;&lt;BR&gt;-감독님 밑에서 이동전화 모델로 광고를 네 편 찍으면서 핸드폰이 잠깐이라도 나오는 게 한 편 밖에 안 되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워요. &lt;BR&gt;&lt;BR&gt;&quot;영상에는 영상 어법이 따로 있는 거겠지. 네 얼굴을 사진으로 보면서 단번에 이 친구다,싶어 캐스팅했어. 그런데 실제로 보니 전혀 다른 느낌이어서 의아했는데, 알고보니 광선에 따라 네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지더군. 클로즈업 장면 단 한 컷을 찍으려고 조명에 얼마나 신경썼는지 기억이 생생하지? 예전 청바지 광고를 찍을 때 잘 알려지지 않은 모델을 썼더니 문의가 폭주했던 생각이 나서 호기심이 증폭되도록 너에 대한 모든 정보를 차단하는 방법을 썼던 거야. 그리고 은행 광고를 찍었을 때 배운 사운드의 단절감을 응용해 물소리만 똑똑 나오도록 했던 거지. 내가 만든 것들은 항상 이전 작업들을 통해 배우게 된 것들을 추가하면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거기엔 내 지나온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어.&quot; &lt;BR&gt;&lt;BR&gt;-감독님의 스무살 이전은 어땠나요. &lt;BR&gt;&lt;BR&gt;&quot;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어. 형과 누나 때는 부모님도 극성이었는데 난 자유방임으로 길러졌지. 고교 들어가서 검도부에 들어갔는데 담임 선생님이 폭력 서클엔 왜 들어갔냐고 했던 게 생각나네. 중고등학교에서는 모두에게 똑 같은 교육을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 배운 거 하나도 기억 안나. 우린 똑 같은 삶의 기준 하에서 모두 비슷한 코스를 밟으며 살고 있는 것 같아. 우리 주변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끝장을 보는 사람들이 거의 없잖아? &quot; &lt;BR&gt;&lt;BR&gt;2.스물 직후-&apos;환상&apos; 뮤직비디오 속 가수 박지윤 &lt;BR&gt;&lt;BR&gt;-사람들이 섹시한 이미지를 강조한 &apos;성인식&apos;과 섬뜩한 살인극을 그린 &apos;환상&apos; 뮤직 비디오 속의 내가 이전과 너무 다르다고들 해요. &lt;BR&gt;&lt;BR&gt;&quot;기존의 네 천사표 10대 이미지를 어른의 것으로 완전히 바꾸는 것이라 &apos;성인식&apos;은 최대한 섹시하게 연출했지. 섹시함의 극적 비교를 위해서 네 기존 귀여운 이미지를 담은 재봉틀 장면을 앞뒤에 넣었고. &apos;환상&apos;의 엽기적인 몇몇 묘사는 이 노래가 사랑을 잃고 몸부림치는 여자에 대한 것이라서 그렇게 한 것인데 방송 제재를 받아 무척 상심했어. 그렇게 좁은 안목으로 심의를 하니 경쟁력이 떨어지고 다양성이 말살되는 것 아니겠어.&quot; &lt;BR&gt;&lt;BR&gt;-대학 때는 만화를 그리셨다면서요? &lt;BR&gt;&lt;BR&gt;&quot;만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만화 잡지에 작품을 가져간 적이 있는데, 작품의 질은 고려하지 않고 몇장인지만 세서 원고료를 지급하는 것을 보고 그만두게 됐지.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 분야든 질적인 평가보단 양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됐어. 한달에 광고 10편 찍을 역량으로 1편을 공들여 찍어봤자 들어오는 돈은 결국 10분의1이더라고. 그런 양적인 계산법이 총체적인 부실을 낳는 것 아니겠어.&quot; &lt;BR&gt;&lt;BR&gt;3.서른을 훌쩍 넘겨-한미은행 광고 모델 주부 &lt;BR&gt;&lt;BR&gt;-어떻게 전혀 모델 경험이 없는 저희 부부를 캐스팅하셨나요. &lt;BR&gt;&lt;BR&gt;&quot;일상의 리얼리티를 강조하라는 홍상수 감독 스타일의 의뢰서를 받고 사실감을 위해 실제 부부를 출연시킨 거죠. 이 광고는 최대한 정적으로 연출해서 오히려 시선을 끌었지요.&quot; &lt;BR&gt;&lt;BR&gt;(이 두 줄이 바짝 줄여서 신문에 실린 내용이고, 다음은 처음 작성 내용입니다. 문장 자체를 바꾼 것이라 기울인 글씨꼴로 표현할 수 없어 바로 밑에 이 질문에 대한 실제 답의 원문을 병기합니다.) &lt;BR&gt;&lt;BR&gt;(당시 전 사실 이 광고가 왜 내게 들어왔는지 의아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전 젊은층을 겨냥해 스타일이 튀는 이미지 중심의 광고를 찍어왔는데, 일상의 리얼리티를 강조한 이 광고 의뢰서를 보고 &apos;이거 홍상수 감독이 찍어야 하는 건데&apos;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일단 맡았으니 사실감을 위해 실제 부부를 캐스팅해야 한다고 본 거죠. 의상도 실제 입으신 옷으로 했고요. 그리고 최대한 정적으로 연출했어요. 모두들 사운드를 자극적으로 사용해 시청자 이목을 끌려고 아우성치는 상황에서 반대로 가는 전략이 성공한 사례였습니다.&quot;) &lt;BR&gt;&lt;BR&gt;-벌써 10여년 가까이 일만 하신 것 같던데 충전은 언제 합니까. &lt;BR&gt;&lt;BR&gt;&quot;할만큼 하다가 쉬면 됩니다. 할 일이 없어지면 생각을 하게 마련이죠. 고3때 하루종일 서울역 근처 만화방에서 시간을 보내다 거리로 나서면 머리 속이 텅 빈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당시에 차비가 없어 노량진까지 걸어오면서 지나가는 차를 세는 버릇이 있었는데 지금 떠올려보면 그 무의미한 듯한 시간이 사실은 사색의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quot; &lt;BR&gt;&lt;BR&gt;4.쉰을 불현듯 지나-국제전화 002 광고 속 모델 전원주 &lt;BR&gt;&lt;BR&gt;-연예계 생활 수십년에 광고 때문에 제가 유명세를 탈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lt;BR&gt;&lt;BR&gt;&quot;IMF라는 당시 상황도 그렇고 해서 그 광고 목표는 &apos;무조건 웃기자&apos;였습니다. 국제전화는 넓은 계층을 대상으로 하니 난해하면 안된다는 생각이었죠. 전원주씨가 캐스팅된 것은 IMF 이후 국제전화를 가장 많이 쓰는 사람들이 자녀를 유학 보낸 어머니란 조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광고를 통해 &apos;스타&apos;가 된 분이 한둘 아닙니다만 한번도 그걸 의식하고 캐스팅한 적은 없었어요. 흥미로운 것은 광고 히트작들이 하나같이 최악의 조건에서 절박하게 찍은 작품이라는 겁니다.&quot; &lt;BR&gt;&lt;BR&gt;-장화홍련전을 각색한 내용으로 영화도 찍는다고 하던데, 만화 광고 뮤직비디오 영화 등 하는 게 너무 많은 건 아닌가요. &lt;BR&gt;&lt;BR&gt;&quot;영화는 올 연말쯤 촬영에 들어가기 위해 이야기를 만지고 있는 단계입니다. 시나리오도 직접 쓰는데 영상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전 몸 가는대로 행동하는 것 같습니다. 박지윤 뮤직비디오 찍고나서 그쪽 일도 많이 들어오는데, 재미로 했던 것이라서 많이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너무 장르를 좁게 규정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재미를 느끼는데 왜 광고만 찍어야 합니까.&quot; &lt;BR&gt;&lt;BR&gt;일본영화 &apos;사후&apos;에는 살아있을 동안의 단 한가지 기억만 가져가야 하는 사람들 이야기이다. 그 상황에 놓일 때 당신이 선택할 장면은? &lt;BR&gt;&lt;BR&gt;&quot;CF 광고 감독으로 데뷔작을 찍던 96년 프랑스 파리에서의 어느날을 고르겠다. 내겐 정말 중요한 순간이었는데 갑자기 비가 와 촬영 무산 위기를 맞았다. 하루가 밀리면 끝장이어서 강행했다. 궁지에 몰리니까 신께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이 참 별 거 아니구나,생각했다. 그때의 절박함과 절절함을 잊지 않고 싶다.&quot; &lt;BR&gt;&lt;BR&gt;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은? &lt;BR&gt;&lt;BR&gt;&quot;소설가 김영하씨다. &apos;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apos;를 비행기에서 단숨에 읽었다. 이미지를 화면에서 생생히 보는 듯 비주얼한 글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런 글의 스타일이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궁금하다.&quot; &lt;BR&gt;&lt;BR&gt;附.&apos;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터뷰&apos; 첫 회를 위해 박명천 감독을 만나러 택시타고 가던 날, 지하철 압구정역 앞 네거리 한가운데에서 체증에 꼼짝없이 뒤엉컸다. 무심코 올려다보니 &apos;꼬리 물릴 때 진입금지&apos;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어설픈 시도를 경계하는 계시일까. 그래도 꼬리를 물고 또 물다 보면 언젠가는 적수공권(赤手空拳)에도 희미한 삶의 실마리가 잡히는 날이 오겠지.&amp;nbsp;&amp;nbsp;(글 : 조선일보 이동진기자)&lt;BR&gt;&lt;BR&gt;&lt;BR&gt;::: INTERVIEW_2 :::&lt;BR&gt;&lt;BR&gt;&lt;IMG height=336 alt=&quot;041123_designer_image001(2) copy.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75/007/041123_designer_image001(2) copy.jpg&quot; width=570 border=0&gt;&lt;BR&gt;그가 광고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대학시절 수강한 영상 디자인이라는 과목 덕분이었다. &lt;BR&gt;졸업 후 김종덕 감독 밑에서 조감독으로 일을 하게 되었고, 그 후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그의 첫 데뷔작인 NIX광고를 찍게 되었다. 그리고 1997년, 지금의 매스메스에이지(mass mess age)를 설립하여 지금까지 운영해 오고 있다. 강남의 중심부 논현동의 주택가에 호젓하게 자리잡은 매스메스에이지는 2003 한국건축문화 대상에 걸맞게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어느 곳에도 간판이나 매스메스에이지 임을 짐작할만한 광고는 찾을 수 없었지만, 건물의 느낌은 박명천 감독과 너무도 잘 맞아떨어졌다. &lt;BR&gt;&lt;BR&gt;&lt;IMG height=253 alt=&quot;041123_designer_image002 copy.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75/007/041123_designer_image002 copy.jpg&quot; width=570 border=0&gt;&lt;BR&gt;&lt;BR&gt;매스메스에이지는 어떻게 창립되었나?&lt;BR&gt;CF 작업은 특성상 머릿속에 구상된 것을 구조, 앵글, 표정 등으로 바로바로 표현한다. 이것들을 모델 및 스태프들과 교감하여야 하기 때문에 작업이 성공하려면 팀워크가 가장 중요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와 가장 팀워크가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만화 동아리 &apos;네모라미&apos; 에서 만난 친구, 후배들과 함께 &apos;매스메스에이지&apos; 를 만들었다.&lt;BR&gt;&lt;BR&gt;회사 홈페이지도 없고, 간판도 보이질 않는데…&lt;BR&gt;나는 완벽하게 하지 못할 바에는 아예 하지를 말자고 생각을 한다. 회사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그렇기 때문에 자료를 정리해야 할 사람도 나인데, 정작 시간이 없기 때문에 여태껏 홈페이지를 만들지 못했다는 변명 같은 이유를 대고 싶다. 간판은 딱 하나 있는데, 회사를 차릴 당시에 공예과에 있는 후배가 만들어준 것이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지금은 나의 작업실 입구에 그냥 세워져 있다.&lt;BR&gt;&lt;BR&gt;&lt;IMG height=215 alt=&quot;041123_designer_image004 copy.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75/007/041123_designer_image004 copy.jpg&quot; width=570 border=0&gt;&lt;BR&gt;&lt;BR&gt;지금까지 총 몇 편의 작업을 진행해 왔는가? &lt;BR&gt;얼마나 많은 CF를 제작했는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숨가쁘게 달려왔다. 올해가 광고를 시작한지 8년이 되었는데, 달이 거듭할수록, 해가 거듭할수록 CF의 수가 달라진다. 지금도 여전히 과거의 작품을 돌아보는 것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다. 평균 70여 편을 만든다고 한 기사를 보았는데,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lt;BR&gt;&lt;BR&gt;사장이라는 직함과 감독이라는 직함의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lt;BR&gt;무언가를 책임지고 앞서서 일을 한다는 것은, 내 일이기 때문에 내 맘대로 반영할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경영자이라는 직함 때문에 작업을 임함에 있어서 시간적으로 할애해야 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일에 지장을 줄 때도 있다. &lt;BR&gt;하지만 자신의 일을 잘하는 사람이 경영도 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있다.&lt;BR&gt;&lt;BR&gt;직원의 규모는 어떠하며 더 채용할 생각은 없는가? &lt;BR&gt;일이 워낙 유동적이다 보니 프로젝트마다 필요한 인원이 수시로 변한다. 조감독, PD, 감독을 포함하면 20명이 넘을 것 같다. 그 외에 우리와 함께 일을 하는 회사가 몇 개 있다. 매스메스에이지에서 따로 떨어져 독립 법인으로 운영이 되는데, 아트 디렉터를 담당하는 ‘미미크라이’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영화, 포스터, CF의 타이포들은 거의 대부분 ‘꽃피는 봄이 오면’에 의뢰를 하여 이루어지는 편이다. 이러한 업무들은 효율성을 첫째로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규모를 늘릴 생각은 없다. &lt;BR&gt;어떤 감독이 말한 것처럼 직원이 15명일 때, 업무 효율이 가장 높다고 생각한다.&lt;BR&gt;그래서 우리와 함께 작업을 하다가 새로운 곳이 생성될 수는 있겠지만, 현재의 20여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lt;BR&gt;&lt;BR&gt;&lt;IMG height=251 alt=&quot;041123_designer_image003 copy.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75/007/041123_designer_image003 copy.jpg&quot; width=570 border=0&gt;&lt;BR&gt;&lt;IMG height=468 alt=&quot;041123_designer_image005(2) copy.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75/007/041123_designer_image005(2) copy.jpg&quot; width=570 border=0&gt;&lt;BR&gt;&lt;BR&gt;취미는 무엇인가. &lt;BR&gt;이것저것 수집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렇게 하나 둘 모은 컬렉션들은 나에게 늘 아이디어의 모티브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나 테디베어를 좋아하는데, CF나 뮤직비디오에 까메오로 출연하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기회가 닿는다면 내 흰 머리카락으로 만든 테디베어를 갖고 싶다. &lt;BR&gt;&lt;BR&gt;&lt;IMG height=249 alt=&quot;041123_designer_image006 copy.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75/007/041123_designer_image006 copy.jpg&quot; width=570 border=0&gt;&lt;BR&gt;&lt;BR&gt;포장이 채 풀리지 않은 박스들이 사무실에 가득한데.. &lt;BR&gt;지금 있는 사무실은 이전하고 쌓아놓은 그대로이다. 바쁜 일정으로 정리를 못하고 그냥 두었을 뿐인데, 이 물건들의 위치를 옮겨 놓으면 뭔가가 허전하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물건의 자리가 만들어진 것 같다.&lt;BR&gt;실제로 이런 현상은 CF촬영장에서 많이 느끼는 것이다. 촬영을 위해 세트를 다 준비하고 그 모습을 앵글에 담으면 먼가가 어색하다. 그래서 실제현장에 가서 촬영을 하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lt;BR&gt;&lt;BR&gt;촬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 &lt;BR&gt;적은 예산 편성으로 하루 동안 촬영을 했던 작품이 있다. &lt;BR&gt;XIX라는 브랜드였는데, 하루 동안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모티브 삼아 3편의 광고를 만들었다. 즉흥적인 퍼포먼스 형식을 빌린 그 광고는 현재까지도 감도가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lt;BR&gt;기차를 타고 가면서 고민을 하는 중에 문득 밖을 보게 되었는데, 철조망이 X|X|X|X 모양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다. 화들짝 놀래서 그 부분을 연속 촬영을 하다 보니 브랜드 명이 화면 속에 펼쳐지는 게 아닌가? 그 짜릿함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lt;BR&gt;&lt;BR&gt;어떤 광고를 가장 좋아하는가? &lt;BR&gt;서정적이고, 감성적인 것들을 좋아한다. 물론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서정적이고 감성적이라고 하는 것들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술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apos;술이 세다&apos;라고 말을 하는 것과 술이 약한 사람이 &apos;술이 세다&apos;라고 말을 하는 것은 굉장한 차이가 있다. 나의 경우에는NIX나 TTL CF의 강도가 가장 맞는 듯 하다. 말을 많이 하지 않더라도 이미지와 느낌을 공유하면서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을 수 있는 광고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급하게 무언가를 소비자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광고주(예컨데 세일을 앞두고)에게 이런 이미지 광고를 무조건 요구하지 않는다. 방향성이 맞고 그 제품이 주는 아이덴티티를 고려하여 작품에 임하기 때문이다.&lt;BR&gt;&lt;BR&gt;&lt;IMG height=572 alt=&quot;041123_designer_image007 copy.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75/007/041123_designer_image007 copy.jpg&quot; width=570 border=0&gt;&lt;BR&gt;&lt;BR&gt;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외국 시장으로의 진출도 활발하다고 들었다. &lt;BR&gt;중국, 일본, 미국 등의 일을 맡아서 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외국 광고주로는 SONY, P&amp;amp;G 차이나 등이 있다. 매년 열리는 국제적인 깐느, 런던 광고제에 해마다 직원들을 보내서 적극적인 홍보를 하고 있다. 국제적인 프로덕션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한 작은 발걸음이라고 생각한다.&lt;BR&gt;&lt;BR&gt;바쁘게 일을 진행하다 보면, 쉬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lt;BR&gt;조연출이나 조감독의 경우 1년에 한 달간의 휴가를 자유롭게 준다. &lt;BR&gt;휴가 계획서를 세우고 예산을 계획해서 오면, 그 예산을 회사에서 전액 지급해 준다. 그리고 연차가 어느 정도 된 PD나 감독의 경우에는 회사에서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주기도 한다. 두 명이 현재 나가있는데, 한 명은 뉴욕에, 또 다른 한 명은 런던에 나가서 공부를 하고 있다. 나 또한 1년의 마무리하는 12월에는 1주일 정도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일만 하다 보면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이런 일련의 작업들은 나중에 개인을 위해서도, 회사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lt;BR&gt;&lt;BR&gt;지금까지 작업을 해 오면서 가장 어려웠던 적은 언제였는가? &lt;BR&gt;솔직히 매번, 매 순간이 어렵다. 그런데 그런 것들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렵고 힘들었던 기억조차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다. 그래도 가장 어려웠던 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최근 티베트 접경지대에서의 촬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해발 4000m의 고지대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작업을 했었다. 당시에는 숨이 멎을 만큼 힘이 들었었지만, 그 일도 지금 생각을 해보면 너무도 좋은 추억이고 즐거움이다.&lt;BR&gt;&lt;BR&gt;&lt;IMG height=180 alt=&quot;041123_designer_image016 copy.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75/007/041123_designer_image016 copy.jpg&quot; width=570 border=0&gt;&lt;BR&gt;&lt;IMG height=207 alt=&quot;041123_designer_image014 copy.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75/007/041123_designer_image014 copy.jpg&quot; width=570 border=0&gt;&lt;BR&gt;&lt;IMG height=207 alt=&quot;041123_designer_image013 copy.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75/007/041123_designer_image013 copy.jpg&quot; width=570 border=0&gt;&lt;BR&gt;&lt;IMG height=207 alt=&quot;041123_designer_image012 copy.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75/007/041123_designer_image012 copy.jpg&quot; width=570 border=0&gt;&lt;BR&gt;&lt;IMG height=207 alt=&quot;041123_designer_image011 copy.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75/007/041123_designer_image011 copy.jpg&quot; width=570 border=0&gt;&lt;BR&gt;&lt;IMG height=207 alt=&quot;041123_designer_image010 copy.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75/007/041123_designer_image010 copy.jpg&quot; width=570 border=0&gt;&lt;BR&gt;(디자인정글)&lt;BR&gt;&lt;BR&gt;&lt;BR&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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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건축가 Rem Koolhaas</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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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5-01-30T12:30:11P</published>
      <updated>2008-08-14T00:04:51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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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align=center&gt;&lt;IMG alt=&quot;&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68/007/2087_copy.jpg&quot; border=0&gt;&lt;/P&gt;&lt;BR&gt;&lt;BR&gt;&lt;A onclick=&quot;window.open(this.href);return false;&quot; href=&quot;http://www.oma.nl&quot;&gt;http://www.oma.nl&lt;/A&gt;&lt;BR&gt;&lt;BR&gt;::: PROFILE :::&lt;BR&gt;1944년 로테르담에서 출생. &lt;BR&gt;1952~56 인도네시아에서 생활. 이후 다시 로테르담으로 귀환 &lt;BR&gt;1956~ 하게포스트 저널리스트. 네들란드와 로스엔젤레스등에서 시나리오작가로 활동. &lt;BR&gt;1968~1973 런던의 AA스쿨에서 공부. &lt;BR&gt;이 때 건축으로서의 베를린장벽, 해방 혹은 자기 속박으로서의 건축 &lt;BR&gt;(조 젱헬리스, 마델론 브리센도르프 등과 함께)을 출판 &lt;BR&gt;1972 미국정부의 하크니스 연구지원금 수혜 &lt;BR&gt;1972~1973 O.M.웅거스와 함께 수학, 뉴욕 도시 및 건축학회 객원 연구원. 정신착란증의 뉴욕, 맨해튼의 반현상 등을 집필 &lt;BR&gt;1978 네들란드 의회청사 현상설계에 당선 &lt;BR&gt;1995 SMLXL 출판 &lt;BR&gt;1995년 이후 하버드대 교수&lt;BR&gt;&lt;BR&gt;&lt;BR&gt;::: BIOGRAPHY :::&lt;BR&gt;렘 쿨하스는 런던에서 건축공부를 하기전 Haagse Post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약했으며, 또한 영화극작가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것은 그의 건축적 이론을 사람들에게 논리적으로 다가설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lt;BR&gt;&lt;BR&gt;이 후 그에게 상당한 국제적 명성이 주어진 것도 사실상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며, 지어진 건축물은 별로 없지만 이에 비해 건축적으로 엄청난 국제적 평판과 반향을 얻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실은 많은 그러한 평판들이 현대건축에서 실질적 건축보다 이론적 건축작업에 치중된 것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신사고적인 그의 건축이론들이 사회나 건축계에 상당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t;BR&gt;&lt;BR&gt;이런 반응이 있을 수밖에 없는 몇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 중 두드러진 것은 건축에 인간의 내재적인 감정 즉, 섹스라는 개념을 가리지 않고 그대로 그려낸다는 점이다. &lt;BR&gt;&lt;BR&gt;형태나 공간 배치에 있어 그는 과감하게 이것을 기본 concept으로 지칭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주장하는 용기가 때론 뭇 사람들에게는 다소 위축되게 만드는 묘한 카리즈마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건축적 이상과 최근의 작품들 사이에는 일련의 조화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건축적 사고의 성숙의 시기가 온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lt;BR&gt;&lt;BR&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234 alt=&quot;a0015267_22173624 copy.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68/007/a0015267_22173624 copy.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Educatorium &lt;/P&gt;&lt;BR&gt;1944년 네들란드의 로테르담에서 태어난 렘 쿨하스는 8살부터 12살까지 인도네시아에서 성장하였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조국인 네들란드로 돌아와 교육을 받고 암스테르담에서 정착하여 헤이그 포스트 신문기자로 또 영화극작가로 활동하였다. 이 작업은 1980년대 초까지 계속되었다. 이후 그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 자기 경험 획득을 위한다는 이유로 건축을 공부하기 위해 런던의 명문 건축학교인 AA School 로 떠났으며, 1972년 학위 취득과 함께 &apos;Exodus&apos; 라는 계획안을 디자인하며 자신의 건축관을 형상화하게 된다. 학교를 마치고 바로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뉴욕의 건축에 매료되어 거대도시의 문화가 건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심취하게 되고, 그의 첫 번째 저작물인 &apos; 정신착란증의 뉴욕 : 맨해턴의 회고적 선언 &apos; 을 발간하게 된다.&lt;BR&gt;&lt;BR&gt;이후 유럽으로 다시 돌아온 1975년, 젱겔리스 등의 동료 건축가와 함께 OMA 사무소를 런던에 개설한다. 이 사무소는 매우 독특하게 &apos;이론과 실천&apos; 혹은 &apos;건축과 현대문화&apos;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며, 현재는 런던 사무소보다 로테르담 사무소가 그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로테르담 사무소 개설과 함께 그는 &apos;건축과 현대문화의 동시적 추구&apos;라는 런던 사무소 개설 때의 취지를 그대로 유지하되 폭주하는 건축설계 일과 문화관련 업무를 분리하기 위해 &apos;대도시 재단&apos;을 별도 법인으로 만들어 주로 전시와 출판을 이 재단이 담당하게 된다.&lt;BR&gt;&lt;BR&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281 alt=&quot;a0015267_22202037 copy.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68/007/a0015267_22202037 copy.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CCTV&lt;/P&gt;&lt;BR&gt;쿨하스는 &apos;속박으로부터의 자유, 구조로부터의 자유, 정형화된 모델로부터의 자유, 이데올로기로부터의 자유, 질서로부터의 자유, 프로그램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계통이나 계보로부터의 자유&apos;를 외치는 건축가이다. 이같은 뚜렸한 건축적 자기확인 때문에 그의 작품은 어느 한가지 흐름을 일관하는 것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점잖은 건축으로 이념이 표현되기도 하지만 어떨 때에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을 정도의 난해함이 구현되기도 한다. 이같은 경향은 여러 건축비평가들의 평가대로 몽상가적 상념에서 탈피하여 비로서 진정한 건축가로 탈바꿈하는데 지난 20여년이 걸렸기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재의 유명세와 지위를 획득하는데 얼마 만큼의 시간이 걸렸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오늘의 문화적 현상에 대한 그의 해석이나 그같은 해석을 기반으로 창조되는 건축이 오늘날의 문화적 맥락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가 훨씬 중요할 것이다. &apos;세계화&apos;로 불리는 작금의 추세는 이런 까닭에 그의 &apos;자유로움&apos;에 아주 잘 들어맞는 것이기도 하다.&lt;BR&gt;&lt;BR&gt;다음은 그의 주요작품이다.&lt;BR&gt;&lt;BR&gt;Tower Bridge ( 로테르담 ), Dance Theater ( 헤이그 ), NEXUS WORLD 집합주택 9,10호 (후쿠오카) , 빌라 딜라바 ( 파리 ), Kunsthal 현대 미술관 ( 로테르담 )&lt;BR&gt;&lt;BR&gt;&lt;BR&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221 alt=&quot;a0015267_22222372 copy.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68/007/a0015267_22222372 copy.jpg&quot; width=400 border=0&gt;&lt;BR&gt;Seoul National University Art Museum Project &lt;/P&gt;&lt;BR&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300 alt=a0015267_22214669.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68/007/a0015267_22214669.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KUNSTHALL&lt;/P&gt;&lt;BR&gt;&lt;BR&gt;::: S.M.L.XL :::&lt;BR&gt;두께 7.2cm 에 1340 페이지에 이르는 형형색색의 내용물을 블랙과 골드 고딕체 타이틀로 각인된 화려한 은박 표지가 덮여있는 &apos;S.M.L.XL&apos;는 지난 20여년간 이루어진 OMA 의 건축작업, 현대도시에 대한 여러가지 단상들, 각국의 문화적 충격을 직설적으로 그려낸 에세이와 사진 , 선언서, 일기, 알 듯 모를 듯한 명상적 언어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는 이 책을 가리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lt;BR&gt;&lt;BR&gt;&quot; 이 책은 꾸러미이다. 나는 이 책을 &apos;건축에 관한 소설&apos; 이라고 부른다. &quot;&lt;BR&gt;&lt;BR&gt;&apos;S.M.L.XL&apos;의 내용이나 사진 등을 훑어보면 현대 도시문화의 다양한 면과 그의 건축철학이나 설계에 임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기존 건축서적의 구성형식과 내용을 과감히 탈피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건축은 &apos;자유&apos;나 &apos;새로움&apos;으로 상징화된다.따라서 반(反)형식주의(Anti-Formalism)로 축약되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렘 쿨하아스의 건축은 컬럼비아 대학의 건축이론가이자 비평가인 케네스 프램프턴(Kenneth Frampton)의 말처럼 &apos;건축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진정으로 모르는..., 그래서 건축을 그저 일종의 게임으로 생각하는 건축가&apos;로 폄하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체주의 건축의 기수이자 미국 건축계의 무서운 아이(enfant terrible)로 통하는 프랭크 게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apos;그는 도시에 대한 희망적 존재인 동시에 건축계에서 가장 폭넓은 사고를 하고 있는 건축가&apos;로 치켜세워지기도 한다. 이같은 양면적인 평가는 우리가 매일 대하는 현대 도시문화에 대한 해석을 해달라는 요구를 받는다면 개개인이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태도를 취할수밖에 없는 상황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lt;BR&gt;&lt;BR&gt;&lt;BR&gt;S, M, L, XL. 흔히 볼 수 있는 이 기호는 소품종 대량생산 시대의 부산물로서 Small, Medium, Large, Extra-Large로 불리는 옷의 사이즈를 각각 영문의 머릿글짜로 상징화하여 상용하는 일종의 약속으로 최근 여성들의 옷 사이즈를 55, 66, 77등으로 호칭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러나 건축계에서 의미하는 S, M, L, XL는 네덜란드 태생의 세계적 건축가 렘 쿨하아스(Rem Koolhaas)를 등식화하는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이같은 연상작용이 더욱 분명해지도록 한 사건은 미국의 시사주간지 TIME 1996년 12월 23일자에서 선정한 &apos;1996년의 디자인 베스트 10&apos;이었다. 의상 디자이너 캘빈 클라인의 이브닝 가운, 맥도널드의 M자형 로고, 캐논 카메라 ELPH 490Z 모델,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l O. Gehry)가 몰다우 강변에 설계한 보험회사 빌딩 등과 함께 렘 쿨하아스와 그래픽 디자이너 브루스 모(Bruce Mau)가 함께 엮은 건축서적 &apos;S, M, L, XL&apos;가 1996년 최고의 디자인 작품으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lt;BR&gt;&lt;BR&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256 alt=smlxl.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68/007/smlxl.jpg&quot; width=197 border=1&gt;&lt;BR&gt;S, M, L, XL &lt;/P&gt;&lt;BR&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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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CD와 cmos의 차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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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5-01-30T01:08:38P</published>
      <updated>2009-04-20T01:13:50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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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i s l e</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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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im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66/007/ccd.jpg&quot; border=&quot;0&quot; alt=&quot;&quot; /&gt;&lt;br /&gt;&lt;br /&gt;&amp;lt;ARTICLE_1&amp;gt;&lt;br /&gt;
코닥이 필팩토리와 공동개발한 1400만화소 풀프레임 CMOS는 노이즈때문에 망했지만 캐논이 자체개발해서 1Ds 에 사용한 1100만화소 풀프레임 cmos 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것을 볼때 결국은 기술력의 차이가 아닐까요.&lt;br /&gt;
&lt;br /&gt;
예전에는 cmos 방식은 가격이 저렵 하지만 다이나믹 레인지가 떨어진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거의 대등한 화질에 가격이 크게 저렴 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lt;br /&gt;
&lt;br /&gt;
다만 크게 제작 하는데는 cmos방식이 유리 하다고 합니다. &lt;br /&gt;
&lt;br /&gt;
현재 상황은 고 ISO의 화질은 CCD가 유리한 편이며 저 ISO 장시간 노출은 발열량이 적은 cmos가 다소 유리 하며 연사는 CCD가 유리하다고 하는 것이 일반 적인 견해 입니다. &lt;br /&gt;
&lt;br /&gt;
cmos에서 중요한 화두는 마이크로렌즈의 제거 입니다. 이것의 존재는 CCD에서 보다 cmos에서 중요 하다고 합니다.&lt;br /&gt;
&lt;br /&gt;
실제로 cmos의 경우에도 연사에 필요한 전송 레이트에 괄목할만한 제품이 무척 많습니다. 굳이 단품이 아닌 최근에 나온 1Ds의 경우도 3fps x 11M = 33MPixel 전송량입니다. 1D의 4M 픽셀급으로 생각하면 8fps 정도의 성능인 샘이죠. 그리고 cmos 단품으로는 해당 성능이 44MHz ~ 88MHz 제품도 있습니다. 연사의 문제는 센서의 문제도 있지만 셔터박스와 메모리 등과의 주변 문제등이 아주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lt;br /&gt;
&lt;br /&gt;
현재 cmos 센서의 경우에 CCD에 비해서 ADC 율은 높은 반면에 실제 유니트 셀에 저장될수 있는 전자의 개수가 생대적으로 절반 수준에 못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과적으로 촬영조건에 따라서 대역이 절반 정도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lt;br /&gt;
또한 유니트 셀에서 주변 셀로 굳이 BLOOMING이 아니더라도 전자 전이가 상대적으로 CCD에 비해서 심한 편입니다. 물론, 과거에는 너무나(?) 심해서 선명도나 컨트라스트가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올정도였고, 현재는 많이 개선되었지만 역시 아직도 문제는 상존합니다. &lt;br /&gt;
&lt;br /&gt;
실제로 역광이나 대비가 높은 경우등에서 RAW 촬영해서 보면 역시 아직 cmos 계열에서는 상대적으로 CCD에 비해서 상존하는 문제점입니다. 하지만 CMOS 제작이 월등이 유리한 점도 많습니다. 첫번째로 소비전력입니다. 센서의 크기가 커지고 셀이 많이질수록 전력 소모는 비례 이상으로 증가됩니다. 이동기기에서는 치명적인 일이었죠. ^^; 실제로 많은 업체들이 심각하게 cmos를 고려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쉽게 이동하지 못하는 화질이나 기존의 CONCEPT 등에서 있어서 고민중일 뿐이죠..^^&lt;br /&gt;
&lt;br /&gt;
&lt;br /&gt;
[&amp;nbsp;&amp;nbsp;결론적으로 정리를 한다면&amp;nbsp;&amp;nbsp;] &lt;br /&gt;
카메라에 필요한 계조와 노이즈 특성을 본다면, CCD가 cmos 센서에 비해서 10-20% 정도 우수합니다. 물론 얻어지는 전기 신호가 어느 정도 선형이느냐는 계조 표현에서 무척 중요한 관건이 되는데 바로 이 부분이 유리하고 상대적으로 신호비도 좋아지게 됩니다. &lt;br /&gt;
&lt;br /&gt;
전자적으로 그리고 기기적으로 본다면 cmos 센서가 월등히 우월합니다. 동작 전압이 낮고 따라서 전력소모도 작으며 상대적을 고속으로 처리도 유리하고 전력소모가 적은 많큼 자기 발열이 적기 때문에 노출에도 유리합니다. &lt;br /&gt;
&lt;br /&gt;
풀프레임으로 접근하게 되면 당연히 특수 목적의 기기가 아니고는 cmos로 가는 것이 정석입니다. 순수 면적이 2배가 되었을때 전력 소보는 2배 이상이 필요하기 &amp;#46468;문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cmos 센서를 사용하는 경우에 회사마다 많은 노하우를 적용하고 있고 또한 센서마다 출력되는 신호의 방식에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코닥이 필팩토리에 의뢰하여 개발한 제품에 비해서 우월한 반면에 어플리케이션 측면에서는 캐논이 유리한 것도 한 부면입니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cmos가 CCD에 비해서 속도가 느리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것은 1Ds 의 영향의 큰데 실제로 픽셀 속도가 동일한데도 외관적인 프레임 속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반대로 늦다는 생각을 하게 된거죠... 현재 순수하게 속도를 비교한다면 cmos 계열이 CCD의 초고속 계열을 제외한 프레임 계열에서는 1.5~2.0배 정도 앞서고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현재 cmos 센서의 최약점으로는 심한 비선형성에 의한 낮은 감도 영역에서의 노이즈 효과를 극복해야하고 상대적으로 절대 축전대역이 낮은 것을 끌어올리는 기술역시 관건이 되고 있을 뿐입니다. &lt;br /&gt;
&lt;br /&gt;
참고 : 절대 광량에 대한 절대 광량에 대한 부족을 극복하기위해서 외부에서 필터량을 줄이거단 간혹 증폭비를 낮추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 회로 부의 노이즈 때문에 낮은 대역이 가려지기 때문에 실제로 대역을 넓이지만 반대로 노이즈 때문에 음영부가 죽는 현상으로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다들... 기본 노이즈 줄일려구 발악(?) 중입니다.&lt;br /&gt;
&lt;br /&gt;
아래 주소로 가보시면 제가 언급했던 cmos 소자에 관한 source follower 등의 기술내용과 간단하지만 ccd 와의 비교 데이터도 일부 소개되어 있습니다. 참조하세요.&lt;br /&gt;
&lt;br /&gt;
http://www.hichips.com/hichips/tech04con.htm&lt;br /&gt;
&lt;br /&gt;
&lt;br /&gt;
&amp;lt;ARTICLE_2&amp;gt;&lt;br /&gt;
(1)&amp;nbsp;cmos와 ccd를 센서라고 하지만 사실은 센서가 아닙니다.&lt;br /&gt;
ccd는 charge coupled devices의 약자죠. 일종의 전하 전송수단입니다. 전하를 전송하는 방법이 좀 특이하죠. 일종의 전하 우물 즉 potential well의 깊이를 전하를 전달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연속적으로 조절하여 전하를 전송하는 소자를 ccd라고 합니다. 이쯤하죠. 결국 ccd는 전하우물의 깊이를 대체로 3단계 정도로 연속적으로 조절해서 전하를 전송하는 소자입니다. 그러니까, ccd 소자는 단독으로 존재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고 적어도 3개의 소자를 연속적으로 배치하여 전하를 전송하도록 합니다. 보통 촬상소자에서 ccd는 포토센서(광전변환소자)의 라인에 일렬로 설치되서 하나의 라인에서 생성되는 전하를 촬상소자의 아래로 전달하는 소자입니다. 그리고, 좔상소자에는 각 라인에서 소자의 아래로 전송된 전하를 다시 한쪽으로 전송하는 ccd가 있습니다.&lt;br /&gt;
&lt;br /&gt;
cmos는 complementary metal oxide semiconductor field effect transistor(상보형 트랜지스터)의 약자죠. 일종의 트랜지스터죠. 트랜지스터는 뭐하는 거냐하면, 신호를 온오프 시키거나 증폭회로를 구성하는 소자라고 할 수 있죠. 촬상소자에서 cmos는 전하를 전송선으로 공급하기 위한 스위칭 소자의 역할을 하거나, 전하를 증폭하기 위한 회로의 구성 소자로 사용됩니다.&lt;br /&gt;
&lt;br /&gt;
(2) 그렇다면, 센서는 뭐냐?&lt;br /&gt;
센서는 광센서 즉 광을 전하로 변환시키는 소자죠. 광전변환소자가 센서라 할 수 있죠. 포토 다이오드가 주로 사용됩니다. 렌즈를 통해서 들어온 광이 광전변환소자(보통 CdS 카드늄 설파이트 등 사용)에 전달되면 여기서 광이 전하로 변환됩니다. 이 변환된 전하는 ccd나 coms를 통해서 각픽셀 위치의 광의 세기를 DSP(digital signal processing)을 통하여 중앙처리장치로 전달되어 화상을 구현하게 됩니다. &lt;br /&gt;
&lt;br /&gt;
(3) 그러면, ccd와 cmos는 뭐가 다른가? 즉, 전송 방식 또는 전송 소자가 다른 이유와 특징은 무었인가?&lt;br /&gt;
&lt;br /&gt;
ccd에도 전송 방식에는 3가지가 있습니다. 인터라인 방식, 프레임 전송 방식, 프레임-터라인전송 방식이 있습니다. 이중에서 케논 D씨리즈에 사용되는 방식은 이중 가장 전송속도가 느린 인터라인 방식으로 대신 촬상소자가 가장 작죠. 하나의 화소 라인별로 설치된 ccd로 라인 별로 전송을 합니다. 즉, 발생된 전하를 그대로 전송합니다. 전하의 손실이 별로 없죠.&lt;br /&gt;
&lt;br /&gt;
그런데, cmos의 경우는 발생된 전하가 mos소자의 게이트가 온되는 순간 쏘스단으로 입력되어 드레인단으로 출력됩니다. 이때 쏘스 전극에 입력된 전하는 반도체 웨이퍼에 형성된 P 또는 N형 반도체(쏘스)를 거쳐 다시 N또는 P형 게이트 채널을 통과해서 다시 P또는 N형 반도체(드레인)으로 출력되는 과정에서 원래의 전하가 손실되거나 변형되게 됩니다. &lt;br /&gt;
그 이유는 cmos는 전하를 전송하는 소자가 아니라 디지털 신호를 전송하기 위해서 개발된 소자이기 &amp;#46468;문입니다. 예를 들면, cmos소자는 디지털 메모리 소자에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주로 5V 또는 0V 사이의 신호차만 전달하면 됩니다. 즉, 3.5 내지 7V 정도 절단되어도 이것은 디지털로는 모두 1로 인식하고, -1 내지 1.5 V 인 경우 모두 0으로 인식되면 그만이죠. 따라서, 그만큼 오차 및 노이즈에 별로 정확성을 가지지 못합니다.&lt;br /&gt;
&lt;br /&gt;
그래서, 개발된 목적이 다르므로 ccd 촬상소자는 cmos 촬상소자에 비하여 훨씬 정확한 전하량을 전달할 수 있다고 보면 됩니다. &lt;br /&gt;
&lt;br /&gt;
그만큼, 촬상소자에서는 광전변환소자(광센서) 보다는 발생된 전하를 전송하는 전송수단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촬상소자를 전하전송수단에 따라 ccd나 cmos라고 부르죠. 그래서, 일반인들은 ccd나 cmos가 센서인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lt;br /&gt;
&lt;br /&gt;
(4) 그런데 왜 캐논에서는 주로 cmos를 사용하는가?&lt;br /&gt;
최근에 cmos 촬상소자의 수요에 부흥하여 이분야의 급속한 기술의 발전으로 cmos의 전하 전송방식이 혁신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광전변환소자에서 발생된 전하를 source follower라는 일종의 신호 증폭 회로를 도입하여 전에 비하여 상당히 노이즈 및 잔류전하량을 개선시켜서 거의 ccd의 수준에 육박하게 되었습니다.&lt;br /&gt;
또한, cmos는 기존의 반도체 소자 제조 프로세스(DRAM 등)와 동일한 프로세스로 제조가 가능하여 가격이 ccd의 약 1/4정도로 제조하게 되었죠. 그리고, 집적도면에서도 앞으로 급속한 변화가 예상됩니다. 메모리의 경우를 예로들면, 현재 DRAM의 경우 손톱만한 면적에서 1Giga(1.000,000,000)의 집적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cmos의 경우 현재 D60에는 훨씬 큰 면적에도 600만(6,000,000x3=18,000,000) 정도이니 화소수의 증가는 시간 문제로 생각됩니다. 구조면에서 본다면 cmos의 경우 flash memory와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가진다.&lt;br /&gt;
&lt;br /&gt;
(5) ccd와 cmos의 장단점.&lt;br /&gt;
ccd는 여전히 화질에서 주로 노이즈나 잔상에서 단연 우수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집니다. 그러나, 소비전력이 cmos의 거의 50-100배이고, 전하 전송 방식이 라인방식이므로 각 화소별로 전송하는 cmos에 비하여 2-5배 정도 빠르며(연사속도와 관련), 가격이 약5배 이상될 것으로 예상되며, 현재 촬상소자의 제조회사의 제조추세로는 ccd의 존립이 위태로울 정도입니다.&lt;br /&gt;
&lt;br /&gt;
반면에, cmos는 새로운 회소의 개발로 노이가 현저히 감소하였고, 수율의 향상으로 full size 양산이 조만간 실현될 것이나, 전하 전송 방식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서 연사속도를 확보하기 위해서 화소수의 증가에는 어느정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lt;br /&gt;
&lt;br /&gt;
앞으로는 ccd의 경우 지금도 그렇치만 고도의 전문 분야, 천체 관측 분야, 우주 설비용, 군사용 등의 경우와 일부 최고급 사진용으로 개발이 진행될 것으로 생각되며, cmos의 경우는 일반 사진용으로 널리 쓰이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지금 현재의 기술수준에 의한 예상일뿐 만일 ccd의 공정과 집적도가 혁신되어 대량생산과 가격이 안정된다면 .... 희망사항이지만. &lt;br /&gt;
&lt;br /&gt;
(6)&amp;nbsp;&amp;nbsp;맺으며&lt;br /&gt;
글쎄, 얼마나 이해가 되셨는지 모르겠네요. 간단히 몇가지만 염두에 두셔도 좋을 듯 하네요.&lt;br /&gt;
&lt;br /&gt;
- ccd와 cmos는 센서가 아니라 전송 소자다. 그런데 쵤상소자는 전송소자가 매우 중요해서 일반적으로 ccd나&amp;nbsp;&amp;nbsp; cmos로 불리운다.&lt;br /&gt;
&lt;br /&gt;
- ccd는 cmos에 비하여 노이즈가 적고 전하전송 속도가 빠른 소자이나, 제조공정이 복잡하고 수율이 낮아 가격&lt;br /&gt;
&amp;nbsp;&amp;nbsp;&amp;nbsp;&amp;nbsp;이 높고 소비전력이 많아 배터리 소모가 많다.&lt;br /&gt;
&lt;br /&gt;
- cmos는 노이즈가 많이 개선되었으며, 가격이 싸고 소비전력이 낮으며, 곧 full size(35mm) 양산이 가능한 제조 &lt;br /&gt;
&amp;nbsp;&amp;nbsp;&amp;nbsp;&amp;nbsp;공정을 가지는 소자다.&lt;br /&gt;
&lt;br /&gt;
P.S : 광전소자에는 neodigm님이 말씀하신것처럼 CdS나 진공관, 태양전지, 포토다이오드, 포토트랜지스터가 있습니다. 그런데, CCD/cmos등의 촬상소자에 사용하는것은 노출계등에 쓰는 CdS등의 광전도셀이 아니라 포토 다이오드입니다. 포토 다이오드는 Si나 GaAsP등의 단결정을 이용해서 p-n 접합면을 만든 것입니다. &lt;br /&gt;
&lt;br /&gt;
CCD/cmos 이미지 센서를 보통 &quot;촬상소자&quot;(이미지 센서)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포토 다이오드는 그냥 포토 다이오드라고 부르죠.&lt;br /&gt;
&lt;br /&gt;
cmos의 소스 플로어와 같은 픽셀별 증폭회로(다이나믹 레인지를 CCD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꼭 필요한것)를 소스 플로어라고 부르지 않고 APS(Active Pixel Sensor)라고 합니다. 이게 더 일반적으로 쓰이는 용어&lt;br /&gt;
&lt;br /&gt;
그리고 이러한 APS만으로 cmos의 성능이 CCD수준으로 향상된것은 아닙니다. 녹색이나 청색광에 대해서는 충분한 결과가 나오지만 적색광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나 봅니다. 그래서 이들 소자를 위해서는 여분의 B(붕소)나 P(인)을 더 쏘아준다고 합니다.&lt;br /&gt;
&lt;br /&gt;
* 반도체 제품의 기술의 발전과 생산 &lt;br /&gt;
&lt;br /&gt;
일반적인 반도체 제품들은 기술이 발전하면 똑 같은 트랜지스터들과 회로들이 더 작게 그려질 수 있으므로 필요한 칩 면적 자체가 줄어듭니다. 같은 용량이면 칩 면적이 줄어들고, 칩 면적을 비슷하게 유지하면 용량을 키울 수 있는 식입니다. &lt;br /&gt;
&lt;br /&gt;
디지탈 SLR 에 쓰는 CCD/cmos 에는 이런 것이 적용되지 못 합니다. 아무리 기술 발전시켜도 칩 면적은 줄어들지 못 하고, 오히려 시장의 요구는 더 큰 것을 요구합니다. &lt;br /&gt;
&lt;br /&gt;
칩 면적이 바로 생산비용과 직결되죠. &lt;br /&gt;
&lt;br /&gt;
지금 가격이 떨어진 것은 판매 대수가 늘어난 덕분에 개발비용의 분담을 더 많은 소비자가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판매 대수가 적든 많든 개발비용은 달라질 이유가 별로 없거든요.&lt;br /&gt;
칩면적이 바로 생산비용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습니다. 특히, ccd나 cmos처럼 소자의 크기가 큰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lt;br /&gt;
&lt;br /&gt;
ccd를 생산하는 공정에 사용되는 마스크는 약40개 정도이고, cmos에 사용되는 마스크는 약20개 정도입니다. 마스크의 갯수와 공정 step의 수가 일치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마스크의 수가 많이 필요한 공정이라면 step도 많아 지게 됩니다. &lt;br /&gt;
&lt;br /&gt;
따라서, cmos의 생산 공정이 ccd에 비하여 상당히 간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말씀하신 것 처럼 개발비용은 생산량과 관계없이 들어가게 됩니다. 256MB DRAM의 경우 아마도 현재의 ccd나 cmos의 면적에 비하여 약 1/4정도 이고, 제조공정은 ccd 보다 더 복잡하고 많은 마스크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56M DRAM 칩 하나의 가격은 현재 3불 정도 4개라 하더라도 12불 이하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lt;br /&gt;
&lt;br /&gt;
cmos의 생산공정은 dram의 생산 공정과 매우 유사합니다. 따라서, DRAM처럼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개발비용은 많이 들겠지만, full size cmos가 설계되고 제조공정이 확립되어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면 가격은 상당히 많이 내려갈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DRAM과 같이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에 생산량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대량생산으로 인한 잇점은 많이 줄어들 수 있겠지만, 제조공정이 ccd에 비하여 상당히 단순하기 때문에 수율을 높이게 된다면 가격은 많이 떨어질 것 같습니다. &lt;br /&gt;
&lt;br /&gt;
사실, 생산원가는 실리콘 웨어퍼와 제조 공정에 들어가는 비용 그리고 인건비와 장비 감가상각비인데. 256M DRAM의 경우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현재의 가격이 손익분기점이 되는 가격에 상당히 가까이 와 있다고 들었습니다. 즉, 대량생산체게에서 반도체칩의 제조 원가는 얼마 않되죠. &lt;br /&gt;
&lt;br /&gt;
물론, ccd와 DRAM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CMOS라 하더라도 DRAM과 비교하는 것은 걸맞지 않는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amp;nbsp;&amp;nbsp;cmos라면 머지않은 장래에 저가의 full size cmos가 출현할 것으로 예상하고 싶네요.^^*&lt;br /&gt;
&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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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디아섹(Diasec)</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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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5-01-29T23:58:17P</published>
      <updated>2005-01-29T23:58:17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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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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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a href=&quot;http://plexiphoto.nl/engels/en_start.html&quot; onclick=&quot;window.open(this.href);return false;&quot;&gt;http://plexiphoto.nl/engels/en_start.html&lt;/a&gt;&lt;p align=center&gt;&lt;im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62/007/diasec_1.gif&quot; align=&quot;&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120&quot; border=&quot;0&quot; alt=&quot;diasec_1.gif&quot; /&gt;&lt;/p&gt;A unique production method is used to make the PlexiPhoto.&lt;br /&gt;
&lt;br /&gt;
The image side of a photo is glued to transparent plexiglass (acrylic glass). In this way the image is protected against scratching, dirt and premature aging. This production technique is originally developed (by Swiss chemist Heinz Sovilla-Brulhart, Diasec) to preserve photos and for the presentation of photos in a museum or gallery environment.&lt;br /&gt;
&lt;br /&gt;
The end product contains mainly three parts:&lt;br /&gt;
&lt;br /&gt;
1. a photo, &lt;br /&gt;
2. 100% clear glue &lt;br /&gt;
3. a 3 mm piece of plexiglass or other acrylic glass.&lt;br /&gt;
&lt;br /&gt;
This protected production technique involves a permanently elastic, smooth fusion of paper print and acrylic glass. By using a special adhesive, an airtight bond is created with no air bubbles, fixing the print with its front side to the back of UV-resistant acrylic glass. &lt;br /&gt;
&lt;br /&gt;
When light penetrates the layer of acrylic glass, the light reflection on the print&apos;s surface is completely different from the effect when a print is framed with a passe-partout and ordinary glass. With this unique production method the diffusion of light diminishes because of the homogenous quality of acrylic glass. &lt;br /&gt;
&lt;br /&gt;
As a result the colours seem sharper, more brilliant, more intense and more immediate.&lt;br /&gt;
&lt;br /&gt;
(You can compare this production technique with Diasec, we learned the job by them.)&lt;br /&gt;
&lt;br /&gt;
&lt;p align=center&gt;&lt;im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62/007/diasec_2.jpg&quot; align=&quot;center&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07&quot; border=&quot;1&quot; alt=&quot;diasec_2.jpg&quot; /&gt;&lt;/p&gt;&lt;br /&gt;
&lt;br /&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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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영화감독 王家衛</title>
      <id>http://www.jinyoungpark.com/7460</id>
      <published>2005-01-27T14:22:05P</published>
      <updated>2008-08-14T00:04:12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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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align=center&gt;&lt;IMG alt=&quot;&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60/007/wndhsl85_5_copy.jpg&quot; border=0&gt;&lt;/P&gt;&lt;BR&gt;&lt;BR&gt;&lt;A onclick=&quot;window.open(this.href);return false;&quot; href=&quot;http://www.wongkarwai.net&quot;&gt;http://www.wongkarwai.net&lt;/A&gt;&lt;BR&gt;&lt;BR&gt;&amp;lt;BIOGRAPHY&amp;gt;&lt;BR&gt;1958년 중국 상하이 출생. 5세때 홍콩으로 이주. 홍콩 Poly Technic Univ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였다. 대학졸업후 TVB방송국의 드라마 제작 교육 코스를 수료, 연출 보조를 맡으며 대본을 쓰기 시작하였다. 1982년 방송국을 떠나 다른 작가들과 공동으로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1987년이 되어서야 담가명 감독의 &apos;최후승리&apos;와 &apos;강호용호투&apos; 등 많은 시나리오를 완성한다. 1988년 &apos;몽콕하문&apos;로 감독 데뷔한 그는 이 한편의 영화로 홍콩의 뉴웨이브 신예 감독으로 부상 시작했다. 국내에서 &apos;열혈남아&apos;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이 작품은 홍콩의 영화제 비평가 영화 주간부 비평가 부문에 선정되었고, 이후 베를린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아 세계 영화 평론가들에게 주목받게 된다.&lt;BR&gt;&lt;BR&gt;&amp;lt;FIMOGRAPHY&amp;gt;&lt;BR&gt;연출&lt;BR&gt;열혈남아 (旺角下門 : As Tears Go By, 1988)&amp;nbsp;&amp;nbsp; &lt;BR&gt;아비정전 (Days of Being Wild, 1991)&amp;nbsp;&amp;nbsp; &lt;BR&gt;중경삼림 (Chungking Express, 1994)&amp;nbsp;&amp;nbsp; &lt;BR&gt;동사서독 (ashes of time, 1994)&amp;nbsp;&amp;nbsp;&lt;BR&gt;타락천사 (1995)&amp;nbsp;&amp;nbsp; &lt;BR&gt;해피 투게더 (Happy Together, 1997) &lt;BR&gt;화양연화 (In the Mood for Love, 2000)&amp;nbsp;&amp;nbsp;&lt;BR&gt;에로스 (Eros, 2004) &lt;BR&gt;2046 (2046, 2004) &lt;BR&gt;&lt;BR&gt;각본&lt;BR&gt;신조협려 (1991)&amp;nbsp;&amp;nbsp; &lt;BR&gt;중경삼림 (Chungking Express, 1994)&amp;nbsp;&amp;nbsp; &lt;BR&gt;화양연화 (In the Mood for Love, 2000)&amp;nbsp;&amp;nbsp; &lt;BR&gt;에로스 (Eros, 2004)&amp;nbsp;&amp;nbsp; &lt;BR&gt;2046 (2046, 2004)&lt;BR&gt;&lt;BR&gt;제작&lt;BR&gt;첫사랑 (First Love: The Litter on the Breeze, 1997)&lt;BR&gt;2046 (2046, 2004)&lt;BR&gt;&lt;BR&gt;&amp;lt;PRIZE&amp;gt;&lt;BR&gt;最後勝利(1987)&lt;BR&gt;1988년 홍콩금상장영화제 최우수 각본상 노미네이트&lt;BR&gt;旺角하門(1988)&lt;BR&gt;1989년 깐느영화제 비평가주간 부문 선정작&lt;BR&gt;1989년 홍콩금상장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노미네이트&lt;BR&gt;阿飛正傳(1991)&lt;BR&gt;1991년 홍콩금상장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작품상, 남우주연상(장국영) 수상1991년 홍콩금상장영화제 최우수 각본상 노미네이트&lt;BR&gt;重慶森林(1994)&lt;BR&gt;1995년 홍콩금상장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작품상, 남우주연상(양조위), &lt;BR&gt;편집상 수상&lt;BR&gt;1995년 홍콩금상장영화제 최우수 각본상 노미네이트&lt;BR&gt;1994년 대만금마장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lt;BR&gt;1997년 Independent Spirit Award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노미네이트&lt;BR&gt;1994년 Locarn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Golden Leopard 노미네이트&lt;BR&gt;1994년 Stockholm Film Festival 여우주연상 수상 &lt;BR&gt;東邪錫(1994)&lt;BR&gt;베를린 영화제 출품&lt;BR&gt;1995년 홍콩금상장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각본상 노미네이트&lt;BR&gt;1995년 홍콩금상장영화제 촬영상, 의상상, 미술상 수상&lt;BR&gt;1995년 홍콩비평가주간 최우수 감독상, 각본상 수상&lt;BR&gt;墮落天使(1995)&lt;BR&gt;1996년 홍콩금상장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노미네이트&lt;BR&gt;1996년 홍콩금상장영화제 촬영상, 영화음악상, 여우조연상(막문위) 수상&lt;BR&gt;1995년 캐나다토론토영화제 특별 상영작&lt;BR&gt;春光乍洩(1997)&lt;BR&gt;1997년 깐느영화제 감독상 수상&lt;BR&gt;1997년 대만금마장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노미네이트&lt;BR&gt;1998년 홍콩금상장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미술상 노미네이트&lt;BR&gt;1998년 Independent Spirit Award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노미네이트&lt;BR&gt;花樣年華(2000)&lt;BR&gt;2000년 깐느영화제 남우주연상(양조위), 촬영상 수상&lt;BR&gt;2000 대만금마장영화제 여우주연상(장만옥), 촬영상, 디자인상 수상&lt;BR&gt;2000 Europe Academy Film Awards 최우수외국어영화상 수상&lt;BR&gt;&lt;BR&gt;&lt;BR&gt;&amp;lt;INTERVIEW&amp;gt;&lt;BR&gt;&amp;nbsp;&amp;nbsp;왕가위 자신의 말을 빌자면 그는 자신의 영화 속 등장인물들과는 다르다고 단언한다. 고독하고 불안정하고 사랑에 버림받은 현대 도시의 젊은이들을 많이 그려왔지만 자신은 쾌활하고 유머감각이 뛰어나며 선글라스 뒤에 가려진 두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거린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외롭지만 그는 &quot;나는 외로운 사람은 아니며 단지 재미없는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영화를 만든다&quot;고 말한다. 19살때 만나 오랫동안 연애한 여자와 7년전 결혼, 아들 하나를 두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그는 인생에서 외로웠을 때가 두번 정도 있었다고 한다.&lt;BR&gt;&lt;BR&gt;&amp;nbsp;&amp;nbsp;첫 외로움의 경험은 5살때 홍콩으로 이주하면서 겪은 낯선 도 시의 삶이었다. 상해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가 자신만을 데리고 홍콩으로 온 후 문화혁명 때문에 국경이 막혀 형과 누나와 헤어져 살았다. 광동어를 모르던 그는 낯선 홍콩에서 외로움을 느꼈으며 당시 BBC 라디오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시그널뮤직을 벗삼아 외로움을 달랠 수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다음 외로웠다고 느낀 적은 &amp;lt;중경삼림&amp;gt;과 &amp;lt;타락천사&amp;gt;를 촬영할 때. 아내가 아이 때문에 미국에 가있어 혼자 호텔생활을 했다.&lt;BR&gt;&lt;BR&gt;&amp;nbsp;&amp;nbsp;&amp;lt;중경삼림&amp;gt;에 나오는 호텔방이 바로 자신이 묵었던 호텔방과 똑같은 곳이라고 한다. 그와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왕가위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매니어였고 독서광이었으며 음악애호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영화속에 등장하는 많은 장소들이 실제로 그의 생활과 연관된 곳이 많다는 것도 느낄 수 있다.&amp;nbsp;&amp;nbsp;그는 많은 선배예술가들의 작품을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흡수했고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 면서부터는 그 물을 자신의 독특한 감수성으로 채색해 시각화하고 영상화해왔다.&lt;BR&gt;&lt;BR&gt;&amp;nbsp;&amp;nbsp;왕가위는 &quot;홍콩에 이주한 아버지는 나이트클럽 매니저로 일하셨다. 이 나이트클럽은 &amp;lt;중경삼림&amp;gt;에 나오는 중경빌딩 지하에 있었다. 어머니는 영화광이어서 어머니를 따라 어렸을 때부터 하루에 두세편씩 영화를 보았다. 아버지는 또 문학책들을 열심히 사모았기 때문에 많은 책들을 읽을 수 있었다&quot;면서 &quot;젊었을 때는 한때 방 탕한 생활을 하기도 해 영화속에 등장하는 뒷골목의 술집들을 많이 다녔다&quot;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의 첫작품 &amp;lt;열혈남아&amp;gt;는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amp;lt;비열한 거리&amp;gt;를 떠올리게 하고 두번째 작품 &amp;lt;아비정전&amp;gt;을 본 사 람들 중엔 마누엘 피그의 『하트브레이크탱고』란 소설을 얘기하기도 한다.&lt;BR&gt;&lt;BR&gt;&amp;nbsp;&amp;nbsp;&amp;lt;중경삼림&amp;gt;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우리나라 번역제목은 『상실의 시대』)와 비슷한 정서를 보여주며 &amp;lt;동사서독&amp;gt;은 무협작가 김용의 소설 주인공들을 그린 것이다. 하지만 왕가위는 자신이 체득한 양분들은 독특한 감수성과 영상미로 끌어내는 재주가 있다. 그 자신도 &quot;영화는 나에게 아름다운 추억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많은 영화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 아름다운 추억들을 영상으로 끌어내고 싶다&quot;고 말한다.&lt;BR&gt;&lt;BR&gt;&amp;nbsp;&amp;nbsp;하지만 그는 자신의 영화들이 외로움과 절망을 그리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단호히 &quot;그렇지 않다&quot;고 항변한다. 자신은 외로움을 딛고선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이번 첫 방한의 목적이기도 한 신작 &amp;lt;타락천사&amp;gt;(23일)를 예 로 들면서 그는 &quot;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 메시지가 담겨 있다 냉정한 현대사회에서 두 남녀가 따스함을 느끼고 그 따스함을 찾아가는 이야기다&quot;고 말한다. 그는 그래도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영화 속 주인공들의 외로움, 허무주의등에 공감한다는 사실을 우리나라의 정치적인 상황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점에 대해서는 &quot;외로움과 방황,허무주의는 젊은이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정서다. 하지만 하루키의 소설 이나 내 작품은 그래도 삶은 계속되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고 말했다.&lt;BR&gt;&lt;BR&gt;&amp;nbsp;&amp;nbsp;그는 또 &quot;&amp;lt;중경삼림&amp;gt;이나 &amp;lt;타락천사&amp;gt;는 대도시에 사는 젊은이 이야기다. 세계는 점점 좁아져서 모든 도시가 비슷해지고 있다. 어딜 가나 맥도널드 햄버거가게가 있고 편의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홍콩이야기라도 서울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느낄 수있다고 생각한다&quot;고 덧붙인다. 그는 좋아하는 감독이나 자신에게 영향을 준 선배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quot;내겐 영화 그 자체가 스승이다.어려서부터 영화를 많이 봤기 때문에 내 영화속에는 부분부분 많은 선배들의 영향이 담겨있기 때문에 딱히 누구를 짚으라는 것은 불공평하다&quot;고 대답 한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그는 자신의 두번째 작품 &amp;lt;아비정전&amp;gt;을 이야기하면서 &amp;lt;열혈남아&amp;gt;가 좋은 평을 얻어 많은 제작자들이 제작을 의뢰했 는 데 &amp;lt;아비정전&amp;gt;의 흥행실패로 제의가 일제히 없어졌다&quot;고 웃으면서 &amp;lt;아비정전&amp;gt;은 어렸을 적의 외로웠던 기억들을 되살리기 위해 60년대를 설정해 만들었다&quot;며 &quot;속편을 만드는 것은 나의 꿈이지만 여러가지 여건이 어렵다.&lt;BR&gt;&lt;BR&gt;&amp;nbsp;&amp;nbsp;배우들의 개런티가 너무 높아졌고 또 홍콩이 많이 변화하기 때문에 당시 촬영했던 장소들이 지금은 없어져 세트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 돈도 만만찮다&quot;고 덧붙였다. &amp;lt;동사서독&amp;gt;에 대해서는 &quot;나는 김용의 무협소설에서 동사 와 서독이란 인물만 따왔다. 나는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두 인물 이 과연 젊었을 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에 매우 호기심이 일었고 그래서 그것을 작품으로 만들어보았다&quot;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quot;왕가위 현상&quot;에 대해 무척 놀라면서 &quot;내 영화가 왜 한국젊은이들을 사로잡는지 알아보려 왔다&quot; 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으며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본 &amp;lt;양귀비&amp;gt;란 영화가 한국영화에 대한 유일한 경험이라고 털어 놓는다. 독특한 영상미로 젊은 감각을 보여주는 그는 &quot;나는 촬 영할 때 완벽한 시나리오로 출발하지 않는다. 촬영도 그때그때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찍는다&quot;고 말했다. 젊은이들을 사로잡는 왕가위. 그는 스스로를 젊다고 생각한다.&lt;BR&gt;&lt;BR&gt;&amp;nbsp;&amp;nbsp;그는 &quot;어렸을 때는 30세가 넘으면 이미 늙은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40이 가까워오는데도 나는 여전히 젊다고 느낀다. 항상 젊음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요즘의 진짜 젊은 세대가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하는지는 잘 모르겠다&quot;고 말한다. 기성세대가 되기를 거부하는 영원한 &quot;철부지&quot; 왕가위. 그가 영원히 젊은이의 문제를 그릴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냐는 질문에 &quot;공포영화와 SF(공상과학)영화를 하고 싶다&quot;고 선뜻 대답했다. 왕가위와 왕가위영화가 어떻게 나이를 먹어갈지 지켜볼 일이다.&amp;nbsp;&amp;nbsp;&lt;BR&gt;&lt;BR&gt;&lt;BR&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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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진가 Diane Arbus</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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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5-01-27T13:37:51P</published>
      <updated>2008-08-14T00:03:46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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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align=center&gt;&lt;IMG alt=&quot;&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56/007/arbcopy.jpg&quot; border=0&gt;&lt;/P&gt;&lt;BR&gt;&lt;BR&gt;&lt;A onclick=&quot;window.open(this.href);return false;&quot; href=&quot;http://www.temple.edu/photo/photographers/arbus/arbus.htm&quot;&gt;http://www.temple.edu/photo/photographers/arbus/arbus.htm&lt;/A&gt;&lt;BR&gt;&lt;BR&gt;&amp;lt;PROFILE&amp;gt;&lt;BR&gt;1923 Born Diane Nemerov in NYC. &lt;BR&gt;1937 Meets Allan Arbus, future husband. &lt;BR&gt;1941 Marries Allan Arbus. Allan begins to teach Diane photography. &lt;BR&gt;1955-57 Began Studying Photography with Lisette Model. Separated from Allan Arbus. &lt;BR&gt;1960 First Published in &quot;Esquire&quot; &lt;BR&gt;1962 Switched from 35mm to Square format &lt;BR&gt;1963 Recieved Guggenheim Fellowship.&amp;nbsp;&amp;nbsp;First Time Arbus photographed a nudist camp. &lt;BR&gt;1964 Arbus&apos; first exhibit at Museum of Modern Art. &lt;BR&gt;1965-66 Taught at Parsons School of Design, NY &lt;BR&gt;1966 Recieved second Guggenheim Fellowship. &lt;BR&gt;1967 Work Exibited as part of New Documents, the Museum of Modern Art&apos;s influential exhibition about the &quot;new social landscape&quot; of the 1960s.&amp;nbsp;&amp;nbsp;&lt;BR&gt;1968-69 Taught at Cooper Union in NY &lt;BR&gt;1969 Divorced Allan Arbus. &lt;BR&gt;1970-71 Taught at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lt;BR&gt;1971 Committed Suicide &lt;BR&gt;1972 First American Photographer to be honored at Venice Biennale Diane Arbus: An Aperture Monograph first published &lt;BR&gt;1984 Diane Arbus, Magazine Work published &lt;BR&gt;&lt;BR&gt;1923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미국 뉴욕 태생 &lt;BR&gt;1941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18살에 사진가 앨런 아버스(Allan Arbus)와 결혼 &lt;BR&gt;1955년~57년 리제트 모델에게 사진을 사사받음 &lt;BR&gt;1962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앨런 아버스와 이혼 &lt;BR&gt;1965년~66년 파슨즈 디자인 스쿨(Parson&apos;s Design School)에서 사진강의 &lt;BR&gt;1968년~69년 쿠퍼 유니언 스쿨(Cooper Union School)에서 사진강의 &lt;BR&gt;1967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뉴욕 현대미술관이 기획한 『뉴 다큐멘트전 New Documents』참가 &lt;BR&gt;1971년&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손목 끊고 자살 &lt;BR&gt;&lt;BR&gt;&lt;BR&gt;&amp;lt;INTERVIEW&amp;gt;&lt;BR&gt;&quot; 예전에 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웨딩 케이크와 같이 새하얗고 현란한 큐피드 모양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로코코 풍의 배에 내가 타고 있었습니다.실내에는 연기가 자욱하게 끼고,승객들은 술을 마시면서 도박을 하고 있었습니다. 배는 화재로 천천히 침몰해 가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쾌활하게 노래하고 춤추고, 키스하며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희망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굉장히 흥분하고 있었습니다. 찍고 싶은 것은 그 무엇이라도 찍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quot;(1971년 4월 1일)&lt;BR&gt;&lt;BR&gt;&quot;기형사진이야말로 내가 가장 많이 찍은 것이다.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사진을 찍은 대상중의 하나로서 내게는 지독히 흥분된 일이었다. 나는 그들을 숭배하곤 했었다. 나는 아직도 그들중 몇몇을 좋아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그들은 수취심과 경외심을 합쳐놓은 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가던길을 멈추고 수수께끼에 답을 요구하는 동화 속의 인물처럼 기형인들에 대해서 특징적인 전설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끔찍한 고통을 당한뒤 심한 정신적 상처를 입게 된다. 기형인들은 이미 이러한 인생의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삶을 초월한 고귀한 사람들인 것이다.&quot;&lt;BR&gt;&lt;BR&gt;&lt;BR&gt;&amp;lt;CRETIC_1&amp;gt;&lt;BR&gt;&amp;nbsp;&amp;nbsp;다이안 아버스는 1923년 3월 14일 뉴욕 5번가에서 백화점을 경영하는 부유한 유태인 가문의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개성이 강했던 그녀는 에디컬 컬처 스쿨(Ethical Culture School)과 필드스톤 스쿨(Fieldstone School)를 거쳐, 41년 열여덟의 어린 나이에 사진가인 앨런 아버스(Allan Arbus)와 결혼했다. 사진계로 들어선 것은 남편의 영향에 의한 것이었다. 4년 동안의 교재 끝에 결혼생활을 시작한 그들은 광고에 눈을 돌려 패션사진가로 15년 가까이 &apos;하퍼스 바자(Harper&apos;s Bazaar)&apos;를 비롯한 일류 패션지를 통해서 사진활동을 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로 패션사진에 대한 회의와 싫증을 느끼게 된 그녀는 55년에서 57년까지 리제트 모델에게 사진을 사사(師事)받고부터 자기 사진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lt;BR&gt;&amp;nbsp;&amp;nbsp;개인적인 내면의 표현충동에 의한 사진을 찍기로 작정한 그녀는, 패션사진과 완전히 손을 끊고 어려서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던 비정상적인 기인(奇人)들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자기 사진의 변신을 결행한 그녀는 철저한 자기발전과 자아회복을 다짐하면서, 서른아홉 살 나던 62년 강렬한 개성 때문에 마찰이 잦았던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청산하였다. &lt;BR&gt;&amp;nbsp;&amp;nbsp;순수한 사진활동은 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특이한 인간들에 대한 관심과 독특한 개성은 곧 부각되어 사진계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한편 그녀는 63년과 66년에는 구겐하임 재단의 예술기금을 받게 되었고, 65년에서 66년까지 파슨즈 디자인 스쿨(Parson&apos;s Design School)에서 68년에서 69년까지는 쿠퍼 유니언 스쿨(Cooper Union School)에서 사진을 가르쳤다. 거의 10년 동안 비정상적인 인간에 대한 집중적인 작업을 일관되게 추구한 다이안 아버스는, 71년 7월 28일 주체할 수 없는 불안감과 감정의 격렬한 소용돌이에 휘말려 스스로 손목의 동맥을 끊고 자살하였다.&lt;BR&gt;&amp;nbsp;&amp;nbsp;그녀의 작품활동은 비평가나 젊은 사진가들 사이에서 일찍부터 주목받고 있었으나 전람회에 선보인 것은 단지 세 번 밖에 없었고, 그것도 다른 사진가들과의 합동전이었다. 1972년 11월 뉴욕 현대미술관은 그녀의 업적을 정리하기 위해 125점의 작품을 모아 추모전을 열었는데, 석 달 동안에 25만명이라는 엄청난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이것은 &apos;인간가족전&apos;을 훨씬 웃도는 숫자였으며, 그 후 미국은 물론 캐나다, 서유럽,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에 순회 전시되어 세계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lt;BR&gt;&amp;nbsp;&amp;nbsp;그녀의 사진은 죽기 전인 67년 뉴욕 현대미술관이 기획한 리 프리들랜더 및 개리 위노그랜드와의 3인 합동전인 &apos;뉴 다큐멘트전(New Documents)&apos;에서 이미 크게 평가되었고, 그 후 미국이나 유럽의 여러 미술관에서 영구보존을 위해 수집되었다. 죽은 후에도 72년 미국의 사진가로는 처음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청출품되어 크게 호평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사진가로서 다이안 아버스만큼 짧은 시일 안에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은 사진가는 드물다. &lt;BR&gt;&amp;nbsp;&amp;nbsp;그것은 그녀가 다큐멘터리 사진의 전통을 이어받아 이것을 다시 새롭고 독특한 스타일로 승화시킴으로써 역사적인 이정표를 세웠기 때문이다. 그녀의 사진은 종래의 다큐멘터리 사진의 개념을 적용하기에는 접근방법이 너무나 주관적이고 또한 개성적이다. 그러나 동원된 표현기법은 지극히 단순하며 고루하리만큼 전통적인 기록성을 고수하고 있다. &lt;BR&gt;초기에는 소형 카메라를 사용하다가 62년부터는 전적으로 6x6판 필름 규격의 카메라를 사용하였다 촬영수법이나 현상 및 인화처리도 감광재료회사가 처방한 지시를 그대로 답습하였다. 그래서 그녀의 사진은 거의 모두가 평범하고 일반적인 기록수법으로 처리되었다. 대상의 접근방법도 기념사진적인 정공법으로, 지극히 도식적인 것이었다. 기술상의 사진 처리방법은 단조롭고 일반적이며, 특이한 표현기법이나 접근방식은 전혀 동원되어 있지 않다. 기법상의 특징을 들자면 실내의 어두운 곳에서 플래시를 터뜨려 찍는 정도이다. &lt;BR&gt;표현기법이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것과는 반대로 사진에 등장하는 주제는 모두가 금기시해 왔던 불구자, 난장이, 기인 등 비정상인들이었다. 정상인들의 생활 속에서 밀려나 있는 예외적인 인간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인간의 중심권에 끌어들였다. 그녀의 사진 주제는 하나같이 이러한 인물들이었으며, 거의 10년 동안을 오직 이들만을 파고들었다. 그녀의 사진집을 펼치면 많은 비정상인들이 우리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그녀의 주제는 특이하나 사진적 처리수법은 지극히 일반적인데, 그 속에 담긴 표현내용은 어느 사진가도 따를 수 없을 만큼 심오한 것이다. &lt;BR&gt;다이안 아버스의 사진세계를 이루고 있는 핵심은 환상적인 신비주의이다. 그녀의 사진에 담긴 신비주의는 무의식의 심층세계에 억압되어 있는 육욕적인 본능들을 현대미학에서 새롭게 부각된 추미(醜美)라는 독특한 미적 범주로 승화시킨 환상세계이다. 이 신비적 환상세계는 유태인인 그녀의 혈맥 속에 흐르고 있는 유태교의 신비주의를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과 접목시켜 영적인 심성과 육욕적인 본능충동을 하나로 결합시킨 것이다. 그녀의 사진에서는 히브리적인 원죄의식과 프로이드의 이른바 이드(id)가 결합되어 영적인 요소와 육적인 요소가 교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환상적 신비주의의 골자를 이루고 있는 이 두 가지 요소는 단순하고도 적절한 사진의 표현형식과 일치를 이루어 독특한 영상효과를 거두고 있다. &lt;BR&gt;&amp;nbsp;&amp;nbsp;다이안 아버스의 독특한 사진세계는 미국의 사진전통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앞선 세대의 위지와 리제트 모델에게서 이어받은 것이다. 위지는 일생동안 범죄의 세계를 찾아다니며 카인의 후예로서의 인간이 지닌 잔혹성과 어두운 단면을 적나라하게&amp;nbsp;&amp;nbsp;파헤쳤다. 다이안 아버스는 그에게서 대상의 선택과 파악방식을 이어받는다. 한편 리제트 모델은 주로 상처받은 불구자들의 운명적인 고뇌에 관심을 두었던 사진가로 가장 다이안 아버스에게 영향을 끼친 여류 사진가이다. 아버스는 그녀에게서 사진이란 자아발견의 수단이며, 대상에 대한 자아의 반영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스의 가슴깊이 잠든 독특한 개성을 발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lt;BR&gt;이처럼 다이안 아버스의 사진은 독특한 리얼리티를 계승 발전시켜, 그녀가 이룩한 사진세계는 후세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70년대를 대표하는 래리 펑크, 지오프 위닝험, 챤시 헤어등을 비롯한 많은 새로운 사진가들이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그녀의 사진세계에서 여러 가지 영향을 받았다. 이들이 그녀로부터 계승한 것은, 휴머니즘이라는 미명 아래 인간에 대한 탐구가 너무나 관념적이었고, 다큐멘터리 사진의 기록성이 대동소이한 획일성을 면치 못하였다는 반성과 함께, 보다 투철한 리얼리티의 추구와 독자적인 개성의 자각이었다.&lt;BR&gt;&lt;BR&gt;&amp;lt;CRITIC_2&amp;gt;&lt;BR&gt;사람의 눈은 진기한 것, 비정상적인 것, 이질적인 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시선을 붙들고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대상은 사진가들에게 더없이 좋은 소재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이상자나 기형인들 만큼 흥미로운 피사체는 없을 것이다. 다이안 아버스는 프릭스(freaks) 전문 사진가이다. &lt;BR&gt;유명한 패션잡지의 포토저널리스트였던 그녀가 새로운 작업을 위해 찾아다닌 대상들이란 난쟁이이고, 쌍둥이 여자아이들이고, 양성(兩性)인간이고, 서커스단의 선천성 색소결핍증 여인이었으며, 칼을 삼키는 묘기를 부리는 광대였고, 기형의 푸에르토리칸이었다. 그녀의 사진이 걸렸던 한 전시회에서는 경비원이 그 사진 위에 뱉어놓은 침을 제거하기 위해 매일 아침 고생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만큼 아버스의 사진에 감돌고 있는 환영에 겁내고, 경악하고, 혐오한 것이다&lt;BR&gt;그녀의 사진들은 일관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 소재의 독특함을 제외하면, 촬영 기법 자체는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의 기법을 답습하여 매우 평범하고 일반적인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마치 가족끼리 찍은 기념사진처럼 모델은 일상 속에서 지극히 보통의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아버스는 사진에 특이한 표현기법이나 접근방식을 시도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고, 작가 자신의 연출적 표현도 억지로 붙이려 하지 않았다. 활동을 멈추고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모델의 모습은 사진의 진지함과 솔직성을 드러내 보여준다. &lt;BR&gt;피사체와 사진가는 언제나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다. 그녀의 모든 사진은 &apos;찍는 사람의 존재&apos;를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아버스는 항상 자신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사진에 표현하려는 것이다. 찍는 자의 주체를 지워 없애버리려고 하지 않고, 자신이 그들의 신체를 통해 세계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표시를 남기려고 노력해왔던 것이다.&lt;BR&gt;다이안 아버스는 부유한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사진작가였던 남편과 함께 패션사진업계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나 30대 후반부터 일을 그만 두고 여류사진작가 리제트 모델(Lisette Model)을 만나 2년간 사진을 배운다. 그때부터 그녀는 자신의 사진에 확신을 갖게 되고 1967년 뉴욕에서 열린 &apos;뉴 다큐멘트&apos; 전시회에 참가하면서 새로운 사진가로서 주목받기 시작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남편과 이혼하고 결국 뉴욕에 있는 아파트의 화장실에서 손목을 그은 채로 발견된다. &lt;BR&gt;다이안 아버스가 주로 작업했던 시기인 60년대는 미국 문화사상 전례가 없는 격동기였고 모든 가치가 급격하게 전도되어버린 변혁기였다. 베트남 전쟁이라는 수렁에 빠져들어가면서 젊은이들은 폭력과 인간소외가 뿌리 박힌 미국의 체제에 강력히 반발했다. 60년대는 모든 개념을 뒤집고, 창조하려고 노력하던 시기였다. 다이안 아버스의 궤적은 그 시대의 가장 첨단을 달리는 흐름에 동조하는 것이었다. &lt;BR&gt;다이안 아버스의 유작 『언타이틀드(Untitled)』시리즈 안에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다. 병원 마당에서 체조(?)를 하는 장면, 가면극 분장을 한 채 쭈그리고 앉아 있는 장면, 그들은 이를 드러내고 웃고, 소리지르고, 수수께끼 같은 우울한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그러나 그 표정이나 몸짓은 어떤 것도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찔할 정도로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듯이 보인다. 건너편에서 온 그들의 시선은 이쪽에서 바라보는 감상자의 정신을 관통할만한 기묘한 충격력을 갖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그들이 영혼의 원형을 스트레이트 하게 보여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내부감정과 표정을 따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얼굴로 웃고 마음으로 울지 못한다. 그들은 감정의 폭풍에 쉽게 노출되며 그것이 전 존재를 규정해버린다. 그 가식 없는 영혼의 원형, 스스로를 물어뜯고 찢어버릴 듯한 과도한 절박함이야말로 프릭스 사진이 가진 기묘한 힘의 원천임에 틀림없다. 물론 우리에게도 이러한 슬픔과 기쁨, 공포가 존재하지만 그것들을 원형 그대로 내보이기에 우리는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다. 가면을 벗어도 그 밑에 또 다른 가면이 있는 마치 양파껍질 같은 심리적 메커니즘을 떠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만약 그 메커니즘을 성급하게 끊어버리려 한다면, 아버스와 마찬가지로 죽음의 유혹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lt;BR&gt;&lt;BR&gt;&lt;BR&gt;&amp;lt;PHOTOGRAPHY&amp;gt;&lt;BR&gt;&lt;BR&gt;&lt;IMG height=409 alt=&quot;ar06 copy.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56/007/ar06 copy.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Identical twins, Roselle, N.J., 1967&lt;BR&gt;&lt;BR&gt;&lt;BR&gt;&lt;IMG height=288 alt=&quot;Stanley Kubrick - The Shining_004 copy.jpg&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56/007/Stanley Kubrick - The Shining_004 copy.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Stanley Kubrick&amp;nbsp;&amp;nbsp;&amp;lt;The Shining&amp;gt;&lt;BR&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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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진가 Andreas Gursky</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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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5-01-26T15:19:33P</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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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align=center&gt;&lt;IMG alt=&quot;&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51/007/fi3_2_4_copy.jpg&quot; border=0&gt;&lt;/P&gt;&lt;BR&gt;&lt;BR&gt;&lt;A onclick=&quot;window.open(this.href);return false;&quot; href=&quot;http://www.artfacts.net/index.php/pageType/artistInfo/artist/1836&quot;&gt;http://www.artfacts.net/index.php/pageType/artistInfo/artist/1836&lt;/A&gt;&lt;A onclick=&quot;window.open(this.href);return false;&quot; href=&quot;http://www.artnet.com/ag/fineartthumbnails.asp?aid=7580&quot;&gt;http://www.artnet.com/ag/fineartthumbnails.asp?aid=7580&lt;/A&gt;&lt;BR&gt;&lt;BR&gt;&amp;lt;BIOGRAPHY_1&amp;gt;&lt;BR&gt;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사진세계&lt;BR&gt;&lt;BR&gt;다큐멘터리 사진의 방향이 전래의 사건의 서술에서 상황의 서술로 방향을 옮긴 데는 일단 두 가지 시대적 상황이 존재한다. 하나는 사건을 서술함에 있어 T.V와 경쟁이 안된다는 매체의 한계성이며, 다른 하나는 표현을 넘어선 복잡한 사회적 인과성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오늘날 하나의 사회적 사건은 여러 가지 복잡한 사회적 상황과 난마처럼 얽혀 있기 때문에 과거의 다큐멘터리 접근방법으로는 명료하고 뚜렸한 인과성을 끄집어 낼 수 없다는 뜻이다. &lt;BR&gt;&lt;BR&gt;최근에 개봉된 영화 [컨스피러시(Conspiracy)]를 예로 들어보자면, 오늘날 하나의 사건과 사고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복잡한 인과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아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quot;오늘날 지구상에 발생하는 모든 사건과 사고 뒤에는 모종의 음모가 있다.&quot;고 정의내리고 있는데, 우리 시대의 사건과 사고는 물론이고, 우리의 삶의 조건과 환경도 자연스럽게 규정지어진 것이 아니라 추적해 들어가면 그렇게 되도록 누군가가 음모를 꾸몄거나 혹은 이해당사자들이 공모하여 결정지워진 일로 결론짓고 있다. 영화가 &apos;공모이론&apos;이라는 다소 허황된 논리를 전개하고 있지만 결코 비현실적인 얘기를 돌릴 수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이러한 공모이론을 적용시킬 사례가 넘치기 때문이다. 정치에서부터 문화에 이르기까지, 고속전철 건설에서부터 마을앞 신작로에 이르기까지, 국풍 81에서 프로야구까지, IMF에서부터 박세리 골프우승까지, 사건과 사고 뒤에는 누군가의 음모(혹은 필연적인 인과성) 내지는 공모에 의해 저질러 진 결과물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lt;BR&gt;&lt;BR&gt;&amp;nbsp;&amp;nbsp;&apos;공모이론&apos;까지는 아니지만 다큐멘터리 사진이 사건에서 상황으로 전환해 간다는 말은 사진의 소재가 인과성이 분명한 사건에서 불분명한 사회적 상황으로 바뀌어감을 말한다. 예컨데 종래의 다큐멘터리 사진이 확실한 소재, 뚜렸한 사건과 연계된 실질적 주제를 찾았던 데 반해, 현재 전개되고 있는 뉴 다큐멘터리 사진은 사건의 직접적인 인과성보다는 오히려 사건이 일어나도록 공모하고 원격조정한 얼굴 없는 사회적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매그넘 회원인 영국의 마틴 파(Martin Parr)의 사진 [하루여행]과 [작은세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듯이 순수 사진과 다큐멘터리 사진간의 모호한 경계는 이처럼 다큐멘터리 사진이 실재적 사건에서 비실재적 상황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이며, 이러한 결과가 이제까지 사건보다는 사회적 상황을 자의적으로 표현했던 순수 사진과의 정체성 문제를 야기시킨 것이다. &lt;BR&gt;&lt;BR&gt;독일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의 배허부부(Bernd &amp;amp; Hilla Becher)는 독일사진의 전통을 부활시킨 사람으로 얘기되고 있다. 배허부부는 독일의 사진가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가 20세기 초반에 전개했던 인물의 정형성을 &quot;유형학적 사진&quot;이란 이름으로 현대에 맞게 재구성했는데,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크게 미쳤다. 배허부부가 재구성한 유형학적 사진은 분명 다큐멘터리 사진인데 그러나 그의 사진을 정통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유는 배허부부의 사진이 비록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긴 해도 다큐멘터리 사진의 소재로서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편견이라는 것쯤은 잔더의 사진과 배허부부의 사진을 연결시킬 때 곧장 드러난다. 먼저 잔더가 1920-30년대에 제작한 포트레이트 사진(예를 들면 [우리시대의 얼굴(Face of Our Time)])을 다큐멘타리 사진의 전형이라고 말하는 데는 사진에 긴 시간성이 있고, 동시대 삶의 모습을 인간의 얼굴을 통해 드러내려 했으며, 또한 거기에는 사진가의 확고한 이데올로기적 해석이 내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lt;BR&gt;&lt;BR&gt;그런데 똑같은 프로세스를 진행한 배허부부의 사진에는 이를 적용시키지 않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잔더의 인물은 배허부부의 용광로 혹은 물탱크이고, 잔더가 드러내려 했던 인물들의 유형성은 배허부부의 용광로 내지는 물탱크의 유형성이며, 잔더의 시대적 이데올로기 또한 배허부부의 사회적 이데올로기와 같다. 그렇다면 양자의 사진을 다르게 규정한 이유는 무언가.&lt;BR&gt;&lt;BR&gt;바로 여기에 [LIFE] 이전, 이후라는 미국적 다큐멘터리 스타일이 관여한다. [라이프] 이전인 잔더의 포트레이트 사진은 미국식의 순수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70년대 배허부부의 &apos;인더스티리얼 사진&apos;은 비록 기록적 요소를 띠었다고는 하나 개념사진의 일환이지 정통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미국 다큐멘터리 사진계의 암묵적인 생각이다. 이처럼 잔더의 인물사진을 정통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받아들이면서 똑같은 개념과 프로세스를 전개했던 배허부부의 유형학적 사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은 배허부부의 사진이 사회적 사건에 대한 인과성의 탐구가 아니라 사회적 기표만을 염두에 둔 개념적 태제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전후 다큐멘터리 사진의 정체성에 대해 미국과 독일이(혹은 유럽이) 분명한 차이를 갖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lt;BR&gt;&lt;BR&gt;그렇다면 이러한 편견이 어떻게 해소되었고, 또 유럽식의 뉴 다큐멘터리 사진(사실 &apos;New&apos;라고도 할 수 없지만)이라는 새로운 모습이 등장하여 일반화되었는가를 알아야 한다. 앞서 언급했던 T.V 문제를 논외로 치자면 그것은 70-80년대의 배허부부와 그들의 다섯 제자들이 만들어 낸 &amp;lt;유형학적 사진&amp;gt;의 강력한 영향력 때문이다. 토마스 루프(Thomas Ruff),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ruth), 악셀 휘테(Axel Hutte), 켄디다 회퍼(Candina Hofer),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sky) 이상 다섯 사진가는 80년대에 들어 미국식의 다큐멘터리 사진 전통을 일소시키는데 선봉에 섰으며, 유럽에서부터 순수 사진과 다큐멘터리 사진간의 경계를 없앤 장본인들이다. 이들 다섯 사람들 중에서 특히 안드레아스 구르스키를 주목하는 사람이 많다. 잔더식의 인물사진을 유형학적으로 추종한 토마스 루프나 악셀 휘태보다도, 또 배허부부의 &apos;인더스티리얼 사진&apos;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는 토마스 스트루스와 켄디다 회퍼의 유형학적 사진보다도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사진을 더 의미 있게 대하는 이유는 그의 사진이 순수 사진과 다큐멘터리 사진간의 경계를 없애야만 하는 미학적 당위성을 명료하게 제공한다고 보기 때문이다.&lt;BR&gt;&lt;BR&gt;배허부부 제자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낯설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rusky, 1955)는 만약 그가 함부르크 전시 때문에 작품집 [Andreas Gursky photographs 1984-1993](1994)을 출간하지 않았다면 그의 사진을 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가는 유럽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에서도 토마스 루프에 버금갈 정도로 잘 알려진 사진가이다. 그는 배허부부의 다른 제자들과 구별된 사진적 컨셉과 시대를 해석하는 독특한 눈을 갖고 있으며, 또 사진적 출발점이 배허부부의 유형학적 사진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어푸로치가 다른 4명의 직계 제자와는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lt;BR&gt;&lt;BR&gt;배허부부의 제자로서 유형학적 오브제를 취하면서도 나름의 독특한 시각을 견지하는 데는 아무래도 배허부부에게 지도받기 전에 먼저 오토 슈타이너트(Otto Steinert)로부터 지도받았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에센을 무대로 활동했던 오토 슈타이너트는 우리에게는 &apos;주관적 사진(Subjective Photograph)&apos;으로 잘 알려진 독일의 사진대가이다. 따라서 구르스키가 오토 슈타이너트로부터 사물에 대한 자유스러운 이해, 접근방법, 그리고 표현성을 길렀다는 것은 충분히 고려될만한 요소이며, 또 그가 오토 슈타이너트로부터 사진적 기록이란 &apos;상황에 대한 주관적 해석&apos;임을 일깨웠다는 사실도 유사한 작업을 추구했던 동료들과 분명한 차이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토 슈타이너트로부터 배운 사물에 대한 이같은 자유로운 자각과 해석은 그가 지난 10년 동안 제작했던 풍경사진에 그대로 나타난다. 그의 풍경사진은 뒤셀도르프 아카데미 특유의 건조하고 메마른 유형학적 스타일을 보이면서도 이면에 오토 슈타이너트의 순수 사진적 요소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lt;BR&gt;&lt;BR&gt;안드레아스 구르스키 사진의 가장 큰 특징은 그가 미술사와 사진사의 텍스트를 크로스 오버(Cross-Over)하는 데 있다. 그는 칼라와 프레임을 중시하는데 칼라는 고전적 화풍의 컨셉을 갖고 있으며, 프레임은 워커 에반스처럼 일반 도시풍경을 넓고 깊게 구축하고 있다. 좀더 얘기하자면, 그는 사회적 상황을 칼라로 찍는데 그가 선택한 칼라는 현실의 칼라가 아니라 신고전주의나 낭만주의 혹은 사실주의 화가(이를테면 크라우드 드렝이나 카스퍼 데이빗 프리드리히 혹은 쿠르베 풍)들이 즐겨 이용했던 색감을 보여주며, 또 그가 우리 시대의 사회, 문화적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풍경의 모습은 마치 워커 에반스의 사진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사회적 오브제, 장식성, 사람들이 중립적인 자세로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미술사와 사진사의 텍스트를 크로스 오버한 그의 사진이 조금씩 조금씩 다큐멘터리 사진의 새로운 힘으로 주목을 끌었던 것은 일차적으로 배허부부의 유형학적 스타일의 국제적 확산과 구르스키의 사진적 방법론이 다큐멘터리 사진의 새로운 전형으로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lt;BR&gt;&lt;BR&gt;영국의 마틴 파와 폴 그래함이 최근 보여준 다큐멘터리 사진의 상황성 역시 구르스키 사진의 상황성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구르스키의 사진을 분석하는 것이야말로 왜 요즘 다큐멘터리 사진이 사건이 아니라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순수 사진과의 경계가 불필요한지를 분명히 알 수 있게 한다. 단서를 추적하기 앞서 먼저 그의 사진적 테제를 살펴보도록 하자. 그의 사진의 테제는 사회를 움직이는 &apos;사회적 조건&apos;이다. 그래서 도시는 그의 주요 소재이며, 대상은 배허직계들의(어쩌면 독일사진의)의 전매특허라고 하는 생산 주체인 산업설비, 건축물, 동력에서부터 소비 주체인 놀이공원, 미술관, 관광지, 음식점, 헬스클럽 등이다.&lt;BR&gt;&lt;BR&gt;안드레아스 구르스키는 동시대의 생산재와 소비재가 무엇 때문에 생산, 소비되고 또 누가 무슨 의도로 그러한 것들을 작동시키는가를 관찰자적 시선으로 접근한다. 마치 마틴 파가 [하루여행]이나 [작은세계]에서 접근했던 방식과 같다. 같은 시각에서 보면 디즈니랜드는 워너브라더스사의 상업적 욕망이며, 그리스 아테네의 망가진 유적지는 그리스 정부 관계자가 관광수입을 위해 방기한 권력의 부산물이다. 하여, 사진에 찍힌 사람들은 더 이상 사건의 주체자로서 중심 인물이 아니다. 인물들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서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나 혹은 인간들의 끝없는 물질적 욕망으로 몰고 가는 그 사회적 상황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lt;BR&gt;&lt;BR&gt;구르스키가 재구성한(Re-location) 사진 중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몇몇 사진들을 예로 들자면 작품 &amp;lt;비행기&amp;gt;(1989), &amp;lt;새해 수영자들&amp;gt;(1988), &amp;lt;살레노&amp;gt;(1990), &amp;lt;몽파르나스&amp;gt;(1993)는 다큐멘터리 시각에 대한 뚜렷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비행기, 공장, 관광지는 유럽사진에서 가장 흔하게 다뤄지는 사진적 대상인데, 생산과 소비의 주체,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여흥의 즐거움과 두려움 그리고 자연적 질서와 그로부터 일탈을 상징한다. 이것들은 구체적인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며, 여기에는 개념적인 색과 유형적 형상이 관여하고 있다. 그가 개념적인 색을 쓰는 이유는 개념적인 색이야말로 마틴 파의 사진에서처럼 시대상황을 해석하는 다큐멘타리 사진의 새로운 인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시각적 충격성만을 노리는 종래의 다큐멘터리 사진의 색채 개념이 아니라(예를 들면 [내셔날 지오그래픽]처럼) 의도된 색을 통해서 사회적, 문화적 상황을 드러내는 면밀한 전략이다. &lt;BR&gt;&lt;BR&gt;구르스키를 정점으로 새롭게 선보이는 유럽의 사진 스타일은 그것이 다큐멘터리 사진인지, 순수 사진인지 프레임을 보아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순수 사진인지 다큐멘터리 사진인지 화면을 보아서는 구별이 불가능할까. 그것은 바로 유럽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종래의 다큐멘터리 카메라 워크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최근 다큐멘터리 사진의 가장 큰 변화는 깊고 넓은 롱샷(long shot) 화면이다. 구르스키야말로 이 새로운 카메라 워크를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데 이 점은 배허부부의 다른 직계들과 어느 정도 차별화를 이룬 부분이다. 유럽에서 유행중인 롱샷 프레임은 먼저 정통 다큐멘터리 사진의 카메라 워크인 클로즈-업에 대한 식상함에서 시작한다. 너무도 오랬동안 전통적 다큐멘터리 사진이 집중성과 충격성 높이기 위해 화면을 압축하고 배경을 무시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거부내지 반발이다. &lt;BR&gt;&lt;BR&gt;미국식의 보도 및 다큐멘터리 사진은 그동안 사람들에게서 삶의 깊고 넓음을 빼앗아 갔다. 사진술의 등장이 인간의 원근감을 왜곡시켰다고는 하지만 보도 및 다큐멘터리 사진은 인간에게 클로즈 업, 좀더 압축된 클로즈업, 그리고 사건을 강조하기 위해 포그라운드를 맹목적으로 제거시킴으로서 관객들로 하여금 공간감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것은 사실이다. 왜 롱샷과 광각이 요즈음 유행인가. 그것은 줌 렌즈에 의한 줌인(Zoom in), 망원렌즈에 의한 클로즈 업에서 원래의 인간적 시각으로 되돌아가려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눈은 아무리 물체를 가까이에서 보아도 공간감을 느낀다. 그러나 대물렌즈가 만들어 낸 사진은 그렇치가 못하다. 단지 크기만 있고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할 뿐이다. 최근 다큐멘터리 사진에 롱샷이 유행하는 것은 우리를 질식시킨 그 대물렌즈의 원근적 폐해에서 벗어나려는 시대적 발현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진평론가 진동선-)&lt;BR&gt;&lt;BR&gt;&lt;BR&gt;&amp;lt;BIOGRAPHY_2&amp;gt;&lt;BR&gt;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sky, 1955)를 정점으로 독일 사진은 점점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독일 사진의 부활, 신 표현주의 사진의 출현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최근 독일 사진의 강력한 대두는 베허스쿨의 뛰어난 작가들의 능력에서 읽혀지지만 좀더 심층적으로 들어가 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 세계 사진을 주도권을 뺏긴 독일 사진의 부활로 이해될 수 있다. 미국 사진이 90년대 들어 중심을 잃고 허둥댔던 것에 비하면, 독일은 통독 이후 유럽공동체 출현, 유로화 출범에 따른 경제의 활성화와, 그에 따른 국가의 예술 진흥책에 힘입어 예전의 힘을 되찾은 것으로 보여진다.&lt;BR&gt;&lt;BR&gt;&amp;nbsp;&amp;nbsp;이런 정황들을 유추하는 사례들은 많다. 최근 독일에서 개최되는 국제전도 그렇고, 독일 작가들이 해외에서 전시할 때도 그러한 상황들을 만날 수 있다. 국가 차원에서 독일이 자국의 작가들을 음으로 양으로 지원하는 여러 사례들을 볼 수가 있는데 사소한 것이지만 가령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토마스 스트루스, 토마스 루프의 경우, 그들 작품의 크기가 엄청난데도 인화에서 프레임까지 전 공정을 독일에서 마무리지어 공수한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 작가들이 감히 엄두도 못낼 이러한 일을 독일 작가들은 인화에서 마무리까지 척척 해낸다. 독일의 제지 공장과 아그파 인화지 그리고 뒤셀도르프 지역의 특수 장비까지 총동원된다고 하니 바로 이것이 보이지 않는 국가 지원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lt;BR&gt;&lt;BR&gt;&amp;nbsp;&amp;nbsp;또 하나, 신 표현주의 사진의 출현도 독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난날 안젤름 키퍼를 비롯 게오르그 바젤리츠, 게르하르트 리히터, 지그마 폴케, AR 펭크가 국가의 전략적인 지원과 전폭적인 국민 성원에 힘입어 세계 미술을 주도했듯이, 안드레아스 구르스키를 축으로 토마스 스트루스, 토마스 루프, 토마스 디맨드, 악셀 휘테, 켄디다 회퍼가 국가와 국민의 지원과 성원에 힘입어 세계 사진을 주도하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온다. 이 두 가지 사안들이 구르스키를 이야기하는데 단초가 될 것이다.&lt;BR&gt;&lt;BR&gt;&amp;nbsp;&amp;nbsp;현대 독일 사진의 뼈대는 유형학적(Typology) 사진이다. 유형학은 멀리 1920년대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에서 시작하여, 30년대 알버트 랭거-파취(Albert Ramger-Patzsch)의 신즉물주의를 거쳐, 60년대 베허부부(Bernd &amp;amp; Hilla Becher)에 의해 양식화된다. 독일 사진의 전통으로 말해지는 유형학적 사진은 예술적 오브제가 아닌, 동시대 사회와 문화를 반영하는 시대의 오브제로서 가치 중립적, 중성적 태도로 대상에 다가서는 것을 말한다. 공업 구조물, 건축물들이 주요 대상이었으며, 일정한 각도에서 도감적 방식으로 찍어 나간 스타일이다. 유형학적 사진은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베허부부에 의해 70년대까지 전개되고, 이후부터는 토마스 루프, 토마스 스트루스와 같은 베허부부의 직계들에 의해 세계적인 스타일로 자리했다. &lt;BR&gt;&lt;BR&gt;&amp;nbsp;&amp;nbsp;구르스키 역시 초기에는 유형학적 스타일을 유지했다. 학생시절의 작품과 80년대 중반에 제작된 작품들을 보면 베허부부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제자들보다 먼저, 그리고 재빨리 유형학적 모습에서 탈피했다. 대신 신속히 회화에 빠져들고, 첨단 디지털 프로세스를 도입하는 등 유형학보다는 신 표현주의에 좀더 다가서는 예술적 자세를 보였다.&amp;nbsp;&amp;nbsp;&lt;BR&gt;&lt;BR&gt;■ 구르스키 사진의 형성 과정&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BR&gt;&amp;nbsp;&amp;nbsp;이러한 가변성과 자율 의지는 그가 다른 직계들과 구별되는 사진적 백그라운드가 있었음을 말한다. 안드레아스 구르스키는 1955년 1월 독일 라이프찌히에서 태어나 곧바로 독일 공업의 심장부인 에센으로 이사했다. 아버지는 유명한 상업사진가였으며, 그의 조부 또한 유명한 초상 사진가였다. 아버지는 사진에 막 눈뜬 아들에게 사진의 장인성을 심어 주었고, 촬영에서 인화까지 어떻게 사진을 마무리해야 올바른 사진적 태도인지를 깨닫게 한 첫 번째 중요한 인물이었다. 구르스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진으로 진로를 결정한 후, 곧바로 에센지역 최고의 사진학교 포크방 스쿨에 입학 그곳에서 독일 사진의 거장 오토 슈타이너트(Otto Steinert)로부터 사진을 배운다. 슈타이너트가 숨을 거두기 직전, 마지막 혼신을 다하는 시기였으며, 그를 만나 구르스키는 제2의 사진 인생을 펼친다.&lt;BR&gt;&lt;BR&gt;&amp;nbsp;&amp;nbsp;3년 동안의 교육 가운데 슈타이너트와 만남은 짧은 것이었으나 포토저널리즘의 시각과 다큐멘터리적인 방법론을 자각함으로써 에센에서의 사진 공부가 그의 사진 세계에 또 다른 눈을 가져다주었다. 구르스키는 그리고 나서 1981년에 저 유명한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 입학, 독일 사진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베허부부(Bernd &amp;amp; Hilla Becher)에게서 사진을 공부하게 된다. 베허부부는 독일 사진의 기수였을 뿐만 아니라 옛 전통을 부흥시키려는 원대한 의지를 담고 있었다. 토마스 루프, 토마스 스트루스, 토마스 디맨드, 악셀 휘태, 켄디다 회퍼 등 장차 독일 사진의 부활의 견인차가 될 사진가들이 제자로 있었고, 구르스키 또한 그들과 함께 독일 사진의 전통과 미학을 공부해 나갔다. &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구르스키의 초기 사진은 베허 스쿨의 사진적 전통을 그대로 답습했다. 전후 독일 공업 사회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차갑게 그려냈으며, 베허부부가 그러했듯이 무개성적이고 비예술적인 오브제를 개념에 입각하여, 그리고 미니멀적인 형식성에 입각하여 단순 명료하게 표현했다. 오브제에 대한 개념적인 사고를 적극 수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구르스키는 1984년 뒤셀도르프 아카데미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베허스쿨의 유형학적 사진에서 일탈하기 시작한다. 공업단지 주변을 배회하기보다는 도심 한 가운데로, 그리고 주거지역 안으로 시선을 돌렸고, 이제까지 배제했던 인간의 모습을 사진 속에 한껏 수용했다. 현대 문화 전반을 통찰하려는 야심에 찬 시선은 대중으로부터 유리되지 않는, 대중과 호흡하는 삶과 환경적 구조를 통해 새로운 리얼리티를 드러내려 했다. 그러나 그가 꿈꾼 새로운 풍경은 추상적 풍경이었다. 추상적 이미지는 필연적으로 개인적인 인간형보다는 집단적인 인간형을 강조했다. 중성적 흑백 톤에서 벗어나 컬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또한 16X20인치 갤러리 사이즈에서 벗어나 인간 크기의 사진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베허스쿨의 중성적 흑백사진으로부터 멀어지는 일도, 또한 사진의 사이즈를 인간 크기로 확대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학습의 필요성을 절감한 구르스키는 회화에 대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한다. 르네상스 회화에서 독일 낭만주의 회화를 거쳐 추상 표현주의에 이르기까지 색과 원근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 &lt;BR&gt;&lt;BR&gt;■ 왜곡된 원근감 그리고 현란한 디지털 프로세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안드레아스 구르스키는 90년대 초반에 들어 풍부한 컬러, 스펙터클한 파노라마, 역동적인 이미지 구축을 시도하면서 점점 자신의 음색을 갖추기 시작했다. 글로벌 아이콘들을 수용하고자 사이즈를 조금 더 키웠으며, 사진의 내용 또한 후기 자본주의 문화 양태에 좀더 밀착해 들어갔다. 그러나 그가 현대 회화의 전략적 스타일을 차용하면 할수록 내재해 있던 다큐멘터리 국면은 살아졌으며, 또한 그가 다양한 구조 인식, 다양한 프레임 구축을 시도하면 할수록 베허스쿨에서 다듬었던 엄격한 형식 구조와 정형화된 프레임이 사려져 갔다. 뿐만 아니라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 문화 일상을 추적하고, 이미지의 충격을 극대화할수록 개인성보다 집단성이, 사적 공간보다 공적 공간이, 고유성보다 익명성이 강조되었다. 현대적 문화 공간을 맴돌수록 실재 리얼리티는 사라지는 대신 그 자리에 하이퍼리얼한 새로운 리얼리티가 나타난 것이다. &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90년대 초, 중반 작품이 여기에 속한다. 1988년 에서 구현된 넓고 깊은 롱샷 이미지가 좀 더 역동적으로 도시 속에서, 도시 외곽에서 깊은 심도, 롱 디스턴스, 파노라마 시각으로 찍혀졌다. 아웃도어 풍경 속에는 아우토반, 패밀리 소풍, 하이킹과 같은 레저 공간에서부터 테마 파크, 산업 현장, 현대식 아파트, 빌딩, 화물 창고 등 후기 산업 사회와 소비 사회의 다양한 공간성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후기 자본주의 삶의 양태는 구르스키에게 알맞은 소재였다. 인간이 배제된 고립된 장소보다는 현대인들의 체취가 밴 도시 문화가 그에게는 더 실질적인 장소로 다가왔다. 이를 위해 그는 유럽 전역은 물론이고 미주 지역, 홍콩, 상하이, 동경 등 아시아 지역에까지 촬영 영역을 확장했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구르스키는 90년대 중반부터 점차 실내 풍경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색감은 더욱 정교해지고 풍부해지며, 작품의 사이즈 또한 커져서 폭2m, 너비 3m에 육박한다. 또한 이 시기의 작품부터 전경과 원경의 퍼스펙티브에 왜곡이 생기고 디테일의 변화가 오며, 사진의 깊이(Depth of Field) 또한 많은 변화가 생긴다. 작품이 커져서 관람자가 뒤로 물러나는 거리만큼 다시 세부를 보고자 앞으로 모여드는 작용들을 계산하여 원근, 디테일, 깊이를 컨트롤했다. 그것들이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1992년부터 적극적으로 도입한 디지털 포토샵 때문이었다. 또 다른 이유라면 소재들이 실내에서 취해졌기 때문에 의도했던 이미지를 위해 디지털 포토샵에 의존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르스키의 90년대 중반 작품은 전적으로 디지털 변형에 의한 이미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때부터는 사진에서 참된 리얼리티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해졌고, 예전의 다큐멘터리 흔적을 찾는 것도 아예 불가능해졌다. 대신 그 자리에 미술의 영역에서 새롭게 세계를 해석하려는 창조적 의지가 자리했다. &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구르스키의 대작은 분명 디지털 포토샵의 힘이 컸지만 그러나 작품이 크다는 것은 그의 사진에서 중요한 부분에 속한다. 작품이 커졌을 때 의도했던 컬러 컨셉과 효과가 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는 대형 카메라를 통해 네거티브를 만들고, 그 네거티브를 스켄하여 정교하게 이미지를 다듬는 다음, 다시 프린트용 네거티브를 만들어 확대 인화한다. 그 결과, 대표작 (1993)처럼 폭 2m, 너비 4m가 넘는 대작이 색감과 세부가 죽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포토샵이 필수적이었던 이유는 거기에 있다. 그는 또 이 시기에 추상 표현주의, 색면 회화에서 컬러, 기하학, 그리고 프레임 엣지(edge)를 공부하기 시작한다. 폴록, 뉴먼, 로드코의 작품을 참고했으며, 인상적인 기하학, 인상적인 컬러는 여기로부터 온 것이다. 9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그의 작품은 더욱 도시의 색, 신비스러운 퍼스펙티브, 그리고 색다른 기하학적 패턴이 등장한다. 전적으로 뛰어난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힘입은 것이다. 살레노의 카도크와 같은 형식주의적 아름다움에서 시작된 이미지 컨셉은 1996년의 &amp;lt;애틀랜타&amp;gt;, 1996년의 &amp;lt;라인강&amp;gt;, 그리고 1997년의 &amp;lt;무제&amp;gt; 시리즈로 연결된다. &lt;BR&gt;&lt;BR&gt;■ MoMA 초대전과 크리스티 옥션 &lt;BR&gt;&lt;BR&gt;2001년 3월 뉴욕 MoMA에서 개최된 &amp;lt;안드레아스 구르스키전&amp;gt;은 분명히, 그리고 확고히 그를 세계 최고의 사진가, 아티스트의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저널과 인터넷에 오르내린 수많은 글들은 당대 최고의 작가의 출현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는 구르스키 자신뿐만 아니라 독일 사진의 부활과 신 표현주의 사진의 출현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구르스키의 MoMA 입성. 그를 초대한 사람은 MoMA의 사진 큐레이터 피터 갤라시(Peter Galassi)였다. 그는 &quot;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창조적 예술가의 한 사람&quot;이라고 평했다. 놀랄 만한 찬사였고, 세계가 그를 주목하도록 한 발언이었다. 역대 모마가, 아니 외국 작가에게 이런 헌사를 한 적이 없었다. 외국 작가에게는 초대 자체가 이례적인 것이고, 더군다나 패전국인 독일 사진가를 초대한 것은 전후에 없었던 일이다. 이 이례적인 사단은 사건의 꼬리를 물게 했다. 두 번째 사건은 작년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나타났다.&lt;BR&gt;&lt;BR&gt;&amp;nbsp;&amp;nbsp;크리스티 경매에서 구르스키의 1993년작 &amp;lt;파리, 몽파르나스&amp;gt;는 사진 경매 사상 최고가인 600,000 달러에 낙찰되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1998년에 작품 &amp;lt;프라다 III&amp;gt;(1998)가 310,500 달러에 낙찰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던 재판이었으며, MoMA 초대전 이후 점증하는 주가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사건이었다. 구르스키의 작품은 금년 2월 런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또 다시 &amp;lt;무제&amp;gt;(1997)가 436,000 파운드에 한국 사람에게 팔리면서 기록 행진을 계속했다. 작품의 평균 에디션이 여섯 점임을 감안하면 가히 사진 작품으로서는 천문학적인 액수이다. 역대 이보다 비싼 사진 작품은 없었으며, 사진이 유명 회화에 버금가는 작품 가격을 갖는데 대해 사진계가 놀라고 미술계도 놀랬다. 물론 뒤에는 구르스키 작품을 둘러싼 치열한 마케팅과 치열한 비즈니스 전략이 있고, 더 깊숙이는 독일 컬렉터들이 작용하고 있었다. 한스 그로퇴 컬렉션(Hans Grothe Collection) 등 독일 컬렉터들은 독일 작가들의 작품을 전략적으로 구입하고 내다 파는 등, 작품 가격을 조정했다. 구르스키 작품이 600,000 달러에 팔려 나간 그날, 베허부부의 작품이 160,000 달러에, 토마스 디맨드의 작품이 99,500 달러에 팔려 나간 것도 한스 그로퇴 컬렉션과 같은 독일 컬렉터들의 힘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lt;BR&gt;&lt;BR&gt;&lt;BR&gt;■ 구르스키에 대한 비판 &lt;BR&gt;&lt;BR&gt;구르스키를 비판하는 사람은 두 가지 부류이다. 하나는 그가 디지털 포토샵을 지나치게 남용함으로써 다큐멘터리 사진의 순수성을 왜곡한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측이고, 다른 하나는 지나친 상업적 마인드, 즉 비즈니스 마인드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하는 측이다. 가장 많이, 가장 빈번히 제기되는 비판은 단연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과도한 구사이다. 1992년부터 이용하기 시작한 디지털 프로세스는 기술이 개발되면 될수록 의존도가 높아 갔다. 대형 카메라로 찍혀진 컬러 네거티브 필름을 더욱 정교하게 스캔하고, 더욱 더 정교하게 이미지 변형시킨 다음 수정된 네거티브를 통해 거대한 크기로 인화한다. 4m에 이르는 대작을 위해서는 첨단 디지털 프로세스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독일 유형학적 사진의 전통, 즉 가치 중립적이고 중성적인 재현 태도와 현실 앞에 섰을 때 베허스쿨의 엄격한 형식주의를 견지해 주길 희망했던 것이다. &lt;BR&gt;&lt;BR&gt;&amp;nbsp;&amp;nbsp;리처드 도맨트(Richard Dorment) 같은 사람은 그의 사진 앞에서 &apos;사진은 아름답지만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apos;라고 했고, 역시 같은 의미에서 야트 메이슨(Wyatt Mason)은 &apos;분명 그의 사진은 아름답고 훌륭하지만 그러나 진정 사진의 아름다움은 트릭을 최소화할 때&apos;라고 비판했다. 비평가 해리 유언(Harry Yuane)이 &apos;작품이 크고, 현란하고, 하이테크적이고, 비싸고, 글로벌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는 공허가 있다&apos;라고 했던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물론 독일 유형학의 변질, 혹은 해체적 징후가 구르스키 사진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토마스 루프, 토마스 스트루스의 사진에도 나타난다. 그들도 흑백에서 컬러로, 그리고 디지털 프로세스를 도입하면서 변질되기 시작했다. 최근 토마스 루프의 작품이 과거보다 못하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는 것도 유형학적 요소들이 사라지고 오히려 구르스키처럼 신표현주의적 경향이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lt;BR&gt;&lt;BR&gt;&amp;nbsp;&amp;nbsp;구르스키에 대한 상업 마인드, 비즈니스 태도에 대한 비판은 작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는데서 나온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스타 작가의 경우는 흔히 미술 시장에서 나도는 말이다. 다만 최근 작품 가격의 단합 시비, 그리고 가격이 뛰자 과거의 작품까지 시장에 내놓는다는 이야기들은 사변적인 것이지만 비판의 여지는 있다. 안드레아스 구르스키를 지켜보는 눈들은 너무도 많다. 국제 미술계가 주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의 주가가 거품인지, 그가 2000년대 대표적 작가로 자리할 것인지, 독일 사진의 화려한 부활을 견인할 것인지, 그리고 자신의 신표현주의적 스타일을 계속해서 견지할 것인지, 그에게 숙제이고 그를 지켜보는 우리 또한 숙제인 것 같다. (-사진평론가 진동선)&lt;BR&gt;&lt;BR&gt;&lt;BR&gt;&amp;lt;BIOGRAPHY_3&amp;gt;&lt;BR&gt;1955년 독일의 라이프찌(Leipzig) 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후에 상업과 문화의 도시 뒤셀도르프(Dusseldorf)로 가족들이 이주하면서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상업 사진 작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이 사진 수업을 쌓은 그는 1980년 뒤셀도르프의 미술 학교에 입학, 기계 공장 지역을 소재로 하는 사진 작업에 심취한다. &lt;BR&gt;&lt;BR&gt;1981부터 7년간 뒤셀도르프 예술아카데미에서 수학한 그는 그곳에서 베허 부부로부터 사진을 배웠고 이를 기초로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확보해 나갔다. 구르스키는 다큐멘터리 사진 계에 큰 변화를 가져온 작가 중의 한 명이다. &lt;BR&gt;&lt;BR&gt;기존의 다큐멘터리가 작가가의 주장을 영상으로 담고 있다면, 구르스키는 철저하게 자신의 주장을 의식적으로 들어내지 않고, 사진을 보는 관계에게 그 의미를 찾도록 중립성을 지키고 있다. 1970년대 미국의 뉴 토포그라픽사진의 성격과 닮아 있는 구르스키의 사진은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이른바 &quot;비개성의 미학론&quot; 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의 초기작업인 대표적인 예로 &quot; 건물을 지키는 사람들 &quot; 시리즈를 들 수 있다. &lt;BR&gt;&lt;BR&gt;그러나 1984년을 기점으로 하여, 상인들, 수영하는 사람들, 뱃사람들 등을 소재로 한 자유로운 소재의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며, 1990년 일본 여행에서 찍은 동경 증권 시장 사진들을 계기로 20세기의 실생활과 밀접한 소재의 사진들이 그의 작품에서 주류를 이루게 된다. 주로 현대도시의 공공장소에 있는 인간군상을 찍는 그의 사진은 개별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도시환경 속에 위치하고 있는 인간의 삶이 모습을 유추할 수 있게 만든다. &lt;BR&gt;&lt;BR&gt;현대 생활을 대표할 수 있는 이미지 (아파트, 대형 빌딩, 공항, 스포츠 축제, 고급 유명 상표 등) 를 찾아서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그는, 동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현대인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quot; 현대&quot; 의 이미지를 사진기라는 냉엄한 눈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렌즈에 의해서 만들어진 그의 사진들이 이상하게도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연출된 사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실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나 따분하고 지루하고 의미 없는 현실의 모습들을 사진으로 찍었기 때문일까? 우리는 어쩌면, 현대의 도시영상을 스펙터클한 구경거리의 모습으로 착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진은 비현실적이다. &lt;BR&gt;&lt;BR&gt;그의 사진을 보면 마치 옵티걸 아트를 대하는 것처럼 시각적인 혼란을 준다.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기하학적인 패턴의 인공물의 풍경을 와이드한 앵글로 잡아내고 있어 그 현실감은 더 확장된다. 그의 사진 속에는 똑 같은 형태의 반복이 무수히 연속적으로 이루어져서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이 마치 정보화 사회의 디지털 화된 인간의 익명성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의 사진이 매우 흥미로운 것은 풍경하면 떠오르는 자연이라는 등식에서 벗어나서 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상의 반복적인 패턴의 사건들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아주 극명하게 보여 준다. &lt;BR&gt;&lt;BR&gt;그러므로 그의 사진은 달력에 나오는 혹은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틱하게 볼 수 있는 그런 류의 풍경은 아닌 것이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판단하고 있는 풍경은 사실 우리가 실재체험 속에서 받아들이는 현실이기 보다는 가상의 공간에 위치하고 있는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생각해 보자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서 우리는 도시 밖을 떠나야 한다. 국립공원의 울타리 안에서 그것도 마음대로 숲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잘 닦여진 정해진 코스의 길에서 벗어 날 수 없다. &lt;BR&gt;&lt;BR&gt;혹시라도 꽃이라도 하나 꺾는 날이면, 자연보호법에 위반되는 일이니, 그 속에서 만지고 호흡하고 체험하는 일은 아니다. 정해진 관광시간이 끝나면, 우리는 다시 도시 속으로 들어와 TV의 영상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자연을 이해하고 관광기념사진을 통해서 향수 할 뿐이다. 그러니까 현대의 대부분도시인의 삶은 인공물로 뒤덮인 기능화 된 환경 속에서 자신도 그 하나의 디지털 화된 신호와 기호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lt;BR&gt;&lt;BR&gt;이러한 현상은 전 지구적인 것이며, 개성 있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 도시는 더욱더 그 영역이 축소되고 있다. 똑 같은 유형의 도시가 반복적으로 패턴화 되고 있다는 말이다. 포스트 모던 건축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은 차라리 숨통이 트인다고 할까!&lt;BR&gt;&lt;BR&gt;구르스키는 베허부부의 유형학적인 사진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유형학은 유사한 형태의 반복을 통해서 개별적인 존재감을 지워버리고 그 대상을 구성하고 있는 어떤 원인적인 분석 그리고 그 대상을 선택하는 작가의 개념적인 동기를 중시하는 철저히 주관적인 요소를 배제하는 독일 현대사진의 한 전형이다. 50년대 이후 오토 슈타이너트의 주관주의 사진의 경향에서 과거 아우구스 잔더의 유형학적인 인물사진의 전통으로의 복귀현상을 보여주는 베허 스쿨의 이념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자율적인 작가의 정신을 투영하는 것으로 보질 않는다. &lt;BR&gt;&lt;BR&gt;작가의 의도와 주관성은 읽혀지지 않고 찍혀진 대상만이 반복적인 패턴으로 놓여있다. 그리고 그 대상들은 마치 수집되고 채집된 인상을 짙게 풍긴다. 여기서 우리는 제시된 사진에서 작가의 의도를 분명히 알 수 없으며, 나열된 대상들의 개별적인 정체성도 상실되고 있음을 경험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유형학적인 사진이 노리고 있는 전략적인 장치이다. &lt;BR&gt;&lt;BR&gt;하지만, 구르스키는 이 베허 스쿨의 전형적인 사진 스타일하고는 조금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우선 사진을 전시하는 형태도 격자형식의 전시를 하지 않고 한 장 한 장의 대형의 커다란 사진으로 보여 준다. 그 사진의 크기는 보통사람의 키를 훨씬 넘어서는 확대된 사진으로 전시된다. 그 앞에 있으면, 마치 커다란 창문을 통해서 내 앞에 펼쳐진 도시의 광경을 직접 체험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그 사진 속으로 들어가면, 찍혀진 대상들이 하나 같이 유사하게 닮아 있는 형태 들이 반복적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lt;BR&gt;&lt;BR&gt;예를 들어서 아파트나 건물을 한 동 찍었는데 그 아파트 건물의 창문이 똑 같이 격자형태의 배치된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 대형마트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상품진열장은 똑 같은 물건들로 빽빽이 놓여져 있다. 증권거래소, 대형식당, 수영장의 인파, 등 대중이 많이 모이는 인간들의 군집이 어쩌면, 인간이 만들어 낸 도시의 구조와 똑 같은 지를 보게 된다. 한순간 이러한 이미지를 보면서 마치 기계부속품처럼 혹은 진열된 상품처럼 구조화된 인간의 모습을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 놀랍고 무서워진다. 심지어는 내 방의 사적 공간까지 이러한 현상은 침투되어 있다. &lt;BR&gt;&lt;BR&gt;현대도시의 고밀도 주거유형의 대량보급은 예를 들어 아파트는, 주택공급의 경제성, 생활방식의 편리성이라는 관점에서 환영받았다. 그러나 생활방식의 획일성, 자연으로부터의 고립감, 거주자 개인의 정체감 부재라는 심각한 문제점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획일적 주거방식 공간적 배치는 이미 그 자체가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사회적 현상이며 ‘사회적 변화’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통로며, 사실 좀더 정확하게는 그 변화에 의해 야기되는, 집합적인 삶의 양상 자체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 구조의 도시환경은 똑같은 유형의 유사성으로 확대된다. &lt;BR&gt;&lt;BR&gt;이제 스카이라인과 지하 깊은 곳 까지 개별적인 공간은 살아지고, 공공공간을 지배하는 대규모 유통점, 호텔, 사무실과 함께, 그리고 내 방까지 도시적 정체성의 동질화는 인류전체로 확산되어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인간의 삶을 균질 화 시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문화는 표준화되고 있고 또 몰 개성화된다. 구차하게 여러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지금당장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풍경을 살펴보자, 내 안의 사무실 그 창밖 풍경은 또 어떠한가? &lt;BR&gt;&lt;BR&gt;온통 격자무늬, 기하학적인 유형의 반복적인 패턴이 아닌가? 내가 거주하는 아파트 내부공간은 전체 아파트 단지의 구조와 똑 같고, 심지어 누워 자는 침대며, 걸치고 있는 옷까지 같은 패턴의 유형이다.내일 아침 나는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똑같은 뉴스를 보며, 똑 같은 음식을 먹고, 똑 같은 시간에 똑 같은 일을 하며, 매일 매일 정해진 격자무늬의 틀 속에서 반복되어진다. &lt;BR&gt;&lt;BR&gt;구르스키는 사진 속에 표상 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이야 실재적인 건물과 도시환경이겠지만, 그것은 또 지겨운 일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겠지만, 이게 그렇게 간단하게 보여 지지 않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일상이 커다란 구조 속에 틀 지워져 있다는 생각을 잠시 있고 지내다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일종의 현기증이다. &lt;BR&gt;&lt;BR&gt;그의 사진이 시각적으로 옵티걸 아트를 닮아 있는 것도 이런 심리를 유발하는데 한 몫을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일종의 심리적인 환각상태에서 자신의 삶을 다른 이들과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진을 보고 비현실성을 강하게 느끼는 자는 자신의 삶이 주체적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연변대 예술대학 사진학과 교수 이영욱-)&lt;BR&gt;&lt;BR&gt;&lt;BR&gt;&amp;lt;PHOTOGRAPHY&amp;gt;&lt;BR&gt;&lt;BR&gt;&lt;IMG height=420 alt=tokyostockexcQQQQe_poQQ3-kuroyukie.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51/007/tokyostockexcQQQQe_poQQ3-kuroyukie.jpg&quot; width=550 border=1&gt;&lt;BR&gt;&lt;BR&gt;&lt;IMG height=320 alt=QQQQQ.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51/007/QQQQQ.jpg&quot; width=573 border=1&gt;&lt;BR&gt;&lt;BR&gt;&lt;IMG height=351 alt=99cQQQp_004-kuroyukie.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51/007/99cQQQp_004-kuroyukie.jpg&quot; width=650 border=1&gt;&lt;BR&gt;&lt;BR&gt;&lt;BR&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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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진가 Jan Saudek</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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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5-01-24T22:25:10P</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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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i s l e</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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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align=center&gt;&lt;IMG alt=&quot;&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25/007/Cu10_copy.jpg&quot; border=0&gt;&lt;/P&gt;&lt;BR&gt;&lt;BR&gt;&lt;A onclick=&quot;window.open(this.href);return false;&quot; href=&quot;http://www.saudek.com&quot;&gt;http://www.saudek.com&lt;/A&gt;&lt;BR&gt;&lt;BR&gt;&amp;lt;PROFILE&amp;gt;&lt;BR&gt;1935년 생으로 60대 후반을 바라보는 체코 출신 사진작가 얀 사우덱(Jan Saudek)은 유태인이란 이유로 나치 점령기에 수난을 겪었고, 도발적인 일련의 누드사진들을 발표하면서부터는 ‘포토그래퍼’가 아닌 ‘포르노그래퍼&apos;로 불리는 등 보수적인 고국 국민들에게서 한동안 외면당하기도 했다. &lt;BR&gt;&lt;BR&gt;얀 사우덱의 카메라는 성별이나 나이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인물 유형을 담았다. 포동포동한 엉덩이와 덜 여문 가슴을 수줍게 드러낸 앳된 소녀, 근육질의 남성, 지방이 들러붙어 울퉁불퉁해진 피부를 무겁게 늘어뜨린 중년여성, 그리고 기형적 육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류의 인간이 그의 카메라 앞에서 무장해제 되곤 했다. &lt;BR&gt;&lt;BR&gt;말년에야 비로소 고국에서 재평가를 받고 있는 얀 사우덱은 사진 뿐 아니라 그로테스크한 느낌의 회화작품도 꾸준히 제작해왔다.&lt;BR&gt;&lt;BR&gt;그는 1935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 프라하에서 출생하여 사진 시각의 원동력이 되는 프라하 국립 인쇄 미술 학교에서 수학했다.&lt;BR&gt;&lt;BR&gt;그의 성장 과정을 보면 1939년에 나치가 이 나라를 점령하자 은행원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유태인이었기에 프라하 거리의 청소부로 전락해 버렸고,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는 강제 수용소 생활을 했다. 또한 그의 삼촌들은 그 수용소에서 모두 살해당했다. &lt;BR&gt;&lt;BR&gt;전쟁은 끝났지만 먹을 것이 없어서 풀뿌리를 캐어 먹는 빈곤속에 허덕였다. 1945년에는 다시 소련 병사들의 군화에 짓밟히는 핍박 민족으로 전락했다. 이런 역사적 상황 아래서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인쇄소의 사진사 조수로 들어갔다. 바로 이 일이 그가 사진작가의 길을 걷는 밑거름이 되었다. 조수로서 도제 수업이 끝난 후 사진사 자격증을 얻었지만 그때까지 만해도 사진작가가 되려는 생각은 없었다.&lt;BR&gt;&lt;BR&gt;1952년에 가서야 처음으로 코닥카메라를 손에 넣게 되어 줄곧 이 카메라로 작업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본격적으로 사진작가가 되려고 결심한 시기는 군복무를 마치고 귀향했을 때 친구가 보여 준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이 기획한 작품집 &amp;lt;인간가족 The Fammily of Man&amp;gt;을 본 후였다고 한다. &lt;BR&gt;&lt;BR&gt;사우데크는 이 사진집을 보고 매우 큰 충격을 받았으며 감격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때 그는 사진이야말로 자신의 일생을 걸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사진 영감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amp;lt;라이프 Life&amp;gt;지이다. 이 잡지에 게재되었던 기셀 프로인드(GiseleFreund), 마가레트 버크 화이트(Margaret Bourke-White), 유진 스미스(Eugene Smith)등의 사진에 매료되어 인본주의에 입각한 기록사진을 많이 촬영했다.&lt;BR&gt;&lt;BR&gt;우선 그의 사진의 방향이 하나의 운명처럼 결정지워진 까닭은 유태인의 아들로 근대사의 격동기에 항상 피지배국이었던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에서 출생하여 성장 했다는 점이다. 때문에 그의 사진은 음울하고, 흑백 사진이건 컬러 사진이건 간에 모두 불안한 분위기로 일관되어 있다. &lt;BR&gt;&lt;BR&gt;그는 촬영 장소를 항상 좁은 공간인 자신의 집 지하실로 한정했다. 그것도 일반 스튜디오처럼 흰색이나 회색으로 밝게 칠한 벽이 아닌 낡고 곰팡이가 나서 얼룩진 벽을 그대로 배경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그가 작업한 지하실 분위기는, 바닥에 깐 나무 판자는 썩어 축축하여 곰팡이가 생겨 위에 깔아 놓은 매트리스까지 곰팡이가 슬었고, 침대 시트는 물론 그 위에 덮인 담요에까지 곰팡이 냄새가 스며들고, 옷, 책, 필름, 심지어 비누까지도 죽음의 냄새를 풍긴다고 했다.&lt;BR&gt;&lt;BR&gt;이러한 그의 환경 여건이 도리어 그가 처해 있는 프라하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배경을 간접적이나마 숨김 없이 투영하는 진실된 사진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또한 그가 찍은 사진의 인물들은 가족들, 친구, 이웃, 연인들에 한정되어 있다. 가난한 그로서는 모델을 구할 수도 없었겠지만 가족, 친구, 이웃만큼 자신의 진실과 접하며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는 피사체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amp;nbsp;&amp;nbsp;&lt;BR&gt;&lt;BR&gt;그는 인간의 육체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연구하고 작품제작에 활용한다. 그의 사진 중에는 옷을 입은 인물 사진도 있지만 상당수가 알몸 사진이다. 옷을 입은 사람들을 사진에 담는 것은 섬유 껍질로 둘러싸인 나무를 찍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여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lt;BR&gt;&lt;BR&gt;그의 사진은 많은 부분이 경박하고 음탕해 보이며 많은 사람에게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반미학적인 분위기로 충만한데 그것은 평범한 것에 충격적인 시각을 주고자 하는 의도에 의한 것이다. 이것은 따지고 보면 인간 본능이나 잠재력올 표출한 것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의 머리 속에는 유태인들의 고통을 상정하는 단어인 아우슈비츠의 환상에 대한 강박관념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음울하고 침울한 감방, 소음, 굶주림,죽음으로 점철된 세계를 인간 본능을 중시하며 표현하는 그는 어두운 곰팡내 나는 지하실에서 조명 도구 하나 없이 거의 1초 내지 1/2초의 장시간 노출에 의존하는 사진을 찍는다. 작화 후에도 그 감정과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서 사진 위에 해석을 가한다.그는 수채화 물감을 사용한다. 색을 칠하는 것은 아름다운 여자들에게 회장을 시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lt;BR&gt;&lt;BR&gt;얀 사우데크는 환상의 세계를 현실 위에 중첩시켜 창작적 역량을 발휘하는 사진으로 전진하고 있으며 공간성만을 추구하는 사진가는 아니다. 때로는 공간성에 시간성을 가미한 연속(Sequence)사진도 볼 수 있다. 그가 근래에 영향을 받은 사진작가로서는 듀안 마이클즈(DuaneMichals )를 들 수 있다. 마이클즈야말로 연속사진의 개척자이며 대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그가 계획중인 사진은 수년 전에 그가 찍었던 사람들을 모두 다시 데려다가 같은 벽 앞에 세워 놓고 그 사이에 어떻게 변했는지 기록하려고 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이야말로 긴 세월의 연속물인 것이다.&lt;BR&gt;&lt;BR&gt;그는 주제의 선택을 주변 인물과, 어둡고 침침한 지하실에 국한시킨다. 공간의 한계를 자신의 환경적인 배경막으로 되풀이해서 사용하는 그 고집스러운 작법은 흥미진진하다. 그의 작품과 동의어가 되다시피한 낡은 벽과 열린 창문으로 보이는 구름 낀 하늘은 그의 상상의 세계를 확장시켜 주는 요소들어다. 그의 무한한 잠재력을 갖춘 심성과 함께 불과 몇 평밖에 되지 않는 작은 공간 속에서 이룩 한 다양한 감정과 영상적 이미지를 포착하는 능력은 참으로 놀랍다. 그는 렌즈와 카메라라는 장치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를 그대로 두지 않고 수채화 물감으로 가피펼함으로써 상상력을 마음껏 확대시키는 작업을 통해서 유태인의 비애와 프라하에 사는 사람들이 현재 겪고 있는 삶과 가치관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오시리스)&lt;BR&gt;&lt;BR&gt;&lt;BR&gt;&amp;lt;PHTOGRAPHY&amp;gt;&lt;BR&gt;&lt;BR&gt;&lt;IMG height=476 alt=20050124015.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25/007/20050124015.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lt;BR&gt;&lt;IMG height=457 alt=20050124032.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25/007/20050124032.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lt;BR&gt;&lt;IMG height=431 alt=20050124031.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25/007/20050124031.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lt;BR&gt;&lt;IMG height=472 alt=20050124027.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25/007/20050124027.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lt;BR&gt;&lt;IMG height=374 alt=20050124026.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25/007/20050124026.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lt;BR&gt;&lt;IMG height=398 alt=20050124023.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25/007/20050124023.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lt;BR&gt;&lt;IMG height=449 alt=20050124022.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25/007/20050124022.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lt;BR&gt;&lt;IMG height=479 alt=20050124020.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25/007/20050124020.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lt;BR&gt;&lt;IMG height=399 alt=20050124017.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25/007/20050124017.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lt;BR&gt;&lt;IMG height=384 alt=20050124019.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25/007/20050124019.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lt;BR&gt;&lt;IMG height=552 alt=20050124016.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25/007/20050124016.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lt;BR&gt;&lt;IMG height=528 alt=20050124018.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25/007/20050124018.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lt;BR&gt;&lt;IMG height=422 alt=20050124021.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25/007/20050124021.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lt;BR&gt;&lt;IMG height=533 alt=20050124028.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25/007/20050124028.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lt;BR&gt;&lt;IMG height=451 alt=20050124010.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25/007/20050124010.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lt;BR&gt;&lt;IMG height=414 alt=20050124011.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25/007/20050124011.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lt;BR&gt;&lt;IMG height=404 alt=20050124012.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25/007/20050124012.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lt;BR&gt;&lt;IMG height=547 alt=20050124005.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25/007/20050124005.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lt;BR&gt;&lt;IMG height=396 alt=20050124006.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25/007/20050124006.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lt;BR&gt;&lt;IMG height=306 alt=20050124007.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25/007/20050124007.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lt;BR&gt;&lt;IMG height=376 alt=20050124008.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25/007/20050124008.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lt;BR&gt;&lt;IMG height=577 alt=20050124009.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25/007/20050124009.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lt;BR&gt;&lt;IMG height=447 alt=20050124003.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25/007/20050124003.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lt;BR&gt;&lt;IMG height=462 alt=20050124002.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25/007/20050124002.jpg&quot; width=400 border=1&gt;&lt;BR&gt;&lt;BR&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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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진가 Sally Mann</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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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5-01-24T21:15:06P</published>
      <updated>2008-08-14T00:02:15P</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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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 align=center&gt;&lt;IMG alt=&quot;&quot;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17/007/DSCF2180_copy.jpg&quot; border=0&gt;&lt;/P&gt;
&lt;P align=justify&gt;&lt;BR&gt;&lt;BR&gt;&lt;A onclick=&quot;window.open(this.href);return false;&quot; href=&quot;http://www.sallymann.org&quot;&gt;http://www.sallymann.org&lt;/A&gt;&lt;BR&gt;&lt;BR&gt;&amp;lt;BIOGRAPHY&amp;gt;&lt;BR&gt;1951년 미국 버지니아주(州) 렉싱턴에서 태어났다. 1974년 홀린스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 같은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녀의 초기 작품들은 자신의 세 아이와 남편을 찍은 《이미디트 패밀리 Immediate Family》 시리즈가 유명한데, 특히 세 아이를 대상으로 촬영한 가벼운 누드 작품들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lt;BR&gt;&lt;BR&gt;이후에는 앨라배마주·미시시피주·버지니아주·조지아주 등의 풍경을 담은 풍경 사진 시리즈 작업에 전념해 2002년 현재까지도 이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촬영은 렌즈가 파손된 카메라를 사용해 긁히거나 강한 빛의 흔적이 있고, 초점을 심하게 이동하는 기법을 취한다. 사진집으로는 《젊은 여인의 초상 Portraits of Young Women》《어머니의 땅-조지아와 버지니아의 최근 풍경 Mother Land:Recent Landscapes of Georgia and Virginia》 등이 있다.&lt;BR&gt;&lt;BR&gt;뉴욕현대미술관·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뉴욕휘트니미술관·스미소니언미술관 등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에 그의 작품이 영구 전시되어 있으며, 사진과 관련된 각종 상을 받았다. 2002년 11월 25일부터 2003년 2월 2일까지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열리는 &apos;미국현대사진 1970~2000&apos;전에 그의 작품도 함께 출품되었다.&lt;BR&gt;&lt;BR&gt;&amp;lt;PHOTOGRAPHY&amp;gt;&lt;BR&gt;&lt;BR&gt;&lt;/P&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336 alt=samann5.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17/007/samann5.jpg&quot; width=400 align=center border=1&gt;&lt;/P&gt;
&lt;P align=justify&gt;&lt;BR&gt;&lt;BR&gt;&lt;/P&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353 alt=samann4.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17/007/samann4.jpg&quot; width=400 border=1&gt;&lt;/P&gt;
&lt;P align=justify&gt;&lt;BR&gt;&lt;BR&gt;&lt;/P&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322 alt=samann3.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17/007/samann3.jpg&quot; width=400 border=1&gt;&lt;/P&gt;
&lt;P align=justify&gt;&lt;BR&gt;&lt;BR&gt;&lt;/P&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323 alt=samann2.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17/007/samann2.jpg&quot; width=400 border=1&gt;&lt;/P&gt;
&lt;P align=justify&gt;&lt;BR&gt;&lt;BR&gt;&lt;/P&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327 alt=samann1.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17/007/samann1.jpg&quot; width=400 border=1&gt;&lt;/P&gt;
&lt;P align=justify&gt;&lt;BR&gt;&lt;BR&gt;&lt;/P&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262 alt=4197_25885_1.jpg src=&quot;./files/attach/images/4394/417/007/4197_25885_1.jpg&quot; width=400 border=1&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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